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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

동유럽 여행(10) 네카어 강변의 하이델베르크

동유럽 여행(10)

            네카어 강변의 하이델베르크

 

행전 박영환

 

◎하이델베르크

 

  여행 10일차, 마지막 날이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는 인구 14만 명의 작은 도시지만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버스에서 ‘황태자의 첫사랑’을 보고 내려서 그런지 어딘가에서 ‘축배의 노래’가 우렁차게 들려오는 듯했다. 이 영화는 황태자 칼 하인리히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유학하던 중 하숙집 딸 캐티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별하게 되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이다. 배우의 연기, 음악, 구성 등이 잘 조화된 명화이기에 많은 이들의 가슴에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맥주집 ‘로텐 옥센’, 하이델베르크 성과 카를 테오도르 다리 등 시내 곳곳이 무대가 되었기에 이 도시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영화가 된 것이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이루어지기를 바랐지요

끝내 이루지 못하고 떠나지만

준비된 이별이기에 상처는 적었던 것 같소

평행선의 기차가 곡선을 만나듯

잠시 멈칫멈칫 곡예만 남기고 떠나가던 뒷모습

긴 그림자 하나가 이 도시에 전설처럼 남아있구려

 

  

먼저 네카어 강 강가에 도착했다. 멀리 뾰족한 모양의 지붕, 그리고 나무 장식이 드러나고 있는 창문, 잘 페인트칠해진 주황색, 연두색 벽면의 건물들이 즐비한 언덕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아름답고 고풍스런 목가적 중세건물이 수면에 조용히 비치는 정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일찍이 “네카어 강 다리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세계 어느 곳도 따르지 못한다”고 말한 괴테의 말이 실감 있게 다가왔다. 

  네카어 강의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가 카를 테오도르이다. 원래는 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홍수와 화재로 유실되자 1786-1788년 사이에 카를 테오도르가 새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오래된 다리란 뜻의 ‘알테 브뤼케’라고 많이 부른다. 아치 모양의 다리 끝부분에는 2개의 뾰족한 탑으로 이루어진 교량탑이 있다. 다리 입구에 원숭이 동상이 있다. 옛날 네카어 강변에 원숭이들이 많이 살았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거울을 들고 다니며 나쁜 사람을 알아냈다고 하는데, 그 상을 조각한 것이다.

 

 

바람부는 강언덕에 거울하나 들고서

이사람 저 사람 마음까지 비춰본다

내 마음 어떠하냐고 묻기가 겁이 난다

 

  

 

 

다리 한가운데 서서 하이델베르크 성을 바라보았다. 하이델베르크라는 지명은 독일어로 ‘신성한 산’이라는 뜻을 지닌 하일리겐베르크(Heiligenberg)에서 유래되었으며 하일리겐베르크는 고성이 있는 네카어 강 언덕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곳은 예술과 철학이 발달한 학문의 도시이다. 그 한 가운데 선제후 팔츠가 설립한 하이델베르그 대학이 있다. ‘황태자의 첫사랑’의 강한 인상 때문에 사랑과 맥주로 젊음을 노래하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생각하지만, 또 실제 대학 노천카페 등도 있지만 노벨상 수상자가 7명이나 배출된 학문의 전당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300만권의 장서가 있는 대학도서관이 있고 또 학생감옥이 있었다. 학생감옥이란 문제가 있는 학생들이  학문의 바른 길로 접어들 때까지 가두어 둔 것이다. 그런데 이 대학의 특징이라면 대학 건물이 한 캠퍼스에 모여 있지 않고 16개 학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칸트, 괴테, 헤세 등 세계 최고의 철학자, 예술가들의 학문과 사색, 사랑의 발자취가 스며있는 곳이다.     

  나플레옹도 즐겨 읽었다는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불후의 명작을 남긴 괴테도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특히 그의 연인 마리안네 폰 빌레머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은 나는 이곳에서 행복했노라”란 글귀를 남길 정도로 그의 사랑은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다. 이 글귀를 보며 연인과의 사랑을 눈물로 회상하며 사랑했음으로 행복했다고 고백한 우리나라 여류 시인이 생각났다.

  칸트를 생각하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나의 시계도 열심히 가고 있었지만 그 시계는 나의 의지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는 자기의 의지로 시계바늘을 돌렸던 것 같다. 사람들이 그가 나타난 시간에 시계바늘을 정오로 맞추었다고 하는데…. 조금도 기울어지지 않는 한 복판에서 살고 싶었던 그의 삶이었기에 그의 학문도 축이 기울지 않았던 것 같다.

  다리 건너편에 있는 ‘철학자의 길’을 걸어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다음을 기약하며 9박 10일의 여정을 접고 처음 내렸던 프랑크 푸르트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동유럽 9박 10일 여행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