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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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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6)벼슬에 뜻을 접고 은사(隱士) 삶을 살던 이광조(李光朝) 선생의 자남재(紫南齋)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6) 벼슬에 뜻을 접고 은사(隱士) 삶을 살던 이광조(李光朝) 선생의 자남재(紫南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 상당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자남재(紫南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인물은 이광조(李光朝)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어릴 때부터 출중하여 학덕이 빼어났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접빈봉사(接賓奉祀)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며 산수의 풍류를 즐겼다. 공의 직계 선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원(原)은 호가 용헌(容軒)으로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청백리로 좌의정을 지냈으며 명대대묘(明臺大廟)에서 불천위 제사를 모시고 있다. 증(增)은 영산현감(靈山縣監)을 지냈으머 증 이조참판(吏曹參判)..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5)고성(固城) 현령(縣令)을 역임한 슬산 윤취립(瑟山 尹就立) 선생의 경슬재(景瑟齋)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5) 고성(固城) 현령(縣令)을 역임한 슬산 윤취립(瑟山 尹就立) 선생의 경슬재(景瑟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장기(長基)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경슬재(景瑟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슬산 윤취립(瑟山 尹就立, 1692〜1762)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開國功臣) 삼중대광 태사공(三重大匡太師公) 신달(莘達)이며 9성(城)을 쌓아 침범하는 여진족을 평정했던 문하시중 문숙공(門下侍中 文肅公) 관(瓘) 원수(元帥), 문과에 급제하여 소부윤(少府尹)에 올랐던 암(諳)이 선대이다. 슬산공은 숙종 18년(1692년) 경남 창녕군 연곡(燕谷)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4)경북 지사와 청도 군수의 선대인 이인구(李仁龜) 선생의 모암재(慕巖齋)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4) 경북 지사와 청도 군수의 선대인 이인구(李仁龜) 선생의 모암재(慕巖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이서면 대곡1리(한실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모암재(慕巖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이인구(李仁龜, 1686∼1758)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경산(京山)이며 자는 응여(應汝)이다. 고려 낙거부정(樂居副正) 덕부(德富, 시조), 양양부사(襄陽府使) 번(蕃),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흥문(興門), 정한강(鄭寒岡), 장여헌(張旅軒) 양 선생의 문인이며 여헌 선생의 행장을 모두 지었고 남전 향약을 만들어 향촌 사회의 발전을 주도했던 학가재(學稼齋) 주(糸+宙, 증조부), 생원(生員) 형만(亨萬, 조부), 증광사마(增廣司馬) 규태..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06)함박김씨(咸博金氏) 시조, 자헌대부(資憲大夫) 김성인(金誠仁) 선생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06) 함박김씨(咸博金氏) 시조, 자헌대부(資憲大夫) 김성인(金誠仁) 선생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함박 김씨의 시조는 김성인(金誠仁) 선생이다. 공의 본명은 사여모(沙汝某)로 일본인 장수였지만 임진왜란 때 귀순하여 공을 세워 사성(賜姓) 김해김씨(金海金氏)를 받았는데 뒤에 후손들이 혈통이 다른 김해김씨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공이 정착했던 청도군 각남면 함박리(咸博里)를 관향(貫鄕)으로 한 것이다. 1592년(선조 25) 왜군이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발발하여 조선을 침공했을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좌부장으로 참전한 김성인[사여모(沙汝某)]은 역시 기요마사의 우선봉장인 김충선(金忠善)[일본 이름 사야가(沙也可)]와 함께 4월 13일에..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3)19세에 창의기병(倡義起兵)하여 선봉에 섰던 박환생(朴還生) 선생의 낙계재(樂溪齋)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3) 19세에 창의기병(倡義起兵)하여 선봉에 섰던 박환생(朴還生) 선생의 낙계재(樂溪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 국도변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낙계재(樂溪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낙계 박환생(樂溪 朴還生, 1574〜?)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밀성이며 조산대부(朝散大夫) 군기소감(軍器小監) 이조참판(吏曹參判) 증 숭정대부 이조판서(贈 崇政大夫 吏曹判書)를 지낸 신보(臣輔)의 6세손으로 아버지 우재 성근(禺齋 成根)과 어머니 달성 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했다. 간재 이덕홍(艮齋 李德弘)과 한강 정구(寒岡 鄭逑) 문하에서 서진화(徐震和), 장몽기(張夢紀), 최대기(崔大器..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0)화양읍 홍도(紅桃)마을 전주 이씨 삼현(三賢)의 추모재(追慕齋)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0) 화양읍 홍도(紅桃)마을 전주 이씨 삼현(三賢)의 추모재(追慕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화양읍 신봉리 홍도마을 산기슭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추모재(追慕齋)를 찾았다. 전주인(全州人) 수산 이선종(壽山 李先宗, 1708∼1779) 선생은 1756년(영조 32) 경 경남 거창에서 이곳에 옮겨 터를 잡았다. 공은 양녕대군(讓寧大君) 9세손으로 돌산부정(突山副正) 창선대부(彰善大夫) 광석(廣石), 장임령(長臨令) 창선대부 숙령(淑齡), 무과(武科)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인로(仁老), 무과 봉사(奉事) 몽현(夢賢), 충의위(忠義衛) 명길(命吉)이 공의 선대이다. 공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자연 속에 은거하여 경학에 전념하..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2)우뚝 선 가문의 학풍을 이어받은 공조참의(工曹參議) 형서 장용(荊瑞 張鎔) 선생의 모인재(慕仁齋)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2) 우뚝 선 가문의 학풍을 이어받은 공조참의(工曹參議) 형서 장용(荊瑞 張鎔) 선생의 모인재(慕仁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각남면 함박리에 자리잡고 있는 모인재(慕仁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형서 장용(荊瑞 張鎔, 1624∼1687)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인동(仁同)으로 시조는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역임한 금용(金用)이다. 안세(安世, 시조 12세손)의 시호는 충정(忠貞) 호는 송은(松隱)이다. 자헌대부(正憲大夫), 덕녕부윤(德寧府尹), 증 이조판서(贈 吏曹判書)이다. 고려가 망하자 낙향하여 절의를 지킨 두문동(杜門洞) 72현 중 한 분이며 옥계서원(玉溪書院)에 배향되고 있다. 우..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1)경사(經史)에 박통(博通)했던 성현도(省峴道) 찰방(察訪) 이원(立+元)선생의 강모재(講慕齋)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11) 경사(經史)에 박통(博通)했던 성현도(省峴道) 찰방(察訪) 이원(立+元)선생의 강모재(講慕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매전면 관하리 신천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강모재(講慕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남려(南旅) 이원(立+元)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경주이며 국당(菊堂) 천(蒨, 대제학 문하시중 평장사 월성부원군 문효공 大提學 平章事 月城府院君 文孝公)의 후예이다. 할아버지는 부사(府使) 의(立+義)며 아버지는 예천군수(醴泉郡守)를 지냈으며 효행이 지극하여 임금이 특별히 정려(旌閭)했던 담헌(湛軒) 훈정(焄靖)이다. 경사(經史)에 박통(博通)한 공은 향시(鄕試)에 장원을 하였고 성균관에 유학한 뒤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로 ..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09)금천면 신지리 박순희(朴淳憘) 선생의 명중고택(明重故宅)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09) 금천면 신지리 박순희(朴淳憘) 선생의 명중고택(明重故宅)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금천면 선암로에 있는 명중고택(明重故宅)을 찾았다. 명중고택은 좌승지에 추증된 운강 박시묵(雲岡 朴時默, 1814∼1875)의 손자인 지암 박내현(旨巖 朴內鉉, 1861∼1896)이 1881년 별채로 건립하였다. 지암은 서산 김흥락(西山 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시문에 능했고 효로써 교남지(嶠南誌)에 등재되었다. 그 뒤 박내현의 둘째 아들인 명중 박순희(明重 朴淳憘, 1896∼1934)가 입주하면서 명중 고택(明重古宅)이라 하였다. 명중의 할아버지는 진계 박재형 (進溪 朴在馨)이다. 진계는 학문이란 ‘경(敬)’자에 달렸다고 말하고 선유(先..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08)신명학교(新明學校)를 설립한 박병현(朴秉鉉) 선생의 섬암고택(剡巖故宅)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08) 신명학교(新明學校)를 설립한 박병현(朴秉鉉) 선생의 섬암고택(剡巖故宅)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금천면 선암로에 위치한 섬암고택(剡巖故宅)을 찾았다. 섬암고택 주변에는 웅장한 고택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이 모두 중심 고택인 운강고택(雲岡古宅) 집안의 살림집이었다. 운강고택은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의 후예인 성경당(誠敬堂) 박정주(朴廷周)가 시작하여 그의 아들인 운강(雲岡) 시묵(時默)이 크게 중건하였기에 운강고택이라 부르고 있다. 운강의 맏아들 진계(進溪) 재형(在馨)은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대비정사(大庇精舍)에서 강학 활동을 하며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 등 다수의 저술을 남겼다. 이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