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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청도 임당리 내시 종가에서 행전 박영환 문은 언제나 무겁게 닫혀 있었다 그 무서운 헛기침의 기압이 담장을 누르던 햇살 없는 북향의 안방을 밀고나오던 문은 또다른 문에 덜미가 잡혀 주저앉았다 문들은 모두가 자기편이 아니라는 비애를 안고 늘 서로를 두려워하며 제 몸을 줄여 어둠과 마주했다 문은 서로를 모른 체 했고 열려는 힘보다는 닫으려하는 힘의 편에 섰다 깊은 성곽 문풍지가 무심한 달빛 따라 울어 주어도 안방 문은 하얀 창호지만 어루만질 뿐 문풍지처럼 울 수 없었다.
백설 백설 행전 박영환 길상사에 눈이 내린다 내리는 눈은 김영한이란 본명 위에 눌러 쓴 그녀의 또 다른 이름들을 조용히 덮는다 연필 자국이 너무 진한 것일까 지우개도 버거운 바람 한 줄기 음표를 만든다 열여섯 살 기생 진향의 숨소리는 가얏고 위에서 서성이고 스물두 살 자야는 밟히지 않는 발자국 위에 백석의 시를 풀어놓을 때 80대 노 보살 길상화가 빈집의 뜨락에 무소유를 뇌인다 진정한 사랑, 그 순수하고 위대한 진실을 본다 백억 재산도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했던가 4년의 짧은 사랑, 60년의 긴 이별 언제 가장 그리웠느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데 때가 따로 있느냐는 씁쓸한 반문 간절한 그리움은 산도 강도 막지 못했다 한 줌의 재로 굴곡의 세월 육신의 옷을 벗은 님이시여 인연 따라..
사랑하는 명자씨 사랑하는 명자씨 행전 박영환 그녀를 사랑하는 길은 가시밭길이다 겨울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찬바람을 오히려 즐기는 듯 사뿐사뿐 다가온 봄의 화신 향그론 입김이 황홀하다 나도 모르게 고운 손을 사알짝 잡아보려는데 아뿔싸, 무섭게 가로막는 예리한 가시의 엄중한 경고 찔린 자국에 피멍이 들어 아린다 아리따운 것도 죄이런가 늘 여인들의 시샘과 뭇 남성들의 고백에 시달리지만 흔들리지 않는 청순과 지조 가시는 이를 지키는 빗장이고 은장도이다 사랑하는 명자씨 그대를 향한 마음, 가시밭길이래도 가시까지 한 번 품어 보겠소 제발 그 미소만은 거두지 마오. * 명자꽃은 이른 봄에 피는 꽃이다. 딸이 시샘을 한다고 딸이 있는 집에는 심지 말라고 할 정도로 예쁜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