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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친구

백설

          백설

 

                                             행전 박영환

 

 

 

길상사에 눈이 내린다

내리는 눈은

김영한이란 본명 위에 눌러 쓴

그녀의 또 다른 이름들을 조용히 덮는다

 

연필 자국이 너무 진한 것일까

지우개도 버거운 바람 한 줄기 음표를 만든다

열여섯 살 기생 진향의 숨소리는 가얏고 위에서 서성이고

스물두 살 자야는 밟히지 않는 발자국 위에 백석의 시를 풀어놓을 때

80대 노 보살 길상화가 빈집의 뜨락에 무소유를 뇌인다

 

진정한 사랑, 그 순수하고 위대한 진실을 본다

백억 재산도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했던가

4년의 짧은 사랑, 60년의 긴 이별

언제 가장 그리웠느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데 때가 따로 있느냐는 씁쓸한 반문

간절한 그리움은 산도 강도 막지 못했다

 

한 줌의 재로 굴곡의 세월 육신의 옷을 벗은 님이시여

인연 따라 얻은 이름 인연 따라 내려놓으니

이제 사방은 순백의 세상

맑고 고운 향으로 극락왕생 하소서.

 

  

김영한(金英韓, 1916 - 1999) 님은  眞香子夜, 吉祥華로 불려졌다. 진향은 기생일 때 받은 이름이고 자야는 백석시인이 붙여준 애칭이다.  백석과의 사랑은  짧은 만남,  긴  이별이었지만 한 평생 숙명으로 알고 그리움의 세월을 보냈다. 길상화란 이름은  인생 말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느낀 바가 커서 평생 모은 재산인 7천여 평 대원각을 시주하여  길상사로 창건 되었을 때 법정 스님이 붙여준 불명(佛名)이다.  님은 나 죽으면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사 뒤뜰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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