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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낭(洪娘) 홍낭(洪娘) 행전 박영환 아마 초여름이었을 게다. 버드나무 잎이 한층 더 푸른빛을 띠었다. 오늘은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며칠째 그곳에서 어떤 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그 여인이 나타났다. 그 짜릿한 경이와 전율감. 이 무슨 횡재. 내가 기다리던 그 미모의 여인은 연분홍 치마저고리로 곱게 단장하고 물기 오른 버드나무에 기대어 고운 상념에 잠겨 있었다. 여인은 나긋한 버드나무 가지를 살며시 눌러 곱디고운 손가락에 감더니 마침내 연초록 잎사귀에 묻어나는 계절의 향취를 음미하며 입맞춤을 했다. 저것이다. 내가 그토록 그리던 모습이다. 카메라 셔터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행여 낌새를 차려 자리라도 피하면 곤란. 얼굴이 드러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버드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 옆모..
대마도 여행(3) 조선통신사 대마도 여행(3) 조선통신사 행전 박영환 / 2012.5.15. 대마도의 곳곳에 조선 통신사의 흔적이 산재되어 있다. 당시 조선 통신사 행렬을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통신사를 극진히 대접했는가를 알 수 있다. 1404년(태종 4)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교린관계가 성립되자, 조선국왕과 막부장군은 각기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절을 각각 파견하였다. 이때 조선국왕이 막부장군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통신사 막부장군이 조선국왕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하였다.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에 통신사의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413년(태종 13) 박분(朴賁)을 정사로 한 사절단이었지만, 중도에 정사가 병이 나서 중지되었다. 그뒤 통신사의 파견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142..
대마도 여행(2) 덕혜옹주여 대마도 여행(2) 덕혜옹주여 행전 박영환 옹주님 자취가 왜 여기 있을까 경복궁 뜨락을 거닐텐데 대마도라니 기 막혀 말문을 닫은 비운의 역사여 이덕혜가 아니고 양덕혜로 살라 하고 조선인이 아니고 대마도의 종씨 남편 어디에 정을 붙일까 차리리 눈을 감네 오늘도 붉은 눈물 하늘을 적시네 한 올 한 올 젖어올라 소매끝이 무겁구나 울어서 녹여낸다면 그치지 마소서 대마도의 첫 번째 도주(島主) 소오요시토시(宗義智), 2번째 소오요시나리(宗義成), 3번째 소오요시자네(宗義真) 때가 가장 번창하고 융성하던 시기였다. 특히 3번째 소오요시자네(宗義真)때에 조선무역이 잘 되어서 대마도가 제일 번성하고 대규모의 사업이 실행되었다고 한다. 金石城(금석성)은 그러한 시기인 1669년에 소오요시자네(宗義真)가 건설한 성이다.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