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낭(洪娘)
행전 박영환
아마 초여름이었을 게다. 버드나무 잎이 한층 더 푸른빛을 띠었다. 오늘은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며칠째 그곳에서 어떤 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그 여인이 나타났다. 그 짜릿한 경이와 전율감. 이 무슨 횡재. 내가 기다리던 그 미모의 여인은 연분홍 치마저고리로 곱게 단장하고 물기 오른 버드나무에 기대어 고운 상념에 잠겨 있었다. 여인은 나긋한 버드나무 가지를 살며시 눌러 곱디고운 손가락에 감더니 마침내 연초록 잎사귀에 묻어나는 계절의 향취를 음미하며 입맞춤을 했다. 저것이다. 내가 그토록 그리던 모습이다. 카메라 셔터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행여 낌새를 차려 자리라도 피하면 곤란. 얼굴이 드러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버드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 옆모습, 아니 뒷모습이라도 좋다.
그렇게 열심히 찍고 있을 때, 갑자기 나의 뒷덜미에 묵직한 손 하나가 들어 왔다. 목이 뽑히면서,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아뿔싸, 뭔가 잘못 되었다. 일그러진 장정의 얼굴이 확 내리 꽂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소. 그가 다그쳤다. 나는 갑자기 말문이 콱 막혔다. 고기 파먹던 살쾡이의 모습. 낯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남의 여편네를 미행하여 사진을 왜 박는 거유.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왕방울 눈이 용수철을 달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 상황에 바위 통 같은 주먹인들 가만히 있겠는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여인도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이 사람 잘 알아. 그가 이번에는 여인을 닦달했다. 오빠두 그걸 말이라고 해.
뒤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신혼여행 중이었다. 그는 계속 씨근거리며 이유를 대라고 했다. 나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홍낭의 모습을 찍는다는 게. 홍낭은 또 뭐 유. 이 양반아 저 사람은 홍씨가 아니라 김씨라고. 그래요, 홍낭은 기생 이름입니다. 이 양반 갈수록 태산이네, 보기는 멀쩡하면서…. 맛이 약간 간 게 아냐. 냉소를 머금고 귓바퀴 옆에 손가락을 돌렸다. 그 당시 내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사나이와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불쾌했을 것이다. 그는 나와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당신하고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니 필름이나 내놔요. 필름은 곤란합니다. 어렵쇼. 그럼 카메라를 내놓을 텐가.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 홍낭이 필요합니다. 또 그놈의 홍낭. 그렇다. 그때 나는 홍낭의 모습이 꼭 필요할 때였다.
전국 교육자료전에 출품할 자료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시조(古時調)에 관한 학습 자료 - 시조의 일반 이론을 방송극화하고 창과 율독(律讀)을 녹음했다. 이 시조를 율독할 때 한 수에 6장 배경 사진을 슬라이드로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교육적 효과를 얻도록 기획한 것이다. 그 때 지방대회에서는 통과를 했고 전국대회에 보낼 자료를 보완하고 있었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자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곧 나거든 날인 가도 여기소서
홍낭(洪娘)의 작품이다. 홍낭은 선조 때의 기생으로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의 정인(情人)이었다. 그녀는 비록 기생의 신분으로 그를 만났지만 첫정을 바친 그를 너무 사랑했다. 고죽 역시 그녀의 착한 마음씨와 아름다운 용모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사랑도 잠깐, 선조(宣祖) 7년 최경창이 겨우 일 년간의 북해평사(北海評事)의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게 되자 헤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홍낭은 고죽이 서울로 떠나던 날, 이별을 애달와 하며 함관령까지 따라 나와 버들가지 하나를 꺾어 님에게 전하며 이 노래를 바쳤다. 그날 때마침 홍낭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밤비마저 구슬프게 가지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함관령(咸關嶺) 해 진 후에 아득히 혼자 넘어
안개 잦은 골에 궂은비는 무슨 일고
눈물에 다 젖은 옷이 또 적실까 하노라.
이 노래의 작자는 알려지지 않으나 여려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그 뒤 서울로 돌아온 고죽도 홍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어 시름시름 앓다가 자리에 눕고 말았다.
이 소문이 마침내 홍낭의 귀에도 들어갔으며 이를 안 홍낭은 앞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울로 향해 내달렸다. ‘기생은 현지에의 수발만 하고 전출지는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 국법에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었다. 홍낭 역시 그 법을 모를 리는 없지만 사랑하는 님이 자기를 애타게 찾으며 자리에 누워 있다는 데 처벌이 대수냐. 울며불며 7주야 만에 서울에 도착한 그녀는 지극하게 간병을 했는데 그 정성이 헛되지 않아 마침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깐, 국법을 어긴 죄로 고죽은 파직을 당하고 홍낭은 멀리 쫓겨났다. 또 다시 죽음보다 괴로운 이별이 시작되자 홍낭은 살아서 떨어져 있기보다는 죽어서 고혼으로 같이 머물겠다는 심정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녀가 죽고 난 뒤 최씨 가문에서는 그녀의 애절한 죽음을 가상하게 여겨 최씨 집 선산에 묻고 그 넋을 위로했다.
이런 기생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어디 그런 모습 찾기가 그렇게 쉬운가. 버드나무가 우거진 여러 곳을 찾았으나 허탕을 치기가 일쑤. 거의 포기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런 차에 마침 이 여인을 만났던 것이다. 우연이지만 이 여인이야말로 너무 완벽하지 않는가? 연분홍 치마저고리의 우아한 자태, 빼어난 미모. 하느님 감사합니다. 찰칵찰칵. 그것이 사건의 전모다.
그런 저런 하소연에도 사나이는 별 씨도 먹히지 않는 소리란 듯, 필름만은 용서할 수 없단다. 하기야 첫날밤도 지내지 않는 남의 마누라 사진을 담아 가는데 잘한 일이라고 박수 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다고 순순히 내놓을 자료가 아니고 보니 손발이 닳도록 사정을 했다. 그런데 이때 여인의 눈빛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여인이 남편을 다른 쪽으로 데리고 갔다. 귀를 기울였지. 안 돼, 사나이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자료란 데 오빠, 우리 신혼여행 온 기념으로 좋은 일 한 번 하고 가요. 그 소리 얼마나 청아하고 밝던지. 안 돼, 기분 나빠. 사나이의 말은 계속 부정적이었지만 여인의 다정하고 진실한 속삭임에 톤은 상당히 부드러워졌지. 여인이 다가왔다. 저가 홍낭의 모습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정식으로 포즈를 취하겠습니다. 넷?! 필름을 빼앗기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정식으로 포즈까지 취해 주다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착하디 착한 홍낭이 저 세상에서 다시 환생한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아리따운 모습을 놓치지 않고 신들린 사람처럼 셔터를 눌러댔다. 지금도 ‘묏버들 가려 꺾어’ 로 시작하는 홍낭의 시조를 떠올릴 때마다 그 때 일이 생각 나 혼자 웃음을 머금곤 한다. 고마운 여인에게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