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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머리 없는 부처

                   머리 없는 부처

 

 

                                                                                                 박 영 환

 

 경주 남산에 눈이 온다. 오는 눈은 이내 녹아 가지를 타고 흐른다. 첫눈, 산을 덮어 쌓이면 운치도 있으련만 아쉽다. 얼마 가지 않아 쉬 녹는 까닭을 알았다. 머리 없는 부처님을 만난 것이다. 부처님의 등줄기를 타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부처님 당신은 왜 얼굴을 감추었나요.누가 감추라고 했나요. 아니면 스스로 감추어 버렸나요.

  얼굴이 없으면 눈도 없고 입도 없고 코고 없고 귀도 없다. 즉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숨도 쉬지 않고 듣지도 않는다. 그러면 그는 죽은 생명이다. 그러나 그를 자세히 보면 죽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머리 없는 부처님은 왜 눈물이 마르지 않는가?

  남산은 신라의 시작과 마지막이 있는 곳이다. 이곳 식혜골에서 조금 더 가면 나정(羅井)이 나온다.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루, 한 촌장이 나정을 바라보니 말 한 마리가 우물가에 있어 조심스레 다가가니 말은 하늘로 올라가고 그 자리에 붉은(밝은) 알 하나가 있어 알을 가르니 사내아이가 나왔다. 그 아이가 바로 혁거세 거서간이다.

  한편 포석정(鮑石亭)은 일명 서남궁으로 신라 천년의 마지막 촛불이 타올랐던 곳이다. 사람들은 경애왕이 국사는 돌보지 않고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흥청거리다가 이곳에서 견훤의 칼을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남산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그 부당함을 쉽게 알 수 있다. 남산은 신라인들이 가장 신성시 여기던 곳이다. 그러니 이곳이 유흥의 장소였다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죽은 것은 음력 11월이다. 그 엄동설한에 놀러갔다는 것도 가당찮은 일이지만, 그 때 견훤의 군사가 이웃 고을 영천까지 몰려온 때다. 불과 25 킬로미터의 거리이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아무리 분별없는 왕이기로서니 놀이를 즐길 수 있겠는가?

  경애왕은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자 국가의 수호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러 간 것이다. 이런 예는 헌강왕(憲康王) 때도 있었다. 헌강왕도 이곳에서 남산의 신을 맞아 상심무를 추며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던 것이다. 그러니 포석정이 아니고 국가의 신을 모신 포석사(鮑石祠)란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경애왕 포석정유(景哀王鮑石亭遊)’중에서‘유(遊)’란 말이 유흥의 단서인데, ‘유(遊)’는‘놀다’란 뜻도 있지만 가다’란 뜻도 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가다’임에 틀림없는데 굳이 ‘놀다’로 해석하는 것은 신라를 밟고 일어선 세력들의 계획된 음모에 의한 역사의 왜곡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무튼 첫 임금 혁거세가 태어난 곳도 이곳이고, 신라의 마지막 운명을 애달파 하며 간절한 기도를 드린 곳도 이곳 남산이다.

  남산은 경주를 중심으로 길게 타원형으로 솟아 있고 길이가 약 8 킬로미터, 동서의 넓이는 약 4 킬로미터 높이는 약 468 미터이니 그 자체가 서라벌에 있어서는 천연의 성벽이 된 셈이다. 신라인들의 서방정토이고 극락세계이기도 했던 남산에는 신라가 패망한 지 천여 년이 흐른 지금도 신라의 혼이 서려 있는 것이다.

  신라와 함께 살았고, 신라인의 안식처이던 세계 유일의 노천 박물관 남산, 누군가가 말했다. 남산의 아침 이슬은 신라인의 맑은 눈망울이고, 시계추처럼 남산 위를 건너가는 해 빛은 신라인의 따뜻한 속삭임이라고.

  머리 없는 부처님은 찬란했던 신라를 그리워하며 오늘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수필문학 제82호/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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