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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삶의 황금기

 삶의 황금기

 

 

 

                                                                         행전 박영환

 

 

  백세 시대가 곧 온다고 한다. 현재의 추세대로 간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동의를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 정말 그렇게 될까,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너무 기대치를 부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요즈음 김형석 교수님이 활동하시는 것을 보면 100세 시대란 말이 허풍이 아닌 현실이란 느낌마저 든다. 김 교수님은 현재 아흔 여섯이다. 그런데 아직도 정정하게 강연을 하시는 등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언젠가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98세가 되는 해에 공개 구혼을 하여 사랑을 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농담으로 던진 말이지만 정말 그런 일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이 보인다. 만일 김 교수님이 공개 구혼을 하면 파트너로 신청하는 분이 꽤나 있을 것 같다. 지금 연세가 들어도 정정하신 여성분들도 얼마나 많은가. 얼마 전 아침 텔레비전에 출연하신 어느 분은 92세인데도 아직 감기 약 한 번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허리가 유연하기로는 20대도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김 교수님께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진 모양이다.

교수님, 만약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질문하신 분은 내심, 젊은 청년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젊은 청년시절은 아니었다. 저는 다시 돌릴 수 있다면 60세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젊은 날로는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때는 생각이 얕았고, 행복이 뭔지 몰랐습니다. 저는 65세에서 75세까지가 삶의 황금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나이에야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했다.

   공자께서도 60세를 이순(耳順)’이라 하고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하였다. 이순은 말 그대로 하면 귀가 부드러워지는 것이니, 이쯤 되면 모든 일에 대한 경륜이 생겨 쉽게 대처할 수 있는 혜안이 있는 시기란 것이다. 종심은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준말로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 해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얼마나 황금 같은 시기인가.

   퇴직을 한 뒤, 2의 인생을 사느니, 3의 인생을 사느니 하면서 씩씩하게 살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 드리운 그늘을 떨치지 못하고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는 저 모습이 나의 모습이려니 하는 생각을 이따금 하곤 했다. 그런데 김 교수님의 말씀대로라면 내가 바로 이 나이가 아닌가. 그러니 나는 서산에 걸린 해가 아니고 황금의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황금의 시기가 무엇인가? 마음의 자유를 얻어 부담감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의 삶이 그런 시기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40 년 동안 매여 있던 직장에서 풀려났으며, 아이들도 모두 결혼을 하여 제 나름대로 독립하여 살고 있어 부담이 없지 않는가.

   나는 퇴직을 한 즉시 부산 생활을 접고 어른들의 발자국과 말씀이 숨 쉬고 있는 고향 청도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늘 마음먹고 있었던지라 가볍게 떠나왔다. 한옥집이기에 아파트만큼 편하지는 않아도 약간 손을 보니 아내와 둘이 살기에는 큰 불편함이 없다. 몸채는 부엌과 화장실을 새로 고쳤고 사랑채는 세 칸을 터서 서재로 삼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마당에 잔디도 심었고 대문에 장미 아치도 만들었다.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워 텃밭에 물도 준다. 화단에는 계절 따라 꽃도 핀다. 마루에 앉아 보면 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의 태봉산과 북쪽의 태양산 솔바람이 늘 가슴을 어루만져준다. 거기에다가 이따금 제자들과 친구들이 찾아와 차 한 잔 나누며 담소를 나누곤 하니 즐겁다.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요즈음 더 바쁘다. 직장에 있을 때보다 문단활동을 열심히 하게 되니 글도 더 많이 써야 하고 집 주변 밭에 있는 감나무도 가꾸어야 하니 잔손이 많이 들어간다. 이를 키울 정보를 얻기 위해 농민사관학교도 졸업했다. 문중의 일도 많이 돌아왔다. 전에는 직장 때문에 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맡지 않을 수 없다. 올해 10월 달에는 우리 문중의 문중전도 열리게 되어 있어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것 같다. 이게 황금기의 과정인지 모르겠다.

   지금 내 책상 위에 손목시계 3개가 있다. 제일 오래된 것은 결혼할 때 받은 시계이다. 이 시계는 지금도 고장이 나지 않았지만 수동이라서 조금만 차고 다니지 않으면 이내 잠을 주무신다. 그래서 약으로 가는 자동 시계를 하나 구입하여 오래 사용했는데 그 마저도 휴대폰이 나오면서 서랍 속에 넣어두었기에 약발이 떨어지자 멈추어 선 것이다. 그 다음 하나는 퇴직을 할 때 받은 것인데 대통령 이름은 박혀 있어도 값은 제일 싼 것이다. 이것도 역시 가만 두었더니 멈춘 지 오래되었다. 이상하게 요즈음 이것들을 살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동은 열심히 흔들었더니 긴 잠에서 깨어났고 남은 두 개는 약을 받아먹더니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전부 구닥다리가 되어서 시쳇말로 돈 되는 것은 없지만 하나는 30대의 추억을, 또 하나는 4,50대의 생활을, 그 다음 것은 퇴직의 평화를 들려주는 것 같아 좋다. 그래서 밖에 나갈 때 번갈아 손목에 데리고 나간다. 이런 모습을 보고 아내가 농을 했다. “손목시계가 세 개나 되니 황금시기가 맞기는 맞구려.” “듣고 보니 그러네. 이왕이면 마누라도 서너 명 되었으면 좋겠구먼.” 했더니 집에 있는 하나나 잘 간수하란다. 뼈 있는 농담인줄 내 잘 알고 있다.

   60대와 70, 정말 소중한 시기이다. 잉여시기도 아니고 더구나 석양의 시기도 아니다. 그러나 결코 과신을 하거나 더더구나 과욕을 부릴 시기는 아니다. 아무리 황금의 시기라고 외치고 외쳐도 그것이 허락받은 크기와 양은 제한되어 있다. 어쩌면 얻는 시기라기보다는 정리하는 시기이며 버리는 시기인 것도 사실이다.

   박경리 선생도 옛날 그집이란 시에서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편안하다. 버릴 것만 남아 있으니. 늙으니 이리도 편안한 것을~’ 했다. 그렇다. 욕심은 금물이다. 만용은 더더구나 위험하다.

   이순과 종심도 마찬가지다. 이순이 되면 삶의 예지를 터득하고 종심 때는 어느 정도 행동하기가 자유로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순은 순리에 따르는 시기, 종심은 법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어쩌면 후자에도 상당히 무게가 있었을 것 같다. 박경리 선생의 버리는 것 과 이 말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도 어쩌면 황금 시기이기에 가능한 일이란 역설적인 생각도 든다. 황금 시기이니 버릴 줄 알아야 하고, 더 철저히 순리에 따르고 법도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중용(中庸)과 과불급(過不及)을 항상 상기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 상황으로 간다면 김형석 교수께서 황금기의 나이를 곧 100세까지로 올려줄 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100 세의 직장인이 생겨나고 운동선수도 있고 혹시 100세 젊은 청년이 재혼이나 삼혼 청첩장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꿈같은 이야기 같지요. 물론 꿈같지요. 그래도 꿈이거든 깨지 말고 그 시대 한 번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꽃이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니다. 겨울에 피는 꽃도 분명히 있다. 어깨 움츠리지 말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될 수 있도록 건강한 삶을 가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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