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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노숙자 행전 박영환 가슴에 빈들이 생기더라. 잡초만 도랑을 따라 일렁이며 햇살이 제것인양 손짓을 하더라. 빛이 곱던 열매들이 하나 둘 떠나 간 뒤 하릴없는 허수아비만 멋적게 웃고 있구나. 순이의 몸매처럼 부드럽던 논두렁도 들쥐가 수시로 드나들어 신음소리가 깊고 도랑물도 휘파람소리를 잃고 저만큼 울고 있더라. 조금씩 자라던 소망이 뿌리를 뻗으려 해도 한 치 아래 자욱한 자갈밭의 저항을 이기지 못한다. 빈들은 약속을 하지 않더라. 들안길 오솔길 고샅길에 세월이 어깨죽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숙제 숙제 행전 박영환 학교에 다닐 때는 꽤 친했던 친구인데 간혹 안부만 들을 뿐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한 번 만나야지 만나야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기회가 닿지 않았다. 그 친구 한 번 만나는 게 숙제가 되어 있었는데 우연하게 어떤 장소에서 해후를 했다. 숙제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뭐 하다가 우리 이렇게 못 만났지 하면서 손을 덥석 잡았더니 그 친구 대답, 숙제하다가 바빠서 그렇지. 허허 웃는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많은 숙제가 있었다. 하루 한 장씩 받는 백지. 뭔가 열심히 그려야 했다. 그래 숙제를 잘 했느냐고 물었더니 잘 하면 좋지만 못하더라도 그리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며 시계바늘 위로 오고 간 것 같은데 막상 지나고 보니 선을 잘 읽지 못하고 색깔을 제대로 품지 못해 내어 놓을 것이 없..
불영사를 찾아가며 불영사를 찾아가며 행전 박영환 그림자 찾으러 그림자를 만든다 여기에 계신거야 아니야 저기 있어 사십리 오르내리는 연못 속의 부처님 그래요 보입니다 부처님을 뵈었어요 그렇게 말하려고 연못을 두드리는데 어느 새 다녀가셔서 산위에서 미소짓네 *佛影寺 계곡 - 경북 울진에 있으며 산위의 바위가 부처님 상인데 그 그림자가 절 앞 연못에 비친다고 불영사라 하고 그 계곡을 불영사 계곡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