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행전 박영환
학교에 다닐 때는 꽤 친했던 친구인데 간혹 안부만 들을 뿐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한 번 만나야지 만나야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기회가 닿지 않았다. 그 친구 한 번 만나는 게 숙제가 되어 있었는데 우연하게 어떤 장소에서 해후를 했다. 숙제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뭐 하다가 우리 이렇게 못 만났지
하면서 손을 덥석 잡았더니 그 친구 대답, 숙제하다가 바빠서 그렇지. 허허 웃는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많은 숙제가 있었다. 하루 한 장씩 받는 백지. 뭔가 열심히 그려야 했다. 그래 숙제를 잘 했느냐고 물었더니 잘 하면 좋지만 못하더라도 그리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며 시계바늘 위로 오고 간 것 같은데 막상 지나고 보니 선을 잘 읽지 못하고 색깔을 제대로 품지 못해 내어 놓을 것이 없단다. 자네는 어떠냐고 묻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날 노을을 안주하여 술을 마셨다. 그래도 헤어지면서 살아 있는 것 감사하며 남아 있는 숙제 잘 하자고 악수를 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오늘은 자네를 만나 묵은 숙제 하나 풀게 된 것이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