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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를 보고 말았다 벌새를 보고 말았다 박영환 깃털 영롱한 무지개빛 벌새를 보고 말았다 숲속의 보석, 열정만큼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두 줄 벌새 수놈의 접근에너지를 낭비하면 안 되지만 수컷은 살아있는 것을보여주고 싶었다 그래도 암컷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비애를그와 내가 공유하는 것을 알았다 나는 지금 심장 박동수가 떨어지고 있다 저쪽의 포식자가 나타나면 무릎을 꿇고 포승줄에 묶여가야 한다 생명 줄인 꿀은 선인장 가시로 둘러싸인 바위덩어리 안에 있다 울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우는 의미를 알 수 있을까 밧줄 끝에 매달려 있는 희미한 음표이래도 천사의 나팔꽃처럼 크게 진군하는 노래이다 벌새가 하나 둘 빛을 거두고 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바보 바보 박영환 산에 오르면 가끔 바보가 된다 뿌리는 뿌리대로 엉키고 가지는 가지대로 엉켜 있어도 귀찮아 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내어주며 살아가는 것이 바보스럽다고 생각하다가 바보가 되는 것이다 산에 올라 눈을 뜨고 있다가 바보가 된다 앞이 열려있는 재미에 빠져 있는데 눈을 감아보니 오히려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것이다 눈을 뜨면 앞만 보이는데 눈을 감으니 앞뒤가 다 보이는 것이다 산에 올라가 내려갈 걱정을 하는 것은 바보이다 내려갈 수 있으면 내려가면 되는 것이고 내려가지 못하면 거기 한 그루 나무가 되어도 좋을 것인데 말이다 올라가는 것은 목적도 아니고 내려가는 것이 진실도 아니다 우리는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숙제를 안고 쩔쩔매는 바보들이다.
개울가에서 개울가에서 박영환 시냇물이 막히지 않고 잘 흘러간다 개울에 자갈이 있고 심지어 바위같은 큰 돌이 있어도 물은 잠시 부딪혀 숨을 고를 뿐 가던 길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참 부럽다 아주 작은 돌의 저항에 숨이 거칠고 발의 인대가 늘어나고 가슴이 쿵쾅거린다 그럴 때도 있었겠지 깃발을 펄럭이며 흘린 땀에 감사하던 젊은 행진들 과거로 침잠하는 무늬들이 안개 속에서 자맥질을 한다 거기서 잠들면 안되지 깨어나서 다시 외쳐야지 가던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석양,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