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38) 썸네일형 리스트형 저녁 나절에 저녁나절에 행전 박영환 늦가을 저녁나절 동리 한바퀴 돌았다 15대조 할아버지께서 심은 은행나무는 올해도 잎이 곱게 물들었다 잎사귀마다 어른의 말씀이 새겨져 가슴에 다가온다 아흔을 훌쩍 넘긴 흑석 어른은 아직도 정정하게 콩 타작을 하다 말고 반갑게 맞는다. 돌아가신 아버님 연배이기에 뵈올 때 마다 아버님 얼굴이 떠오른다 영신 형의 굴뚝 연기가 흰구름에 안기고 처마 밑 곶감은 맨살을 드러낸 것이 민망한지 귓볼이 빠알갛게 달아올랐다 형은 그 향수를 잊지 못해 대구 살림 접고 고향집에 돌아왔다 영모재 안뜰에서 탁영 선생의 오백년 기침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대나무 숲이 우우우, 오늘도 무오년 사화를 들려준다 전교 형님 집과 이장 당숙 집은 대문만 열려 있고 사람 소리는 없다 전교님은 향교에 가시고 이장님은 면사무소.. 눈오는 날의 청도역 눈오는 날의 청도역 2014년 12월 8일 아침/ 행전 박영환 하얀 눈이 내리는 청도역 바쁘지 않은 완행 열차가 발자국을 찍듯이 조심스럽게 들어오고 정겨운 숨소리는 겨울을 덥힌다 결국 흩어지려고 어지러웠던 것은 아니었구나 되돌아 둥글게 쌓이는 추억 그리고 그리움이 되겠다. 손 손 박영환 오른손을 다쳐 석고 붕대를 감게 되니 왼손이 대신 하는데 이렇게 못할 줄 몰랐다 숟가락질은 물론 글씨도 엉망이다. 비뚤비뚤 유치원 아이보다도 못하다 이 놈아, 한 번도 떼놓고 다닌 적이 없는데 그 동안 뭐 했니 그래도, 오른손의 일을 내 몰라 하지 않고 열심히 맡아주는 녀석이 기특하기는 하다 이 녀석이라도 없었더라면 어떡할 뻔 했나 아내가 허우적거리는 나의 왼손을 도와주며 짐짓 한 마디 한다 “마누라 잘 둔 것 같지요.” 빙그레 긍정을 하자 “나도 남편을 정말 잘 만난 것 같아요. 내가 아플 때 당신은 손만 되었던가, 발도 되었는데” 같이 웃는다 오른손도 손이고 왼손도 손이지만 두 손이 합쳐질 때 진정한 손이 되는 것 같다 부부도 마찬가지. 이전 1 ··· 106 107 108 109 110 111 112 ··· 44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