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38) 썸네일형 리스트형 질경이 차 질경이 차 박영환 아내가 질경이 차를 끓였다 질경이를 차로 마시는 것은 처음이다 길가나 산야에 아무렇게나 살아 좀처럼 내 세상이라고 어깨를 편 적이 없고 늘 아픔을 안으로 삭이며 눈을 감고 있었던 그다 그저 참고 견디라는 지엄한 요구에 아픔까지 사치였던 그는 스스로 회초리 하나 들고 다리에 피멍을 만들지 않았던가 온몸을 다한 뜨거운 향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찻잔을 들고 창밖을 내다본다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다 참고 덮어버리는 눈의 속성이 질경이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지 않느냐고 하니 아내는, 그도 그렇지만 자기를 잊어버리고 살아온 여인들의 삶이 바로 질경이의 모습인 것 같다고 했다 그렇구나 아내라는 강, 어머니라는 산, 얼마나 깊고 험한가 서린 김 사이로 할머니, 어머니의 얼굴이 다가왔다 이윽고 아내까지.. 도토리 키 재기 도토리 키 재기 박영환 도토리 키 재기란 말은 도토리에게는 억울한 누명이다 올망졸망 정겹게 산 것이 죄라면 죄이지만 정녕 도토리는 한 번도 키를 잰 적이 없다 그는 작은 몸집이지만 한 해를 알뜰하게 살아 보석 같은 열매로 멧돼지나 다람쥐의 겨울 양식이 되거나 사람들에게는 뼛가루를 녹여 묵이 될 뿐 조금도 내가 더 통통하다느니 색깔이 곱다느니 떠벌리지 않는다 정작 사람들이 얼마나 키 재기를 하고 있는가 키재기의 대본에는 자랑과 다툼으로 가득 차 있다 가지고 있는 것, 알고 있는 것 속주머니에 그냥 두어도 될 일을 구태여 무대 위에 올려 커튼을 여는 심사는 무엇인가 막이 내릴 때쯤 관객은 그게 그것이라고 고개를 젓고 있는데도 까치발을 들어 한사코 우기는 그것이 키재기의 비극이다. 김이 모락모락 난다 김이 모락모락 난다 행전 박영환 오랜 만에 찾은 모교, 이서초등학교 이상하게 가슴이 콩닥거린다 아련한 첫사랑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기분 어서 오너라 낯익은 수문장, 느티나무의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목소리 바지춤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뛰놀던 동산 구부정한 소나무 한 그루,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를 업어주고 난 뒤에도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업어주었기에 저렇게 허리를 더 못 쓰게 되었을까 운동장이 좁아졌다. 옛날엔 참 넓어, 뛰어도 뛰어도 저 만큼 남았는데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숨을 걸고 외치던 함성 수 천명 웅대한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아이들 몇 명만 썰렁한 음표를 만들고 있다 교실을 기웃거려 본다 유리창에 늙은이 한 사람이 다가온다 어쩌면 알 것도 같고 아니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난해한.. 이전 1 ··· 105 106 107 108 109 110 111 ··· 44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