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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행전 박영환 산을 허위적 허위적 오르는 어떤 남자가 뱀을 쫓아내고 있다 감당하기 힘든 질긴 악연 막대기 하나에 힘을 주나 허공만 찢어진다 온몸에 짙은 문신을 하고 친한 듯 혀를 날름거리는 꽃뱀 기어이 내쳐서 보내야 한다 지지 않으려는 뱀의 휘어진 눈길이 수풀 속으로 잠시 피한다 머뭇거리지 말아라. 다시는 친한 체 하지 말아라 처절하게 외치고 간절하게 옷깃까지 여미지만 시린 산바람 속에 낙엽이 자꾸만 가슴을 흔든다 어디서 숨어온 두견새 휘파람 소리에 남자는 다리를 절룩이며 걸어가고 있다.
호박 호박 행전 박영환 호박이라고 놀리는 그 누군가에게 니가 진짜로 호박이라고 말하게 되면 그건 욕이 아니고 칭찬이다 세상에 늙을수록 더 좋은 것이 호박밖에 더 있는가 그 넉넉한 모습 안에서 밖으로 익혀 세월을 자랑할 자신이 있으면 호박이니 뭐니 하고 들먹여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호박이 되었으면 좋겠다 넝쿨째 굴러가며.
열쇠와 자물통 열쇠와 자물통 행전 박영환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아니면 그 어느 누구도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첫날밤의 신방처럼 설레임에 잠시 가쁜 숨소리가 들린다 약속된 인연이라 다툴 일이 없으니 창과 방패는 축제의 한몸이 된다 분명히 선연이로고 열쇠는 미소를 머금는다 기어이 열고 말겠다 열쇠는 예리한 몸짓으로 자궁에 파고들 때를 노리고 있다 태풍 전야처럼 무서운 공포가 스치고 지나간다 정해진 운명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창과 방패의 비극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악연이로고 자물통은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