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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32)청도 유림들이 풍월(風月)을 읊던 선유지(仙遊地)인 산수정(山水亭) 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32) 청도 유림들이 풍월(風月)을 읊던 선유지(仙遊地)인 산수정(山水亭)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향교 홍보장의. 청도문협 회장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남산에 자리 잡고 있는 산수정(山水亭)을 찾았다. 이 정자는 1893년(고종 30) 단오날에 소강(小岡) 최익주(崔翼周) 선생이 청도의 진산인 화산(남산) 옥정동 계곡에 창건하여 청도 유림들이 모여 풍월을 읊던 선유지(仙遊地)였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쇠락하여 무너진 채 복원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1959년 최덕수(崔德壽), 박도야(朴道也)가 중심이 된 화양보승회(華陽保勝會)가 청도 지역 선조들의 풍류를 잇고자 복원을 했다. 그러나 장소는 동천리에서 교촌리 청도향교 뒤편에 있는 화강지 언덕으로 옮겼고 이름도 ‘화악루(華岳樓..
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31)경주 이씨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종친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화수정(花樹亭) 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31) 경주 이씨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종친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화수정(花樹亭)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향교 홍보장의. 청도문협 회장 청도군 청도읍 고수 2리(냉정 冷井)에 소재하는 화수정을 찾았다. 이곳은 경주 이씨 종친들이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종친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세운 재사이다. 경주 이씨의 시조는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다. 그는 신라의 6촌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으로 혁거세(赫居世) 왕을 옹립하여 신라를 세웠으며 아찬(阿餐)에 올랐고 유리왕(儒理王) 9년에는 급량부장(及梁部長)이 되었으며 이씨(李氏)로 사성(賜姓)을 받았다. 그 이후 경주이씨의 중시조는 이거명(李居明)이다. 그는 신라 때 십칠 관등 중 귀족 진골(眞骨)만이 오를 ..
아까운 청도의 자산 삼국유사와 죽바위 아까운 청도의 자산 삼국유사와 죽바위 행전 박영환 교직에서 퇴직을 한 뒤 40년 동안 머물던 부산을 떠나 고향 청도에 돌아와 인터넷에 ‘청도문학신문’이란 까페를 개설한 뒤 ‘청도탐방’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혼자 다니며 자료를 수집하였지만, 청도문화원 ‘우리 문화바로알기’와 '청도 문화연구회'에 가입한 덕분에 많이 배웠고 따라서 더 충실한 자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 군내 명소나 마을 곳곳을 나름 열심히 발품을 팔았고 덕분에 까페에는 꽤 많은 관련 자료들이 탑재될 수 있었다. 마침 이 자료들이 ‘청도향교지’와 ‘청도 마을지’에 활용되고 또 ‘청도신문’에 연재되기도 했다. 그리고 전국의 여러 까페 등에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일련의 활동이 청도를 알리는데 조그마한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