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36) 썸네일형 리스트형 청도 향교 석전대제 추향 공기(孔紀) 2575년(2024) 9월 10일 청도향교 석전대제 추향이 청도군수 및 군의회의장, 군의원 등 여러 내빈과 향교 이사들이 참석한 가운에 열렸다. 이날 석전대제 초헌관에 박영환 아헌관에 박순가 종헌관에 김종대 동종헌관에 이재선 서종헌관에 이종해 집례에 이승화 대축에 박훈상 찬창에 김용협 님이 맡았다. 헌관 이하 참사자 전원 절 4회를 한다전폐례(奠幤禮 향불을 올리고 폐비를 신위전에 올리는 일) 뒤에초헌관은 초헌례(初獻禮)를 행한다.초헌관은 알자의 인도를 받아 대성지성 문선왕 준소에 나아간다문선왕 신위전에 초헌관은 술잔을 받아 전작에게 건네면 전작은 술잔을 신위전에 올린다대축이 축문을 읽는다사진 및 동영상은 하광원 청도향교 서예반 교수께서 촬영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창의를 한 청도 송은松隱 박익朴翊 선생의 후예 14의사義士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창의를 한 청도 송은松隱 박익朴翊 선생의 후예 14의사義士 행전 박영환 *다음은 숭덕전 신문에 실린 내용입니다.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이 함락되고 4월 18일에는 밀양, 20일에는 청도가 함락되고 말았다. 적들이 한양으로 진격하는 중요한 길목인 밀양, 청도가 일찍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삽시간에 영남의 6〜7개 읍이 적에게 짓밟히고 말았다.이러한 절대적인 위기에서 밀성 박씨 소고공파 일가는 의병을 일으켜 지역과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을 섰다. 이분들은 청도읍성 탈환을 비롯하여 청도의 곳곳에 침투한 적들을 소탕했고 때로는 인근 고을에 원정을 하기도 했다.14의사들은 모두 부자父子, 형제, 숙질叔姪, 종형제 사이.. 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25)세거지와 묘소 두 곳에 건립한 증 병조판서 윤종충(尹宗忠) 선생의 태안재(泰安齋) 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25)세거지와 묘소 두 곳에 건립한 증 병조판서 윤종충(尹宗忠) 선생의 태안재(泰安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태안 윤종충(泰安 尹宗忠) 선생을 배향하는 태안재(泰安齋)는 매전면 용산리(龍山里)와 덕산리(德山里) 두 곳에 있다. 용산 재실은 후손들의 세거지에 창건했고 덕산 재실은 공의 묘소인 덕산리 장승산(長承山) 아래 묘재(墓齋)로 건립한 것이다. 1890년에 창건한 용산리 재실은 정면 4칸이며 대청에는 류도승(柳道昇)의 ‘태안재기(泰安齋記)’, 12세손 화중(華重)이 쓴 ‘상량문(上樑文)’, 태안 선생의 시가 걸려 있다. 청도문헌고(淸道文獻考)에는 후손인 도일(道一), 좌일(佐一), 문병(文炳), 경중(敬重) 등이 의논해서 집안의.. 이전 1 ··· 40 41 42 43 44 45 46 ··· 44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