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36) 썸네일형 리스트형 더 아픈 손가락 더 아픈 손가락 행전 박영환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 애써 아니라고 웃고 있어도 그 아이의 눈물을 알고 있다. 참으로 모진 바람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아이는 꽃향기에도 멀미를 하고 밝은 달에도 눈이 부셔 커어튼을 내린다. 생인손을 앓고 있는 손가락, 그 손가락 때문에 나는 늘 장갑을 끼고 있다.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53)김면(金沔)과 김귀천(金貴千) 선생의 충의를 기리는 효양재(孝養齋)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53) 김면(金沔)과 김귀천(金貴千) 선생의 충의를 기리는 효양재(孝養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청도문인협회 회장 청도군 매전면 동산2리, 효양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김해김씨 문중의 효양재(孝養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김면(金沔)과 김귀천(金貴千) 선생이다. 두 분은 문간공(文簡公) 매천(梅川) 김시(金蓍)의 주손으로 2품 벼슬에 올라 공신들에게 주는 채읍을 물려받았다. 김면은 조선 중종 때 정국공신으로 광천군(廣川君)에 봉해졌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와 뜻이 맞아 개혁에 적극 동참했는데 조광조 등 신진사류가 기묘사화(己卯士禍)에 변을 당할 때 연루되어 귀양을 가게 되었으며 귀양지에서 돌아온 뒤 청도에 내려왔다. 아들인 광천공..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52)소요당(逍遙堂)과 삼족당(三足堂) 선생이 도학을 논하고 구휼(救恤)을 하던 운수정(雲水亭)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52) 소요당(逍遙堂)과 삼족당(三足堂) 선생이 도학을 논하고 구휼(救恤)을 하던 운수정(雲水亭)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청도문인협회 회장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 동창천변의 암반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운수정(雲水亭)을 찾았다. 이곳은 밀성 박씨가 관리하고 있는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전면에는 퇴와 툇마루를 두어 마루와 연결하였고, 사방에 헌함(軒檻)을 돌려 누마루로 꾸몄다. 원래 이 곳은 1518년(중종 13)에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 1479∼1560)과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 1479-1552) 선생이 청도 곰티재 동쪽 지역 주민들이 산간지대에 살고 있기에 화물유통이 어렵고 교통이 불편한 점을 고려하여 조세(租稅)에 .. 이전 1 ··· 410 411 412 413 414 415 416 ··· 44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