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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 자귀나무 행전 박영환 내가 사랑하는 나무 중에 자귀나무가 있다. 이 자귀나무는 6월 중순에서 7월 중순까지 약 한 달간 꽃을 피운다. 나는 이때쯤이면 자귀 꽃을 만나는 재미 때문에 신이 나고 흥겹다. 내가 이 꽃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도 꽤 오래되었다. 십수 년 전 등산을 하다가 우연히 자귀나무 군락을 발견하였는데 그 밝고 화사한 자태가 얼마나 곱던지 이내 흠뻑 취하게 되었다. 자귀꽃의 색깔은 분홍이지만 이도 자세히 보면 조금 짙은 것도 있고 연한 것도 있다. 이 꽃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꽃술이 모여 하나의 꽃봉오리를 만드는 조화미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한 개씩을 보면 실 꽃인지라 볼품이 없지만 조금 떨어져서 봉오리 전체를 바라보면 어느 꽃도 흉내내지 못할 그윽하고 탐스런 꽃등이 되고 이 꽃등들이 나무 전체..
길강(吉江)에게 길강(吉江)에게 - 40년 전 최전방 소대장의 편지 7월 13일(토) 吉江 지금 나는 중부전선인 강원도 철원 땅에서 모기떼를 쫓으며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놈의 모기들은 녹색의 제복에 달린 장교 계급장이며 수류탄도 겁을 내지 않고 면상을 성가시게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6.25 전쟁 중에 가장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그 유명한 철(鐵)의 삼각지(三角地)란 곳입니다. 군사지도를 펴놓고 북쪽의 평강과 남쪽의 철원.김화에 선을 그으면 삼각형이 됩니다. 그 삼각의 능선 곳곳에는 전쟁 내내 고막을 찢는 포성 소리가 화약 연기를 뿜어냈으며 그 소리와 연기에 질식한 젊은이들의 처절한 비명이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전쟁으로 죽어간 이름 없는 병사들의 녹슨 철모가 산야에 힘없이 뒹굴고 있습니다. 이제, ‘휴전’..
내가 주인인 시대 내가 주인인 시대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수학 선생님은 입학시험과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주기 바란다고 하면서 ‘뫼비우스의 띠’라고 칠판에 쓰고는,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에 대해 설명한 뒤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 곡면을 화제로 올리기 위해 학생들에게 난센스 퀴즈 같은 질문을 낸 뒤 다음과 같은 독특한 결론을 내렸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는데,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면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한 학생은 얼굴 더러운 아이가 씻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