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인인 시대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수학 선생님은 입학시험과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주기 바란다고 하면서 ‘뫼비우스의 띠’라고 칠판에 쓰고는,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에 대해 설명한 뒤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 곡면을 화제로 올리기 위해 학생들에게 난센스 퀴즈 같은 질문을 낸 뒤 다음과 같은 독특한 결론을 내렸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는데,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면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한 학생은 얼굴 더러운 아이가 씻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씻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다시 똑 같은 질문을 했다. “어느 쪽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인가?” 아이들은 이번엔 깨끗한 아이가 씻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답 역시 틀렸다고 했다. 이유는, 똑같은 청소를 했는데 한 아이의 얼굴은 깨끗한데, 다른 아이의 얼굴이 더럽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였다.
나는 그 수학 선생님의 말에 대부분 공감을 하면서도 약간 의견을 달리하는 점도 있었다. 굴뚝 청소를 했다면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자기의 얼굴이 더러워진 것을 알 수 있어야 하고, 또 굴뚝 청소를 같이 했더라도 숙달 정도에 따라 얼굴이 전혀 더러워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문답이 유도하는 방향이 다른 쪽에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사실, 나는 그것보다는 그런 문답을 한 시간이 수학 시간이란 데 오히려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의 교육현장에 수학 선생님이 입학시험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시간을 보낼 여유가 있었던가? 이것이 마지막 시간이기에 망정이지 학기 중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책도 없이 들어와 교과서 외 강의를 했다면 학생들은 별로 호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입시라면 당연히 수학 과목이 빠질 수 없고 이 과목은 아주 어려운 과목으로 각인되어 있기에 많은 학생들은 수학을 잘 하는 것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생들이 이처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과목이니 수학 선생님들도 상당한 부담감을 가지고 수업을 하고 있고 밤새워 교재 연구도 하고 열강을 하느라 언제나 시간에 쫓긴다.
아마 이런 퀴즈가 나올 수 있다. "수학을 못 하는 사람이 과외를 받을 것인가,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과외를 받을 것인가?”이에 대해 수학을 못하는 사람이 과외를 받는다는 것도, 잘하는 사람이 받는다는 것도 모두 틀린 답이다. 전부 받는다는 것이 정답이다.
그런데 근래 수학과목의 위치가 바뀌었다. 요지부동의 자리를 지키던 수학이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도 자연계열에서는 수학을 필수로 하고 있지만 인문, 사회계열 중 많은 대학은 수학시험을 치르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 사실 수학만 그런 것이 아니고 입시의 한 축이었던 영어나 언어영역 역시 전형에 빠진 대학이 있다. 이는 엄청난 사건이며 입시의 혁명이다.
이제 일률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던 시대는 지났다. 모든 것이 개별화, 개성화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살려면 그야말로 자율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그런데 혹시 굴뚝 청소를 한 아이처럼 모두가 그을음이 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극적이거나 도피적인 선택이 된다든지, 아니면 자기의 얼굴은 보지 못하고 남의 얼굴을 보고 따라가는 부화뇌동하는 선택은 없는지? 자율적인 선택은 자기의 내일을 열어줄 적극적인 선택이다. 이제 내가 주인인 시대다. 내가 주인인 시대 - 이는 우리 앞에 펼쳐진 과제이며 또 하나의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