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얻은 돌(1)
몇 년 전에 작고하신 P 교장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시면서 당신의 책상 위에 두고 보시던 풍란을 붙인 돌 하나를 주고 가셨다. 그것이 석부작에 대한 첫 인연이다. 그 돌은 학교 뒤편 승학산 돌이다. 이 산의 돌들이 아주 빼어난 석질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화산석으로 검은 바탕에 구멍이 송골송골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수석감은 되지 못하지만 그 위에 풍란을 몇 점 붙여 놓으니 나름대로 운치는 있었다. 나는 잘 키우라는 고인의 유지를 생각하며 10여 년 이상 나름대로 정성을 다했다. 그 동안 꽃도 몇 번 감상하였다. 그리고 이 놈의 향기가 괜찮다고 생각할 때마다 석부작을 조금 더 늘일 생각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은 가라앉곤 했다. 그런데 가덕도에 근무할 기회가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늘일 기회가 왔다.
섬에의 생활 - 지역 여건 상 매일 출퇴근을 하지 못하고 그곳, 사택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방과후 무료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수석채집에 나섰다.
가덕도에는 기이한 모양을 한 혈석(血石)이 있다. 이 돌들은 가덕도 동쪽 새바지에서 기도원에 이르는 약 1km 정도의 바닷가에 있는데 그야말로 대 군락이다. 얼른 보면 전부 같은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크기뿐만 아니고 무늬의 강약도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전체적인 족보는 같다. 이들은 핏줄이 엉켜 있는 모습이기에 일명 ‘심장석’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혈석은 그대로만 있어도 찾는 이를 충분히 매료시키지만 그 절정은 파도에 얼굴을 씻었을 때이다. 물기가 가면 실무늬까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모습은 환상적이다.
그런데 때로는 그 돌무덤의 빛깔이 꽃빛보다 더 진한 핏빛이기에 숙연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혹시 처절한 최후를 마친 용사들의 마지막 흘린 피가 절규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비가 쓸쓸히 내리는 날이나 아니면 저녁놀에 투영되는 핏자국은 멀리 가락국의 병사들이 신라군에 쫓겨 섬으로 숨어들었다가 더 달아날 퇴로를 찾지 못하고 장렬한 최후를 마칠 때 흘린 피눈물이 그대로 돌을 타고 흐르다가 굳어진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혈석이 있는 곳은 이곳밖에 없습니다. 무늬가 정말 독특합니다. 어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그 자체가 예술입니다. 저는 이 돌들을 볼 때마다 가덕도에 사는 보람을 느낍니다.” 이 고장 출신 수석 수집가 박 선생의 예찬이다. “정말입니다. 우리가 이 혈석을 만난 것은 큰 행운입니다.” 역시 수석에 조예가 깊은 김 선생이 화답을 했다.
우리는 틈만 나면 경쟁을 하듯 명석(?)을 수집하기 위해 바닷가를 누볐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전날 이를 잡듯 찾아도 보이지 않던 것이 이튿날 똑같은 장소에서 우연히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이다. 밤사이 누군가 몰래 가져다 놓은 것 같다. 그러한 묘미가 있기에 이미 몇 번이나 뒤진 바닷가이지만 또 다시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명품을 발견하면 “심봤다”고 외쳤다. 정말 그 때의 기분은 심마니의 산삼 발견과 다를 바 없었다. 행운을 잡은 사람은 간밤 꿈 이야기를 하는 등 호기(豪氣)를 부리며 돌의 특성을 살려 이름을 붙였다.
나도 다른 사람이 보면 신통치 않은 것일지 모르지만 나름대로는 대단한(?) 명작이라고 작명하여 자랑하는 것들이 몇 개 있다.
‘천지연’ - 이놈은 가덕도 새바지 방죽 근처에서 얻은 것이다. 처음, 흙에 반정도 묻혀 있을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끝 부분이 약간 특이하여 호미로 파기 시작했는데 흙을 끌어낼수록 겉보기와는 너무 달랐다. 그 모양이 드러나는 순간 ‘우와’하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몸 색깔은 짙은 주황색이었다. 전체가 돌기와 굴곡이 많은 타원형인데 가운데쯤은 주먹이 하나 들어 갈 만한 동굴이 있고 정상 부분은 천지연을 연상시키는 분화구 모양이 있었다. 이놈은 덩치도 보통 아니었다. 큰 배낭이 찢어질 정도로 겨우 들어갔는데, 나중에 무게를 달아보니 정확하게 67kg이었다. 이놈을 등에 지고 2km가 넘는 길을 걸어왔는데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아마 이 일을 억지로 누가 시켰다면 온갖 불만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사택에 도착하여 흙을 씻어내니 인물이 더한층 났다. 역시 돌을 좋아하는 성 선생이 호스 물을 정상 분화구에 드리우며 “과연 천지연일세”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음은 ‘병풍암’- 이는 떼를 써서 얻은 것이다. 원래 이것은 몇 발 앞서가던 김 선생이 발견한 것이다. 김 선생의 ‘어’하는 감탄사를 듣는 순간 그와의 대면이 시작되었는데 한눈에 ‘멋지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레 ‘병풍암’이란 이름을 붙이고 무척 탐을 내며 떼를 쓰자, “아마 주인은 박 선생인 것 같소” 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않는 눈치였다. 이 놈은 산수석의 요건을 완전히 갖추었다. 봉우리가 있고 반석이 있으며 계곡이 있다. 이렇게 잘 갖춘 놈도 드물다. 그 날 저녁, 술밥 간에 톡톡히 한턱 썼다. 이외에도 ‘부엉이’와 ‘보물섬’, ‘사자상’ 등도 그곳에서 수집한 혈석군이다.
그곳에서 얻은 것 중 유일하게 ‘매부리코’만 색깔이 검은 오석(烏石)이다. 이놈은 매의 기상이 있다. ‘황금의 비로봉’은 어떤가? 황금빛을 띤 고고한 기상은 범속을 벗어난 기개가 있다.
점차 다른 지역의 돌들도 모으기 시작했다. 오십천에 가서는 ‘월계관’ ‘보름달’을 구했다. 지리산에서 구해 온 ‘요술섬’, 변산 반도에서 온 ‘석양’, 함양의 ‘백선 나그네’, 멀리 제주도의 ‘마라도’ 및 고향 청도의 ‘이야기 바위’ - 이놈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잘하는 입을 가졌다. - 도 있다. 이만하면 전국 곳곳의 돌들이 구색을 갖춘 셈이다.
이들 돌마다 그 형상의 특징을 살려 풍란을 붙이기 시작했다. 나는 풍란을 붙이면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말을 떠올렸다. 풍란을 붙였을 때 비로소 돌이 새로운 눈망울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일과는 이들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정성스럽게 물을 주는데 혹시 급한 일이 있어 이들을 뵙지 못하고 나온 날은 이상하게도 찜찜하여 다른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았다. 멀리 여행을 하다가도 전화를 걸어 이들의 안부부터 먼저 묻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받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돌을 좋아하는 사람을 ‘돌아이’라고 한다. 이는 ‘도라이’와 통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개의치 않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