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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소싸움

  소싸움


 행전 박영환

 

  우리가 어릴 때, 소싸움을 많이 붙였다. 소를 먹이던 아이들은, 공연히 자기네 소 자랑을 늘어 놓았다. '우리 소 뿔은 김유신 장군 칼이다.' '우리 소 목힘은 항우 장사도 못 당한다.' '우리 소 다리 는 한강 다리 저리 가라다.' 저마다 저네 소가 최고라고 입에 침이 말랐다. 자랑에 지치면, 끝내, 소싸움으로 결판을 내게 되어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저수지 뒤 공터에 모여 들었다. 고삐를 푸는 것으로 싸움의 시작이 된다. 황소란 놈은 좀 미련한 일면이 있었다. 보통 때는 순진한 큰 눈을 바보처럼 꿈벅이다가도, 일단 적의를 품은 상대를 만나게 되면 갑자기 두 눈이 충혈되어 분노를 끓이며 철천지 원수처럼 덤벼 들었다.

  거센 숨을 몰아 쉬고 바람을 일으키며 치고 받고 할 때 우리도 들떠서 힘차게 응원을 했다. '우리 소 이겨라', '우리 소 잘한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소가 주인의 응원빨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주인이 목이 터져라 기를 써서 응원을 하면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사력을 다해 싸우고 만일 주인이 응원을 해주지 않으면 싸움도 시들하게 하고 싸움이 끝난 뒤에도 괘씸하게 여겨 주인에게 달려 들기도 했다. 그것을 보면 소를 무턱대고 미련하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한 번 싸움을 시작하여 불이 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끝장을 보려 했다. 그래서, 싸움을 떼는 데도 애를 먹었다. 그런데 소싸움은 싸움을 할 때는 격투기 이상의 짜릿한 스릴과 쾌감이 있었지만 항상 뒷일이 문제였다. 날카로운 뿔에 긁힌 상처, 머리에서부터 뒷다리까지 어디 성한 데가 있을 수 있는가?

  할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이 떠올랐다. 긁힌 흔적을 감추기 위해, 상처가 난 부분에 소똥을 발랐다. 일부러 할아버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완전히 어둑해져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와 이렇게 늦게 댕기노(늦게 다니느냐)?"

  할아버지께서는 언짢은 표정으로 소부터 훑어 보셨다.

  "소가 풀을 너무 잘 뜯어 먹어서 좀 더 믹이 가지고(먹여 가지고) 오니라고 늦었심더"

  나는 시침을 떼었지만 할아버지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한 눈에 척 보면 소싸움을 붙인 것을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쳐 있는 소가 안쓰럽다는 듯이 등을 쓸어 주시며

  "허허 소가 반 죽따가 살았는 가베(살았는가 보구나), 허허 온 덩더리가(등이) 피 범벅이구먼. 니 자꾸 이래 싸움 붙여 가지고 가실(가을에 하는 일) 하겐나?"

  "…. "

  나는 고개만 푹 숙였다.

  "만일 소가 우애 되면(어떻게 잘못 되면), 니는 중핵교 가기 힘들데이"

  그 때 나는 고개는 숙이고 있어도 별로 반성을 하지 않았고 매번 싸움을 붙이지 않겠다고 겉으로 약속을 하곤 했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사실 아무리 싸움을 붙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도 또래들이 부추긴다든지 아니면 가만히 있는 소를 다른 소가 시비를 걸어 온다든지 하면 공연히 부아가 일어나고 싸움 벽이 슬슬 끓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소도 나 못지 않게 싸움 벽이 있었다. 내가 소싸움을 좋아하게 된 데는 우리 소한테도 책임이 다분히 있었다. 놈도 다혈질이었다. 공연히 근질근질하여 어느 놈이 건드려 주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한 판을 벌였다. 그런 면에서 그와 나는 의기가 단단히 투합 되었다.

  검붉은 빛깔에 날카로운 뿔, 딱 벌어진 우람한 어깨, 그 큰 눈에 핏발을 가득 담고 주둥이를 아래로 깔며 산이 무너질듯한 포효를 터뜨리면 인근에 어느 소도 감히 당할 자가 없었다. 누가 뭐래도 '챔피언'이라는 자존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뒷산 큰 대릉 골짜기에서 소를 먹이고 있었는데 저 쪽 작은 대릉 기슭에서 웬 검은 소 한 마리가 우리 소를 향해 달려오며 도전장을 던졌다. 색깔만은 야무졌지만, 아무리 보아도 덩치가 우리 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작은 놈이었다.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 가소롭기도 했지만 반면 괘씸하기도 했다. '어떠니 ?' 우리 소에게 동의를 구했다. '명령만 내리소서'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좋다. 그러지 않아도 요즈음은 할아버지 꾸중이 무서워 많이 참고 있었는데 잘되었다. 네 이놈 맛 좀 봐라" 고삐를 풀어 버렸다.

  두 마리의 소는 드디어 머리를 맞대고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네 이놈 얼마나 견딜까' 느긋한 마음으로 지켜 보았다. 그러나 잠시 후 정말 일순간 상상치도 못할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 소가 발을 헛디뎠는지 아니면 급소에 정통으로 훅을 맞았는지 고목나무가 쓰러지듯 다운이 되어 버렸다. 계곡에 등을 처박고 다리를 빳빳하게 세워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르는 모습. 카운트 다운. 눈이 휙 돌아 가며 근육도 굳어 갔다.

  그러나 신바람이 난 검둥이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뿔을 엇세워 무차별 난타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우리 소는 꼼짝 달싹하지 않고 바보처럼 피만 흘릴 뿐이었다. 큰일 났다. 우리 소가 죽게 되었다. 와락 한기가 들었다.

  막대기와 돌멩이를 동원하여 검둥이를 겨우 쫓아내기는 했지만 우리 소는 일어날 기색이 영 없었다. 등을 치며 고함을 쳐도 묵묵부답.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분명히 죽었다. 부들부들 떨렸다. 만일 소가 죽게 된다면 큰일이었다. 시골에서 소는 전 재산이나 다름이 없었다. 싸움을 자꾸 붙이다가 탈이라도 나면 중학교도 못 갈 것이라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머리를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 금방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앞이 캄캄했다. 누군가를 찾아 구원을 요청하려고 고함을 질렀다.

  "거기 누구 없심니꺼?"

  한참 고함을 지르니 풀을 베던 동네 아저씨 한 분이 뛰어왔다.

  "와 카노."

  "우리 소가 죽었심더."

  "뭐라카노!"

  아저씨는 깜짝 놀라 소를 살폈다. 소를 향해 몇 번 고함을 질렀으나 역시 소는 바위처럼 굳어 있었다. 아저씨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소의 등을 이리저리 만지더니 등 어딘가를 힘차게 손바닥으로 갈겼다. 그 때 그렇게 죽은 듯이 꼼짝 않던 소가 화다닥 일어났다. 갑자기 하늘이 환하게 밝아졌다. 감격스러웠다.

  그날, 풀이 죽어 힘없이 비틀거리는 소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사건 이후, 다시는 소싸움을 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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