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외
행전 박영환
생명은 질긴 것인가? 아주 여린 것인가? 일순간 허무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을 보면 여린 것이 틀림없지만, 처참하리만큼 악조건인데도 의연히 삶을 일구는 것을 보면 그렇게 여리다고 낙담할 수만 없다.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환경 조건이 있다. 개체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최소한의 조건이라도 구비하여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그런데 가끔 이 통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기적이 발생하여 우리는 놀라곤 한다. 우리는 이런 기적을 대할 때마다 처음에는 생명의 신비로 이해하려다가 마침내는 삶에 대한 교훈으로 승화시켜 경외감으로 바라보게 된다.
주위는 완전히 시멘트 바닥이다. 작은 바늘 구멍 만한 틈새가 있을 뿐이다. 그 틈을 비집고 때늦은 참외 한 포기가 올라왔다. 운동장 가이라 아이들이 많이 다니고 요즈음은 학교 공사를 하기에 포크 레인이나 트럭도 다니는 곳이지만 용하게도 벽 쪽에 붙어 있어 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거처하는 사택 바로 앞이니 나도 매일 그 옆을 지난다. 풀인 듯한 한 묶음이 있어도 그저 잡초이려니 하고 대수롭잖게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여느 잡초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가지고 자세히 보니 그게 참외 포기가 아닌가? 어느 새 넝쿨이 제법 소복하게 나풀거리고 있다. 영양을 공급받기는커녕 물 한 방울도 제대로 얻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넝쿨을 뻗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앙증스러운 참외도 두 덩이나 달고 있다. 하나는 어린아이의 주먹만하고 또 하나는 엄지손가락 만한 것이다.
십 년 동안 꼬리에 못이 박힌 채 생명을 유지한 도롱뇽이 있었다. 일본의 어떤 사람이 집을 지은 지 10년 만에 집을 수리하기 위하여 벽을 헐었을 때 그 정경을 본 것이다. 아마 벽면에 못질을 할 때 용하게 꼬리 부분이 싸잡혀 들어간 것이다. 그에게는 때아닌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캄캄한 벽안,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그는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 내었다. 먹을 것은 다른 도롱뇽이 운반했을 것이다, 그도 그이지만 그를 구하기 위해서 10년을 하루같이 먹이를 날라 준 다른 도롱뇽의 집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먹이 운반은 누가 했을까? 부모일까? 아니면 배우자, 형제, 친구, 아아니, 전혀 관계없는 낯모르는 다른 도롱뇽인지도 모른다. 그 동안 그들은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리라. ‘참아야 한다.’ 위로도 하고, 때로는 기약 없는 고통 앞에 같이 부여잡고 통곡을 한 것도 한두 번이겠는가? 이 어찌 아무 생각이 없는 미물들의 본능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겠는가?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죽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환경이 중요한 요체임에는 틀림없지만 꼭 환경 그 자체가 전부만은 아닌 것 같다. 기름진 옥토에서 자라는 참외들 중에서도 병들어 말라죽는 경우가 있다. 언뜻 보아 그들은 병들 이유가 전혀 없다. 그들의 주인은 혼신의 힘을 다 바친다. 영양이 부족할세라 충분한 거름을 주고 수분이 부족할까 봐 때맞추어 물을 준다. 김을 매고 병충해의 근접을 막기 위하여 틈틈이 약도 뿌려 준다. 그런데도 몇 놈은 그 정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도에 탈락하고 만다.
도롱뇽도 마찬가지다. 꼬리에 못도 박히지도 않고 산야를 마음대로 누비는 양호한 환경인데도 일찍 죽는 놈도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을 참외 앞에 불러모았다. 이 아이들도 자신들의 환경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곳은 낙도이다. 문화의 혜택이 부족하다. 일주 도로가 없기에 도보로 통학을 한다. 비바람이 부는 날은 교복을 흠뻑 적신다. 폭염 속에서 큰 고개를 넘다 보면 수업도 하기 전 지쳐 버리기 일쑤다.
부모와 떨어져 있거나 부모가 없는 아이들도 많다.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늘 외롭다. 보육원 아이들은 항상 허전한 가슴에 그리움을 가득 담고 있다.
“우리가 비록 어렵다 하더라도 시멘트 바닥에 자라는 참외, 암흑의 공간에서 10년 간을 생활한 도롱뇽보다는 나을 것 같다. 우리 모두 용기를 가지고 힘차게 살아가자.”
“네”
밝은 목소리. 고맙다.
“선생님, 우리 참외 파티 합시다.”
“그럼 그럼, 참외 파티를 하여야지.”
까르르 터지는 웃음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