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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독도

  독도

 

 

 

                                행전 박영환

 

 

  이곳은 바위 두 개가 전부이다. 빼어난 절경이 있는 곳도 아니다. 밋밋하고 볼품이 없다. 흙도 별로 없어 나무나 꽃들이 살기 힘든 곳이다. 한 마디로 여느 섬처럼 섬 특유의 여유가 있고 포근한 낭만은 별로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섬을 그 어느 섬보다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7월 10일 17시 30분 한나라 호 배를 탔다. 이른바 ‘고교 교사 초청 독도 탐사반’ 일원이 되었다. 과연 독도는 볼 수 있을까! 지금은 장마철. 더구나 그곳은 일기가 고르지 못한 곳으로 소문이 난 곳이 아닌가? 작년에도 해양대학교에서 이 행사를 주관했는데 그 때는 밤안개가 너무 심하여 탐사는커녕 조망도 못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부산의 관문, 오륙도를 벗어난다. 육지에서 바다만 바라보다가 바다에서 육지를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역시 해운대는 미항(美港)이다. 갑자기 비상벨. 비상시를 대비하여 퇴선 훈련. 라이프 재킷을 신속하게 걸치고 구명  보트가 있는 곳에 집합. 두 번씩이나 연속 훈련. 전장 100M 정도의 큰 덩치, 안전하다고 자랑을 할 때는 언제이고, 너무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유비무환(有備無患). 그래 유비무환이지.

  노을이 탄다. 집이며 산 그리고 바다의 색깔이 온통 붉게 물들다. 류 선생이 소주 한잔을 권한다. 술 한 잔 안 할 수 있소? 그럼요. 선생님 제 술도 한잔 받으십시오. P여고 제자인 김 기자가 또 한잔. 선생님 저 형욱입니다. 저는 용태성입니다. 이들은 S 중학 제자. 반갑구먼 반가워. 이렇게 많은 제자를 동시에 만나다니. 나도 어지간히 교단 밥을 먹은 모양이다.

  새벽에 독도를 보게 될 터. 잠을 자 두는 게 좋을 거란다. 맞는 말. 침상에 머리 눕히다. 뒤척인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롤링은 별로 없지만 배는 역시 배. 같은 방의 선생님들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헛기침을 간헐적으로 컹컹한다.

  “선 내에 계신 여러 선생님들께 알려 드립니다. 지금 독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겨우 잠이 드는 가 싶었는데 방송 소리에 후딱 일어나다. 눈을 비비며 선수(船首)로 향하다. 여명의 우렁찬 함성과 함께 독도의 모습이 나타나다. 아직은 그저 윤곽뿐이다. 성급한 사람들은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바쁘다. 시속 30Km라고 하나 10km도 되지 않는 것 같다.

  드디어 독도. 5시 45분. 독도라고 외친 뒤, 약 한 시간이 지난 뒤, 겨우 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하기야 지금도 접안을 한 것이 아니다. 섬과의 거리는 약 1km 정도. 그러나 바로 옆에서 보는 듯 또렷하다. 대한민국의 국기가 선명하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얼마나 푸근하고 뿌듯한지 모르겠다. 독도에 관한 한 우리는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많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만 해도 그렇다. 분명히 우리 땅인데 역사적인 고증까지 곁들여 우리 땅이라고 강조하다니. 부산은 우리 땅이라고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하필이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절규하듯 외쳐야만 하는가. 이 모두 이웃을 잘못 둔 죄다.

  새삼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조차 이상하지만 역사적 당위성을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독도는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于山國, 당시 울릉도, 독도)을 정벌한 이래로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한 번도 우리 땅이 아닌 적이 없었다. 다만 15세기 초 국가 행정력(조선시대)의 편의를 위해 공도(空島) 정치(죄인, 부역 기피자들의 무인도로의 탈주를 막기 위한 조처)를 일시적으로 시행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절대로 주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히, 행정의 공백은 생기기 마련이었는데 이를 기화로 왜인들은 울릉도 및 독도 일원에서 나무를 남벌하고 고기를 남획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조선 숙종 때, 동래 출신 안용복(安龍福) 장군이 분연히 일어나 울릉도 지역의 일본인들을 모두 몰아내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일본 에도(江戶 - 東京)로 건너가 당시의 실력자인 덕천막부와 담판을 벌여 고기잡이와 도벌의 불법성을 엄중 항의하고 울릉도 및 독도가 조선 영토임이 분명하다는 확인서를 받아 내었다. 안 장군의 이러한 활동이 계기가 되어 덕천막부는 대마도주로 하여금 울릉도와 독도에 일본인이 출입을 못하게 하는 금지 조치를 취하고(1697, 숙종 23년) 또 이러한 사실을 우리 정부에 엄숙히  알리어 오기도 했다.

  그들이 독도를 인정한 것은 근세에도 있었다. 우리가 그들로부터 해방이 될 때도 ‘일본국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며 제주, 거문,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해서 모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을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2조에서도 명문화하였다. 이 조약에 대한 그들의 강변(强辯)은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그 조약에 어디 ‘독도’란 말이 있느냐는 것.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주장하는 섬은 독도가 아니고 지금의 울릉도 앞에 있는 죽도라고. 안용복 장군이 다시 그립다.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들의 윤무(輪舞)가 가득하다. 저 척박한 바위섬에도 식물이 살 수 있을까? 그 곳에도 섬괴불나무, 해송, 왕거미 등 초본 식물 50여종이 자생한다고 한다. 근래에는 푸른 독도 가꾸기 일환으로 동백꽃도 탐스런 망울을 터뜨리고 있다지만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힘들다.

  K.B.S 김지원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댄다. 선생님 한 말씀하셔야죠.     “우리가 여기 밤잠을 설치며 달려온 것은 단순하게 바위섬 두 개를 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를 지키는 슬기를 가꾸어야 합니다. 어제 선상 특강 시간에 강 교수님이 독도는 우리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동의를 합니다.”

  독도 수비대의 아침 체조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수고하십니다. 열심히 지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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