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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편 린

             편  린

 

 

고교동창생

  며칠 전 고교 동창회 모임이 있었다. 그런데 이날 뜻밖의 한 친구가 나타났다. 그 친구는 동창회 명부에 사망자 명단에 올라 있던 친구였다. 모두들 잠시 멍하니 쳐다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반가움의 악수를 나누었다.

  그 친구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80년도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하반신을 못쓰게 되었단다. 그 이후, 세상을 비관한 나머지 바깥출입을 전혀 안 했는데, 그렇게 소식이 끊어졌으니, 잘못 와전되어 사망자 명단에 넣은 모양이다.

  그 친구는 이야기했다. “얼마나 동창회에 나오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모양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에게 허락을 얻는데 꼬박 20년이 걸렸다. 그런데 친구들, 막상 나오기로 결정하고 나니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흡사 초등학생이 소풍날을 기다리듯이…….” 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 모두 코끝이 시큰해졌다.

  우리는 그 날 휠체어를 밀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들기도 하며 오랜만에 우정을 다졌다. 고교 동창생 - 정말 순수하게 마음껏 불러 볼 수 있는 그리운 친구이다.

 

  몽당연필

  2교시 시험 감독을 하기 위해 2학년 4반에 들어갔다. 이 반은 내가 수업을 하지 않는 반이기에 모두 낯선 얼굴들이었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은 송지리라는 학생에게 연필 하나를 빌려 달라고 했다. 그 때 그 아이가 내민 연필은 나에게 찡한 감동을 주었다.

  그의 연필은 몽당연필이었다. 5cm가 될까말까한 몽당연필을 볼펜껍질에 끼운 것이었다. 요즈음도 이런 학생이 있구나.!!! 5 - 60년대,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 때는 양말을 기워 신는 것은 필수이고 교복도 대물림을 하여 무릎이나 엉덩이를 누벼 입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근래에 물질이 풍부해지면서 너무 낭비하고 있는 풍조가 아닌가?

  요즈음은 시계 등 귀중품을 잃어버려도 찾아가지 않는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시계를 잃어버리면 거의 사색이 되지 않았던가? 옛날에는 호롱불의 석유도 아꼈는데 지금은 대낮에 전기 불을 환하게 밝혀놓아도, 필요 없이 수돗물이 마구 흘러 내려도 무감각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아이가, 설마하니 연필 하나 살 돈이 없어서 그렇게 했겠는가? 뒤에 알고 보니 가정 형편도 넉넉한 편이라고 했다. 몸에 밴 습관이었다. 아무리 물질이 풍부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잘 살더라도 근검절약은 우리들의 영원한 미덕이다. 지리야. 너무 고맙다.

 

 골든벨을 울린 학생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어느 시골 고학 여고생이 어느 방송국의 ‘도전 골든벨’ 프로그램에서 골든벨을 울려 퀴즈 영웅으로 등극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문산여고 3년 지관순 양.

  그 소식이 알려지자 지양과 비슷한 나이에 고학을 했던 서산장학재단  등 많은 분들이 장학금을 전달했다. 지 양은 골든벨을 울린 뒤, 인터뷰에서 많은 양의 독서를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학도가 되겠다고 포부를 털어놓았다.

  네티즌들은 주요 포털사이트에 ‘골든벨 소녀’ 에 대한 찬사와 격려의 글을 앞다퉈 올렸다.

  “지관순 양, 훌륭해요. 강남 8학군이 아니어도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공부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고맙네요”

  “지관순 양, 나는 솔직히 돈벌이가 되지 못해 사학도의 꿈을 접었는데 정말 부끄럽군요. 부디 사학도로서 조선 상고사를 연구하여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워 주세요”

  40대의 가장이라고 밝힌 네티즌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들에게 매우 좋은 귀감이 됐다. 어려운 역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내 아들도 배웠으면 한다.”

  경기도 문산 주민이라는 네티즌은 관순이가 어려운 환경에서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책뿐이었다면서

  “어릴 때부터 독서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책을 읽읍시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단풍이 물들고 있다. 단풍이 지고 나면 겨울이 온다. 지양은 이 번 겨울만큼은 따뜻하게 보낼 것이다. 그녀는 독서로 마음의 양식을 준비했고 주변의 온정으로 겨울 양식을 얻지 않았는가?

 

  천사빵집 아가씨

  옛날부터 ‘동냥을 주지 못해도 쪽박을 깨지 말라.’는 말이 있다. 오갈데 없이 굶주리고 있는 약자에게 너무 냉정한 세태를 꾸짖는 말이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번번이 동냥을 얻는 것은커녕 쪽박까지 깨어져 내몰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런데 얼마 전 동냥도 주고 쪽박도 어루만져 준 훈훈하고 아름다운 기사가 있었다. 길 지빈 씨의 이야기다.

 󰡒장애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길에서 구걸을 하는 그 아저씨를 본 순간 몸이 불편한 할머니와 아버지가 생각나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 강남역 부근 한 제과점에서 일하던 길 씨는 가게 앞 인도에서 팔은 전혀 못 쓰고 다리는 절단된 노숙자가 구걸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일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와 장애인 아버지를 집에 모시고 있는 길씨는 노숙자가 남 같지가 않아 제과점 주인에게 허락을 받은 뒤 빵 몇 개를 주섬주섬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노숙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 배 안고프시냐󰡓고 다정하게 말을 걸며 가져온 빵을 조금씩 떼내 직접 입에 넣어주었다.

  길씨의 도움을 받은 장애인 최 씨는 “14년 동안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구걸하는 생활을 했지만 직접 빵까지 먹여주는 고마운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이라며 “그 젊은이는 빵을 준 이후에도 길에서 만나면 안부를 묻고, 쓰러져 몸도 못 가누는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등 관심을 보여준다.”고 하며 고마워했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가슴 한 구석이 따뜻했다.

 

 작은 집

  요즈음은 너무 큰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도시도 큰 도시에, 동리도 큰 동리에 살아야 하고 키 큰 사람과 결혼해야하고, 물건도 큰집에 가서 사고,  음식도 큰집에 가서 먹는다. 차도 큰 차를 굴리며, 집도 큰집에 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이다.

  설사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남의 체면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변을 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사업을 하는 사람 중에는 차가 좋지 않으면 처음부터 한 단계 접고 들어가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큰 차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떤 호텔에는 아예 소형차는 주차하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다. 집의 평수에 따라서 사람 등급도 달리 평가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빚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규모를 늘려야한다고 한다. 

  호주에 살고 있는 오 지혜 씨 - 뜻을 가지고 30대에 시드니 법과대학에 지원, 그녀는 2년 동안 속이 없는 엉성한 김밥으로 생활하며 독하게 공부를 하여, 마침내 성공. 돈도 모으고 명성도 얻었다. 그녀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때 자랑스런 한국인 몇 명을 선발하여 초청한 적이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다. 아무튼 그녀는 이렇게 어렵게 재산을 모았지만 아직도 근검절약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좀더 많은 돈을 모아 사후에 자신을 길러준 시드니 법대에 기증하기로 약속하고 오늘도 아주 작은집에 살고 있다. 기자가 물었다. 큰집에 살지 않는 이유는? 그녀는 소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큰집에 살면 청소하기 힘들잖아요.

  풍수지리를 건축에 응용하고 있는 박시익씨는 그의 저서인 ‘한국의 풍수 지리와 건축’에서 한사람에게 적당한 집의 면적을 6평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가령 4인 가족이 살 경우 24평이 적당하다고 한다. 가족 수에 비해 집이 너무 넓으면 빈방이 많아 집안에 생기가 잘 돌지 않고, 넓은 공간으로 인해 허전함과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기(氣)는 모일수록 좋은 것이므로 약간 작은 듯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풍수지리설로 볼 때 좋다는 것이 풍수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오 씨는 이미 그것을 터득하고 있었던가!

 

 남자가 여자를 업는다는 것

  전라도 남원 땅 어느 마을에 느닷없이 ‘어머니날’이 생겼다. 그들은 집집마다 태극기도 달았다. 이 무슨 일인가? 알고 보니 ‘어머니’는 그 동리 아주머니나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날은 자녀들이 아니고 남편들이 기리는 날이다.

  이곳은 삼베의 고장이다. 그 고된 삼베 일에 여인들은 제대로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고생에 찌들어 있다. 남편들은 이러한 아내들의 고생을 너무 마음 아파하였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일년 중 하루만이라도 아내들을 푹 쉬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이 ‘어머니날’만은 아내들은 전혀 일을 하지 않고 모여서 놀게 했다.

  남편들은 아내를 위해 투박한 손놀림으로 음식을 장만했다. 그래도 정성을 가미한 음식은 푸짐했다. 기자가 물었다. 몇 점이냐고. 아내들은 백 점이라고 크게 외쳤다. 백 점 짜리 남편에 백 점 짜리 아내가 되는 순간이다. 방송국에서도 이 마음을 알고 ‘직녀성’이란 아늑한 마을 공동작업장을 만들어 주었다.

  아무리 고된 일이라도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알아준다면 아내들은 비록 고생을 하더라도 마음만은 밝게 풀릴 것이다. 언젠가 읽은 이런 글이 생각났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업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두 사람이 한 걸음으로 걷겠다는 뜻이고, 한 사람의 모든 무게를 내가 감당하겠다는 의미이며, 이 사람에게 내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여행을 떠나세요. 호젓한 산길이 나오면 그녀를 업어 보세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업혀 보세요. 단풍보다 더 빨리 사랑이 물들 것입니다.

 

 신의 아들

  박세호란 분이 병영체험을 신청했다. 장애인으로 징집이 면제된 분이다. 그는 말했다. 단 하루라도 병영생활을 하게 해주십시오. 이유는 병역을 기피하는 풍조가 너무 안타까워서.

  얼마 전에 어떤 가수가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는 사건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의무는 하지 않고 알맹이만 챙기려는 그의 이중적 사고 방식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운동선수며 탈렌트들이 가짜 신장염을 만들어 병역을 면제받은 것이 들통나 구속당한 사건도 있었다. 아들 때문에 어떤 정치인은 당선의 문턱에서 좌절했다.

  병역은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러나 모두가 이렇게 기피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탈렌트 한 분은 군대에 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당당하게 병역의 의무를 다했고, 전투경찰에 지원한 어느 분도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원을 했으며 인도네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는 어떤 이도 씩씩하게 지원하여 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텔레비젼에 방영된 적이 있다.

  병역 기피를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신의 아들이 아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아들이다.

 

 입시전

  일부 학생들이기는 하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부정행위를 한 학생들이 잡혀가는 참혹한 정경을 바라본 어느 교사는󰡒저에게 돌을 던지십시오󰡓하고 참회의 글을 썼다. 그는 양심과 진실을 가르치지 못하고 점수 따기 교육에 몰두해온 자신의 잘못을 국민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며 해당 학생들을 비난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공감이 가는 점이 있다. 나 역시 30년 이상, 교단에서 무엇을 가르쳤는가? 그 동안 고등학교 3학년 담임도 많이 하고 3학년 부장도 했다. 그 동안 그들을 벌판에 몰아내기도 하고 산 위로 쫓기도 했다. 더러는 숨을 헉헉거리며 지쳐 있는 아이들에게도 계속 호루라기를 불었다.

  입시전 - 전쟁이라고 한다. 전쟁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다. 이 처절한 현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입시전은 다른 전쟁과는 다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전쟁이어야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전쟁이 되어야 한다.

 

  장미꽃 1000 송이

  얼마 전 어느 여학교에 ‘장미 1000 송이’를 받은 학생이 있어 학교가 들썩했다. 이 학교 2학년 모 여학생 앞으로 온 장미 1000 송이. 그 장면을 목격한 여학생들은 일시에 탄성을 질렀다. 갑자기 일어난 탄성에 놀라 꽃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는데 과연 학생들이 놀랄만했다. 꽃은 아예 택배 차에 실려 왔으며 장정 두 사람이 겨우 차에서 내려놓았다. 행정실 사무용 책상 위에 얹어 놓았는데 그야말로 현란한 장미 산을 이루고 있었다. 마침 여선생님 한 분도 내려왔기에 “이런 것을 받아 본 적이 있나요?”하고 물었다. 여 선생님은 받아보기는커녕 이만한 것을 본 것도 처음이라면서 이런 선물 한 번 받지 못하고 시집 간 것이 매우 후회스럽다고 농담을 했다. 

  나 역시도 이런 것을 선물해보기는커녕 본 것도 처음이다. 더구나 학교에서 학생이 이만한 것을 받았다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다. 학교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도 장미 1000송이를 받아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장미 1000 송이, 그 규모도 대단하지만 이것을 장만하려면 돈도 거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을 보낸 사람이 이웃 남학교 같은 동급생이라니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모든 장미에 공통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꽃말로는 ‘사랑’이 가장 유명하지만 다음과 같이 색이나 형태,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 꽃말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가 장미의 송이에 따라 꽃말을 붙인 것이 있다.

  빨간 장미 20 송이는 나는 당신을 열열이 사랑합니다, 빨간 장미 44 송이는 사무치도록 당신을 사랑합니다. 빨간 장미 119 송이는 나의 불타는 가슴에 물을 뿌려 주세요. 백장미 100 송이는 싸우는 것은 정말 싫어. 백기들고 항복이야 등등 장미의 색깔과 수에 따라 꽃말도 여러 가지이다.

  그런데 이 꽃말을 붙인 사람도 1000 송이는 생각해본 적은 없는 모양이다. 많은 꽃말을 붙이면서도 1000 송이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다. 그가 1000 송이에 대해 꽃말을 만든다면 어떤 말을 붙였을까?

  아무튼 장미꽃 1000 송이는 보통 선물이 아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요즈음 신세대들 중에는 이런 큰 선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더러 있단다. 멀티시대에 맞는 대형의 입체적인 선물을 주고받는 것일까? 선물이란 부담이 없어야 한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부담을 느끼면 그것은 이미 선물이 아닐 것이다.

 

  한글날

  아침에 국기를 달았다. 국어 선생 30년, 한글날은 남다른 감회가 있다. 그 동안 국어사랑을 무척이나 강조를 했던 것 같다.

  ‘바른말 고운말’ 운동도 벌이고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즈음 국어의 위기다. ‘외래어’와 ‘인터넷 언어’가 범람하면서 국어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에 심취하면서 우리말을 비하하는 경향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프랑스 어느 가정에서 어머니가 딸의 약혼자에게 말한다. “우리 집에서는 지참금을 많이 들려보내 주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딸에게 아름다운 프랑스 말을 들려보내 줍니다.” 약혼자는 대답한다.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습니까?”

 

 유행가 가사

  송대관의 ‘유행가’ 가사 중에는 “유행가 노래 가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기, 오늘 하루 힘들어도 내일이 있으니 행복하구나,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

  하는 구절이 있다. 이처럼 대중가요는 우리네의 정서가 묻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 있다. 그러기에 대중가요는 대중들에게 끼치는 영향도 크다. 그런데 대중가요 가사 중에 오류가 많아 걱정이다.

  대중가요 ‘가시리’는 우리 고려시대의 별리 ‘가시리’의 내용을 가사로 삼았는데 후렴구는 청산별곡의 후렴을 원용하고 있다. 엄연히 ‘위 증즐가 大平盛代(대평성대)’란 후렴이 있는데도 음악성에 있어 ‘얄리’가 좋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러나 가수들이 이렇게 부르면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가시리의 후렴구가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로 착각하기 쉽다. 어떤 가수의 ‘나도야 간다.’에도 박용철의 ‘떠나가는 배’의 중심 대목인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 있나.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를 외치고 있어 일제 강점 하에서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울분과 비애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여덟시 통근길에 대머리 총각, 행여나 장가갔나 근심하였죠’에서 ‘행여’는 ‘바라건대’, ‘운좋게’의 뜻을 가진 강한 기대감을 주는 말이다. 이때는 ‘혹시나 장가갔나 근심하였죠’로 바뀌어야 한다. ‘낯설은 타향땅에 ….’이나 ‘날으는 갈매기 ….’, ‘녹쓸은 기찻길’은 잘못된 것이다. ‘낯선 타향땅’, ‘나는 갈매기’, ‘녹슨 기찻길’이 맞다. ‘해남아가씨.’ 란 노래가 있다. ‘영암길 삼백리에 그리운 님 찾아서 나 여기 찾아 왔네 해남 아가씨 바람도 반기는 양 내 빰을 스치고(중략) 어여쁜 해남 아씨 내가 데려 가리다’

  가사와 곡이 너무 아름다운 노래인데 그만 ‘아씨’와 ‘아가씨’를 혼동하고 있다. 이 두 단어는 엄연히 다르다. ‘아가씨’는 처녀를 지칭하는 것이고 ‘아씨’는 젊은 부녀자를 말하는 것이다. ‘아가씨’에게 청혼하는 것이야 어떠하겠는가만은 부녀자인 ‘아씨’에게 청혼하면 곤란하다.

 

  고로쇠나무의 눈물

  고로쇠 물인지 고리수인지, 골이수인지? 고로쇠는 뼈를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골이수(骨利水)에서 나왔다고 한다. 고로쇠나무가 유명한 곳이 더러 있다. 경남 산청지역, 거제도 지역, 강원도 등. 그런데 이번에는 울릉도가 대대적으로 고로쇠나무를 개발한다고 한다. 당도(糖度)도 높고, 특히 인삼 냄새가 많이 나서 혹시 인삼과 같은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연구소에 의뢰하는 등 매우 들떠 있다.

  나는 고로쇠나무를 볼 때마다 너무 불쌍한 마음이 든다. 이건 분명히 착취다. 드릴로 무자비하게 옆구리를 찔러 고무호스를 끼워 수액을 받아 마신다. 사람들은 너무 사람 중심으로만 생각하며 나무의 아픔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슴의 목에 빨대를 꽂아 생피를 빨아먹는 사람들이 있다. 그 때 사슴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고로쇠 물은 분명히 고로쇠나무의 자양분이지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지금 착취를 당하고 난 뒤 고사를 한 나무들이 수없이 많다. 그래서 작은 나무는 구멍을 한 개, 중간 것은 두 개, 큰 나무는 세 개 이상을 뚫지 말자고 한다. 아예 하나도 뚫지 않으면 안될까? 말을 못하는 나무라지만 그들에게도 아픔이 있다. 어쩌면 고로쇠 물, 그것은 그들의 눈물일지 모른다.

 

  꺼벙이와 바람돌이

  나의 별명은 주로 만화와 관련이 있다. 은하여중(현재 부산여중)에 근무할 때 아이들은 ‘꺼벙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유명했던 길창덕 화백의 ‘꺼벙이’에서 따온 것이다. 아마 어리숙한 표정의 땜통 머리를 하고 있는 ‘꺼벙이’와 내가 무척 닮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뒤에 옮긴 경남상고에서도 이 별명은 그대로 따라왔다.

  부산여고에 근무할 때는 ‘바람돌이’이라고 했다. 이 역시 만화의 주인공이다. 어느 날 등뒤에서 ‘바람돌이’ 하는 외침과 함께 ‘바람돌이’이 주제가가 들렸다. 그러나 처음에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아이들은 더 크게 ‘바람돌이’하고 외쳤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순간 ‘바람돌이’가 ‘바람둥이’로 들려 당황했다. 다행히 ‘바람둥이’는 아니고 ‘바람돌이’란데 안도했다. 그것도 ‘하루에 한가지씩 소망을 들어 주는 바람돌이’이라니 분에 넘치는 별명이었다.

  나는 이따금 눈을 감고 별명을 외치던 아이들을 떠올리곤 한다.

 

사랑스런 새아기야

  정말, 우리 집에 기쁨을 안겨준 새아기야.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다. 보면 볼수록 예쁘고 생각할수록 기쁘구나. 우리는 서로 간에 큰 인연이 있었겠지. 이제 알게 되었으니 선연(善緣)으로 받들어 가꾸며 사랑해야지. 우리는 이제 같은 배를 타고 내일을 향한 그림을 그려 나간다. 솔바람도 있고 초록빛 바다도 있고 열심히 노 저어 가는 돛단배도 있다. 그를 맞아 살아가는 화안한 웃음. 우리의 그림에는 우리 모두가 바탕색이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다. 정말, 재미있게 열심히 삶의 의미를 느끼며 살아보자. 고맙다. 아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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