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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착각 행전 박영환 착각의 매력은 착각이다 착각은 남의 밥 콩이 굵어 보여 절망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제 잘난 멋을 누릴 때는 용기의 마중물이 된다 굴절된 시선, 원근법의 부재가 몰고 온 착각은 실패의 쓴잔을 마시게 하지만 제 눈에 안경이 있어 시작과 끝을 새로 엮어 내는 드라마를 다시 쓰게 한다 눈에 콩깍지는 제일 잘 나게 하고 최고로 예쁘게 한다 이 콩깍지야말로 붙들고 지탱하는 거룩한 힘이다 분명히 아니지만 그래도 아닐 것 같아 우기는 그 재미 이러쿵저러쿵 진행형인 착각 그가 있어 행복하다
고서古書를 보내며 고서古書를 보내며 행전 박영환 할아버님께서 읽으시고 아버님이 받아 익히던 고서古書들을 떠나보냈다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던 사랑방에는 늘 할아버님의 글 읽는 소리가 엄숙했다 꾸벅꾸벅 졸면서 천자책을 읽던 손자는 호롱불에 머리를 박았다 하늘 천, 따 지지지 머리카락 타는 냄새에 화들짝 놀랐다 "먹물이나 갈아라" 눈을 비비며 휘젓던 먹이 이번에는 경서의 눈을 덮쳤다 가마솥에 누룽지는 황이라 어른들이 돌아가시자 시렁 위에 올라간 책들은 서로의 몸과 다리를 베고 누워 앓고 있었다 "아무리 많은 책을 물려주어도 읽을 자손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성현의 말씀이 가슴을 찌른다 체취를 받들고 있는 것만으로 자손의 도리를 다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도 잘나면 탤런트가 되어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듯이 책도 잘나면 ..
문구멍 문구멍 행전 박영환 고향집에 온 손자 녀석이 앙징스런 손가락으로 문구멍을 뚫고 눈망울을 들이대어 할애비에게 장난을 건다 제 어미가 깜짝 놀라 아이를 뜯어 말렸지만 그냥 두라고 했다 그저께 문종이를 새로 발라 탱글탱글 장구소리가 나던 문이지만 아깝지 않다 녀석의 손가락을 자그시 깨물었다 “할아버지” 엄살을 떨며 손을 비트는 통에 구멍이 더 크게 났다 옛날에 할아버지도 나와 동생이 문을 뚫어도 꾸중하지 않고 좋아하셨다 문에 구멍이 나지않고 생생한 집은 자손이 귀한 집이라고 하시며 껄껄 웃으셨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 방문도 막내가 뚫은 이후 30여년 만에 처음 뚫린 것 같다 문구멍이 나서 기분 좋다 내친 김에 둘째, 셋째 줄줄이 달려와서 문종이를 완전히 찢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