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古書를 보내며
행전 박영환
할아버님께서 읽으시고 아버님이 받아 익히던 고서古書들을
떠나보냈다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던
사랑방에는
늘 할아버님의 글 읽는 소리가 엄숙했다
꾸벅꾸벅 졸면서 천자책을 읽던 손자는
호롱불에 머리를 박았다
하늘 천, 따 지지지
머리카락 타는 냄새에 화들짝 놀랐다
"먹물이나 갈아라"
눈을 비비며 휘젓던 먹이
이번에는 경서의 눈을 덮쳤다
가마솥에 누룽지는 황이라
어른들이 돌아가시자
시렁 위에 올라간 책들은
서로의 몸과 다리를 베고 누워
앓고 있었다
"아무리 많은 책을 물려주어도
읽을 자손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성현의 말씀이 가슴을 찌른다
체취를 받들고 있는 것만으로
자손의 도리를 다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도 잘나면 탤런트가 되어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듯이
책도 잘나면 여러 사람이 보는 곳에 가야합니다"
“기증寄贈이 아니고 기탁寄託입니다”
결국은 떠나보내고 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말에 위안을 받는다
다시 돌려놓을 자신도 없으면서
책들이
시렁 위에서 내려오고 있다
쿵
쿵
쿵
2011.7.6
할아버님, 아버님의 손때가 묻어있는 고서들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하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