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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0)학행이 빼어난 이요재(二樂齋) 삼형제의 화계재(華溪齋)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70) 학행이 빼어난 이요재(二樂齋) 삼형제의 화계재(華溪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군 각남면 칠성리 향인촌 화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화계재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이요재(二樂齋) 장방익(蔣邦翼, 양헌(養軒) 장방호(蔣邦豪), 국헌(菊軒) 장방한(蔣邦翰) 선생 3형제이다. 본관은 아산(牙山)이며 금자광록대부 신경위 대장군(金紫光祿大夫神慶衛大將軍) 장서(蔣壻)의 후예인데 아버지는 장사효(蔣思孝)이다. 장남인 이요재 장방익 선생은 9세에 이미 화산에 있는 ‘대운암(戴雲巖)’을 보고 시를 지었다. “몇 년째 바라보던 이 바위 끝에/ 오늘 오르니 바로 구월 가을이로구나/ 산은 그림 병풍되어 큰 골을 둘러싸고/ 냇물은 드는 칼 되어 ..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9)학문과 구휼(救恤), 숭선(崇先) 사업으로 큰 족적을 남긴 김용희 선생의 모계재(慕溪齋)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9) 학문과 구휼(救恤), 숭선(崇先) 사업으로 큰 족적을 남긴 김용희 선생의 모계재(慕溪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백곡마을의 모계재(慕溪齋)를 찾았다. 이곳은 만석지기 거부였던 모계(慕溪) 김용희(金容禧, 1862∼1942) 선생의 사랑채였는데 현재 이곳은 터만 있을 뿐 건물은 없다. 그런데도 여기를 찾은 것은 학문과 구휼(救恤) 숭선(崇先) 사업으로 큰 족적을 남긴 선생의 위대한 체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공은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선생의 14세손으로,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을 지낸 백헌(栢軒) 김병두(金炳斗)의 다섯 아들 중 차남이다. 퇴계 학맥을 이은 척암(拓菴) 김도화(金道和)의 문인으로 학문에..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8)경주김씨 계림군파(雞林君派) 청도 입향조(入鄕祖)인 김춘철(金春喆) 선생의모본재(慕夲齋)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8) 경주김씨 계림군파(雞林君派) 청도 입향조(入鄕祖)인 김춘철(金春喆) 선생의 모본재(慕夲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군 풍각면 화산리 원명(元明)마을 뒤편 비슬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모본재(慕夲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경주김씨 계림군파(雞林君派) 청도 입향조(入鄕祖)인 진사(進士) 김춘철(金春喆, 1654∼1715) 선생이다. 공은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예이다. 제숙공은 조선 개국 공신으로 벼슬이 보국숭록좌찬성(輔國崇祿左贊成)에 이르렀고 계림군(雞林君)에 봉해졌다. 공의 고조부는 부사과(副司果) 김경명(金鏡明)이고 증조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제주목사(濟州牧使) 김향진(金香振), 조부는 병절교위(秉節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