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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8)경주김씨 계림군파(雞林君派) 청도 입향조(入鄕祖)인 김춘철(金春喆) 선생의모본재(慕夲齋)

모본재
청도신문(2022년 4월 13일)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8)

경주김씨 계림군파(雞林君派) 청도 입향조(入鄕祖)인 김춘철(金春喆) 선생의

모본재(慕夲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군 풍각면 화산리 원명(元明)마을 뒤편 비슬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모본재(慕夲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경주김씨 계림군파(雞林君派) 청도 입향조(入鄕祖) 진사(進士) 김춘철(金春喆, 1654∼1715) 선생이다. 공은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예이다. 제숙공은 조선 개국 공신으로 벼슬이 보국숭록좌찬성(輔國崇祿左贊成)에 이르렀고 계림군(雞林君)에 봉해졌다.

  공의 고조부는 부사과(副司果) 김경명(金鏡明)이고 증조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제주목사(濟州牧使) 김향진(金香振), 조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거산찰방(居山察訪) 김원명(金元鳴)이고 아버지는 김민복(金敏復),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공은 타고난 성품이 너그럽고 의젓한 풍채에 순수하고 밝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열과 성을 다하여 학문에 전념하여 그 익힌 바를 행동으로 옮겨 실천했다. 경전을 통해 의리와 성품을 끌어내어 내 몸에 이르게 하니 문리가 대통하여 학식이 매우 깊고 통찰력이 넓었으며 마침내 시험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공은 만년에 경북 경산 남천면 지암리에서 청도 각북면 금천리 송내(松內) 마을에 은거하여 세상의 잡다한 번뇌를 잊어버리고 후학들을 길러냈다. 그 뒤 아들인 참봉(參奉) 김서범(金瑞範)을 비롯하여 후손인 증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상주(金商周) 등으로 유풍이 이어졌고 자손들이 번창했는데 원명 마을에는 공의 현손(玄孫) 김성달(金星達)때 옮겨왔다.

  이 재사의 건립은 자손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는데 마침 후손인 김신기(金信基, 대경섬유 사장)가 거액인 일억이천만원을 헌납(獻納)하고 종손인 김용기(金容基)가 부지를 제공, 또 많은 후손들이 물심양면으로 적극 협조하여 1997년에 창건하게 되었다.

  재사에는 고원(古園) 김태기(金台基)가 쓴 모본재 창건기(慕本齋 創建記)’가 걸려있고 경주김공 신기 공적비(慶州金公信基功績碑)’, ‘증 통정대부 상주지비(贈 通政大夫商周之碑)’ 및 창건에 주무를 맡았던 김인용(金仁龍, 대구광역시 부이사관, 일명 김인기)이 쓴 모본송축(慕本頌祝)’ 와비가 자리하고 있다.

  모본재가 위치한 원명 마을은 청도군과 창녕군 성산면 대산리 안심골과 경계를 이룬 깊은 산골이다. 일명 ‘우밍이’로 부르기도 하는데 ‘밀주지’에는 원시(元時)로 기록된 곳으로 팔방 구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뒷받침하듯 원명골과 안심골에는 고대의 사찰지인 대건사지, 시문집 동계집에 수록되어 있는 용흥사지, 동국여지 승람 권 27에 수록된 창녕현의 연화사지가 있는가 하면 암자 터가 널려있다.

  또한 비슬산의 아름다운 계곡의 하나인 이곳에는 ‘조피덤 폭포’를 비롯한 기암괴석의 비경이 수려한 곳이다. 여기에 참꽃 군락과 참빗살나무 군락 등 희귀한 식물들도 많이 있어 근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고 있다.

 

‘원명마을’이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왜 여기 사셨는가 물소리로 대답하며

조상의 숨은 뜻 이어서 받드는 곳

한 발만 들어서면은 여기는 신선 세계

 

모본재 전경
모본재 창건기
김신기 공적비
추계 향사 뒤 기념촬영
모본송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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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피덤 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