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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7)경학(經學)을 탐구하고 후학 교도에 힘썼던 도계(陶溪) 박동유(朴東維) 선생의 경도재(景陶齋)

경도재
청도신문(2022년 3월 24일)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7)

경학(經學)을 탐구하고 후학 교도에 힘썼던 도계(陶溪) 박동유(朴東維) 선생의 경도재(景陶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군 이서면 수야4리(귀일) 동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경도재(景陶齋)를 찾았다. 이 재사의 배향 인물은 밀성인 도계(陶溪) 박동유(朴東維,1607∼1674) 선생이다. 공은 병재 박하징의 후예이다. 공의 고조부인 수모재 박적(청도의 유일한 퇴계 제자)때부터 내려오는 가학적 연원인 퇴계 학맥을 잇기 위해 ‘도계’란 호를 붙여 경학(經學)을 탐구하고 후학 교도에 힘썼다. 또한 효우(孝友)도 남달라 크게 존경을 받았다.

  공은 성현(省峴) 동헌(東軒)에 대해 글을 남겼는데 이는 일찍이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도 노래한 적이 있는데 그 시를 읽고 읊은 것 같다.

 

새는 모르는 얼굴이라도 날아가지 않고/ 대나무는 마음을 알아 옷에 그림자를 올리네/ 산중의 관아에 오늘 무엇을 얻었던가/ 선생이 남기신 글 읊으며 돌아오네.

 

  공의 이러한 깊은 시심과 학문은 후손들에게도 이어졌다. 아들 박창한(朴昌漢)은 학문은 물론 효심이 깊어 ‘효행록(孝行錄’에 기록되었고 증손인 직재(直齋) 박상회(朴尙繪는 천성이 엄격하고 학문적 경지가 높았는데 영사정(永思亭)에 배향 되고 현손인 증(贈) 통훈대부 장악원 정(通訓大夫 掌樂院正)인 박증신(朴增新)은 귀후재(歸厚齋)에 배향되었다. 박증신의 아들 박사윤(朴思潤)은 증(贈) 통정대부 호조참의(通政大夫 戶曹參議), 손자 박춘덕(朴春德)은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嘉善大夫 戶曹參判), 증손자 박정학(朴廷學)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였다.

  또 후손들 중 서책이 안동, 국학진흥원에 ‘문고(文庫)’로 기탁된 세 분이 있다.

  자남문고(紫南文庫) 박재식(朴在植)은 경학(經學)과 성리학(性理學)의 이치를 깊이 탐구하는 것은 물론 ‘초씨 역림’을 비롯한 다른 학자들이 잘 보지 않는 역학서까지 접하여 역수(易數)를 풀이할 정도로 역학에 정통하였고 향리 명동을 노래한 ‘명동재 구경가(明洞齋九景歌)가’가 있다. 제자들의 모임인 보인계(輔仁契)는 100 년 동안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형재문고(逈齋文庫) 박기현(朴紀鉉)은 후강만록(後岡謾錄)의 저자인 박재시(朴在時)의 장남이다. 그는 아버지와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 문하에서 경사를 익혔으며 2017년에는 용강서원에서 ‘형재 박기현 선생 국학진흥원 기탁자료 발간 기념회’를 가지기도 했다.

  봉전문고(鳳田文庫) 박재하(朴在河)는 모은(慕隱) 박영묵(朴榮默)의 장남이며 유림들과 교유하며 시문을 즐기고 도학을 강구하였으며 늘 서책을 가까이 두고 익히며 송독하였다. 밀양의 안승원(安升遠), 권태직(權泰直)과 도의로 교제하였다.

  중산(中山) 박장현(朴章鉉)은 짧은 생애(1908~1940)를 사는 동안 일제 식민지하 민중들에게 등불을 밝혀주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의 도학(道學) 사상을 집대성한 것이 28세 때 저술한 ‘이전(彛傳)’이다. 그의 아들 박영석(朴永錫)은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했다. 경도재는 1916년에 창건했으며 1973년에 후손들이 힘을 모아 중수했다.

 

‘경도재’란 시제로 받들어 올렸다

 

명동골 볕바른 곳 세월 안은 경도재

묵향으로 일어서는 사유 깊은 메아리

한 가득 말씀을 담아 후손들을 깨운다

 

 

영사정

 

귀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