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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5)김해 김씨 삼현파(三賢派) 9현을 배향하는 백동강당(栢洞講堂)

백동강당
청도신문(2022년 2월 23일)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5)

김해 김씨 삼현파(三賢派) 9현을 배향하는 백동강당(栢洞講堂)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군 화양읍 이서국 도읍지이며 김해 김씨 집성촌인 토평리 백곡마을에 자리 잡고있는 백동강당을 찾았다. 김해 김씨 삼현파 문중의 절효(節孝), 탁영(濯纓), 삼족당(三足堂) 선생은 자계서원에 봉안되어 있으며 그 외 세 분 선생을 전후하여 세덕(世德)을 쌓은 9현(賢)은 이곳에 배향하고 있다. 그 아홉 분은 다음과 같다.

1)퇴평(退坪) 김서(金湑, 1342∼1420):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했고 의흥 현감에 재직할 때 선정을 베풀었다. 조선 태종 때 추성익대좌리공신(推誠翊戴佐理功臣)으로 분릉군(盆陵君)에 봉해졌다.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의 아버지이다.

2)두계(斗溪) 김건(金健, 1406∼1480): 절효의 장자로 1435년 문과에 급제했고 승문원 권지부정자(承文院 權知副正字)를 거쳐 영광군수(靈光郡守)를 지냈다.

3)남계(南溪) 김맹(金孟, 1410∼1483): 절효의 둘째 아들로 생원시를 거쳐 144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감찰 예조좌랑이 되었다. 1455년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고 의금부 진무를 거쳐 오위도총부경력을 역임하고 집의에 올랐다. 중종 초에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경연춘추관사(經筵春秋館事)에 증직되었다.

4)동창(東窓) 김준손(金駿孫, 1454∼1508)): 남계의 장자이며 김종직의 문인이다. 19세에 사마시에 합격했고 29세이던 1482년 임인 별시에서 2등으로 급제했다. 홍문관 직제학 등을 역임했고 이조 정랑을 거쳐 1493년 함양군수로 부임하여 치적을 쌓았다. 1498년 동생인 탁영 김일손의 사초 문제로 야기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호남으로 유배되었다. 이때 인근에 귀양 왔던 선비들과 함께 거병하여 진성대군을 추대하려던 차에 반정이 일어나 원종공신으로 책봉되고 연천군(燕川君)에 봉해졌다.

5)매헌(梅軒) 김기손(金驥孫, 1456∼1493): 남계의 둘째 아들로 김종직의 문인이다. 1482년 임인 별시에 장원 급제했다. 이때 형은 2등을 했으니 형제가 나란히 갑과에 급제하는 영광을 누렸다. 감찰과 병조 좌랑을 역임했으며 창녕 현감에 재직 중이던 1491년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에 임명되었다.

6)율리(栗里) 김대장(金大壯, 1493∼1549): 부친은 김일손이며 생부는 김준손이다. 사마시에 급제한 뒤 1518년 조광조의 천거로 선릉참봉과 선공가감역주부(繕工假監役主簿), 사헌부 감찰, 용궁현감 등을 역임했다.

7)김장(金鏘): 충의 교위, 충좌위 사과(忠佐衛司果)를 역임했다. 남원에 거주했다.

8)도연(道淵) 김치삼(金致三, 1560∼1625): 탁영의 증손으로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사섬시 참봉(司贍寺參奉)을 지냈다. 거왜상소문(拒倭上疏文)이 있다.

9)김선경(金善慶, 1586∼1638): 탁영의 현손이며 통례원 좌통례를 지냈다.

이 재사는 1843년(헌종 8) 모천(慕川) 김창윤(金昌潤, 성균진사, 탁영 12대 주손)이 건립했으나 1871년(고종8) 국령으로 사우가 훼철되었다. 그뒤 1920년 모계(慕溪) 김용희(金容禧, 숭선전 참봉, 탁영 14세손)가 중건하였다. 이는 의장(義庄)이라고도 불렀으며 가난한 종친이나 이웃이 관혼상례를 치를 장소로 제공하기도 했다. 그 뒤 1990년에 후손들이 힘을 모아 새로 중수했다.

 

‘백동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참 많은 인재가 배출된 집안이다

3현에 또 더한 9현/ 이분들 뿐인가

9현에 또 더하여 10현, 11현, 12현, 13현...

세세로 현인이 더 늘어 이어질 것 같은 예감

백동사 솟을대문에 햇살이 가득하다.

 

솟을대문
남계선생 묘소(이서면 수야리)
도연 선생 거왜 상소문 비(이서면 수야리 묘소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