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2)청도 김씨(淸道 金氏) 시조인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 선생의 염수당(念修堂)

염수당
청도신문(2022년 1월 12일)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2)

청도 김씨(淸道 金氏) 시조인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 선생의 염수당(念修堂)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前 교장

 

  청도군 청도읍 상리 언덕 영헌공 묘소 아래 위치한 염수당(念修堂)을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 1190~1266) 선생이다.

  수헌(壽軒) 이중경(李重慶)이 쓴 청도 최초의 역사서인 ‘오산지(鰲山志)’에 옛 사람들이 전하는 청도의 가장 뛰어난 세 명의 인물, 즉 ‘오산 삼걸(鰲山三傑)’을 기록했는데 첫째가 영헌공(英憲公)이며, 둘째는 탁영(濯纓) 선생이고, 셋째는 선탄(禪坦) 스님이라고 했다.

  이처럼 청도인들이 숭앙하던 공은 시중(侍中) 김여흥(金余興)의 삼남으로 청도에서 태어났으며 풍채가 훌륭하고 시(詩)와 문장에 뛰어났다고 고려사에 적혀 있다. 정당문학이부상서(政堂文學吏部尙書),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로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기도 했다.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자, 조정에서는 수태부 중서시랑평장사(守太傅中書侍郎平章事)로 치사(致仕)하고 오산군(鰲山君 : 鰲山은 지금의 청도군)에 봉하였기에 청도 김씨 시조가 되었다. 1266년(원종 7) 77세로 세상을 떠나니 조정에서 영헌(英憲)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청도에서는 고을을 지키는 수호신(守護神)으로 성황사(城隍祠)에 배향하고 있다. 공은 문무를 겸한 명신이며 고려 유명한 시인 중 한 분이다. 이 번 회에는 공의 시적 자취를 발췌하여 조명해본다.

  이종문(李鍾文, 계명대) 교수는 ‘김지대의 생애와 시세계(詩世界)’에서 “서거정(徐居正)은 그의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고려 전기 및 무신 집권기를 대표하는 15명의 시인 가운데 공을 포함시켰고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은 그의 ‘호곡시화(壺谷詩話)’에서 고려 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시인 25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를 포함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지대는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櫟翁稗說)’, 홍만종(洪萬宗)의 ‘소화시평(小華詩評)’ 등 역대의 시화집(詩話集)에서도 비교적 높은 빈도로 등장하는 시인으로 정지상(鄭知常)과 함께 요체시(拗體詩: 정해진 평측식에 따르지 아니한 근체 한시)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라고 했다.

  공의 충효쌍수(忠孝雙修) 시, “국가의 어려움은 신하의 어려움이요, 어버이의 근심은 자식의 근심할 바이다. 어버이를 대신하여 나라에 보답한다면 충과 효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國患臣之患 親憂子所憂 代親如報國 忠孝可雙修).”가 유명하다.

공은 음악적 소양 및 다도(茶道)로도 명성이 높았다. 전라도 안찰사(全羅道 按察使) 시절. 무신 집권자인 최우(崔瑀)의 아들인 최항(崔沆, 초명 萬全)을 피리와 거문고 연주로 제압한 일화는 유명하다.

  진주의 최초 시에서도 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시는 1241년(고려 고종 28)에 진주 목사인 공이 상주목사 최자(崔滋, 1188∼1260)에게 보낸 우정어린 통신문이다.

“작년에는 강루(江樓)에서 진주로 떠나는 나를 배웅하더니 금년에는 그대도 목사(牧使)가 되었구려. 우리 더 늙기 전에 다시 한번 놀아 봄세. (중략) 거문고 책 뒤져 좋은 옛 노래 찾아 가을의 염막(簾幕)에서 놀아 봄이 어떠랴. 이번 중양절에 국향주(菊香酒) 마시도록 약속함세.” 이 시는 동문선에 실려 있다.

염수당은 1809년 지은 이후 여러 차례 중수했다.

 

‘수호신’이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선정 베푼 목민관 용맹한 전략가

빼어난 문장가 음악성도 발군(拔群)이라

청도의 큰 자랑인 님 영원한 수호신

 

영헌공 묘소

 

영헌공 공적비
충효 쌍수시
재실 앞에 있는 돌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