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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1)청도읍 음지리 남은(南隱) 한계오(韓繼五) 선생의 모은재(慕隱齋)와 비석군

모은재
청도신문(2021년 12월 22일)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61)

청도읍 음지리 남은(南隱) 한계오(韓繼五) 선생의 모은재(慕隱齋)와 비석군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청도문인협회 회장

 

청도군 청도읍 음지리에 자리 잡고 있는 모은재 및 비석군(碑石群)을 찾았다.

모은재의 배향 인물은남은(南隱) 한계오(韓繼五) 선생이다. 공은 고려 태조(太祖) 때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에 책봉되고 삼중대광태위(三重大匡太尉)에 오른청주(淸州) 한씨 시조인한란(韓蘭)의 21세손이다. 공은 1572년(선조 5)에 태어나서 1588년(선조 21)에 생원, 진사에 급제했다. 그 뒤 1589년(선조 22)에 승정원(承政院) 주서(主書)에 오르고 1590년(선조 23)에 정여립(鄭汝立)의 난에 공을 세워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이 되고 임진왜란 때는 진주 부사로 재임하면서 부독사로 출전한 훈공으로 공조정랑(工曹正郎) 직을 맡았다.

뒤에 벼슬에 물러나 조용히 수양할 곳을 찾다가 1613년(광해군 5) 경 이곳 한재[大峴]에 정착 은거하다가 62세로 일생을 마쳤다.

모은재는 1790년에 목조 와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창건되었으나 2006년 3월의 화재로 본각과 비각 및 사랑(舍廊)에 소장했던 유적 등이 전소되었다. 이에 2007년 후손들이 성금을 내고 또 문중 농지도 매각하는 등 경비를 충당하여 재각을 복원(2월에 착공, 12월 완공)하였다. 마당에 ‘남은공 유허비’ 및 ‘모은재 복원록’ 표석이 있다.

복원록 좌측에 남은 공의 후손인 한상현(韓相顯, 韓道洙 아들)이 돌에 새긴 귀향(歸鄕)이란 한시(漢詩)가 눈길을 끌었다. 번역 부분만 옮겨보면 “고향집을 들를 때마다 그리운 부모님 은혜 생각하니 뜨거운 눈물이 주룩주룩, 조상님께 정성껏 술 한 잔 따라 올렸더니 하늘은 단비를 내려 후손들을 머물게 하네”이다.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조상을 흠모하는 절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음지리(陰地里)는 철마산 산기슭을 중심으로 북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큰마’와 ‘넘으마’란 자연부락이 있는데 큰마 입구에 4기의 비석이 있다.

1)1933년에 세운 대현도로 준공기념비(大峴道路 竣工記念碑) “화산의 남쪽에 그윽하고 깊은 골짜기가 있네/ 험난한 길 여니/ 산을 오르기 정말 좋게 되었네/ 한길 내는 요역에/ 관민 협력하였네/ 삼백 여호 주민이 천금 같은 작은 비석을 세우네”

2)1862년에 세운 ‘참봉(參奉) 최한성(崔翰成) 송덕비(頌德碑) “덕을 행했기에 마침내 우리가 혜택을 입었네/ 후인들은 그 뜻을 계승하여 길이 뒷날까지 이어가리”

3) 1871년에 세운 처사 추득래 효자비(處士 秋得來 孝子碑) “하늘의 질서, 사람의 인륜에 효도만큼 큰 것이 없더라/ 오직 공의 효성은 우뚝하여 세상에 드문 일이었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여묘살이를 할 때 매일 밤 호랑이가 지켜주었다네/ 모친께서 병을 앓자 손가락을 끊어 수혈하니/ 소생하여 두 해나 연명하셨네/ 이물들이 감응한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니었네”

4)고성종 마애비 “동중 고성종 유공 불망각(洞中 高盛宗 有功不忘刻 丁酉 十月日)

이라 새기고 한봉준(韓鳳俊) 등 5명의 이름을 적었다.

음덕(蔭德)이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재실에는 유허비 동구에는 불망비

갸륵한 정성에 조상님이 돌보는

여기는 음덕(蔭德)의 고장 우뚝 선 음지리

 

유허비

 

음지리 비석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