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45)
나이, 관직, 덕행 - 삼달존(三達尊)을 갖추었던 박후종(朴厚種)선생의 강림서당(講林書堂)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청도문인협회 회장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강림서당을 찾았다.
이곳은 밀성박씨 정국군파(靖國君派) 임당문중(林塘門中)의 재사로 배향인물은 강림(講林) 박후종(朴厚種, 1702〜1798) 선생이다. 공은 고려 말 박위(朴葳) 장군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한성좌윤(漢城左尹) 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박채훈(朴彩雲)이다.
공은 효심이 깊어 어머니가 10 수년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직접 약을 달이고 수발을 드느라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동생과도 우애가 돈독하여 논과 밭이나 살림 도구 중에 완전하고 비옥한 것은 양보하였다. 또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면 자신 일처럼 적극 나서서 도왔는데 1787년(정조 11) 극심한 가뭄으로 굶주리는 이가 속출하자 일천 석의 곡식을 기꺼이 내어놓아 800 여명을 구했다. 이러한 자애로운 선행에 감동하여 김익삼 외 33인이 상소를 하여 마침내 포상을 받게 되었다. 이 내용은 교남지(嶠南誌) 창원자선편(昌原慈善篇)에 기록되어 있다.
공은 문과에 급제한 뒤 정헌대부 행 동지중추부사(正憲大夫 行同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에 올랐으며 97세에 돌아가셨다. 참봉(參奉) 김용희(金容禧)는 강림재지에 나이, 관직, 덕이 있는 삼달존(三達尊)을 갖추었다고 했는데 이렇게 고르게 갖춘 분도 드물 것 같다.
그리고 강림서당 옆에 따로 3칸으로 지은 식호당(式好堂) 건물이 있는데 이곳의 배향인물은 공의 형제로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남계(南溪) 박덕종(朴德種)과 동계(東溪) 박창종(朴昌種) 이다.
이 문중의 파조인 박위 장군은 경상도 도순문사(都巡問使)로 1389년(고려 창왕2), 우리 역사상 최초의 해외 원정인 대마도 정벌로 중흥공신에 올라 충의백(忠義伯)에 피봉(皮封)되어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使) 친군위(親軍衛) 도진무(都鎭撫, 정1품)’ 등을 지냈다. 정부가 박위 장군의 공훈을 기려 해군의 네 번째 잠수함을 ‘박위함’으로 명명하였다. 또 서북면 도순문사 재임 시에 쓴 평양성 대동문 읍호루(揖灝樓) 현판은 북한 국보 1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강림서당 앞 별도 공간에 있는 영모문(永慕門)으로 들어서면 뱃집 건물 안에 밀성 박씨 정국군 10세손 승선파 제단(承善派 祭壇)이 있다.
정국군파는 창원지역에 살다가 강림공의 유명(遺命)에 따라 본향인 밀양(密陽)으로 환향(還鄕)하려했는데 마침 같은 관향인 청도 신지리 박씨 문중의 권유로 청도로 오게 되었으며 오봉리에 잠시 이거했다가 1810년(순조10)에 임당리에 정착했다.
강림서당은 1872년(고종9)에 창건했다. 처음에는 ‘강림재(講林齋)’로 시작했으나 1984년 ‘강림서당(講林書堂)’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삼달존三達尊’ 시제로 공을 떠올렸다
아흔 일곱 살까지 사셨다
문과 급제에 관작도 높은 지위에 올랐다
타고난 효심과 우애, 거기에 자애로운 선행
이웃 없는 곳간이 무슨 소용이랴
굶주리는 이들을 위해 강림공 일천 석 곳간 문, 아낌없이 활짝 열렸다
사람들이 말했다
하늘이 내리신 삼달존 어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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