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42)
박정주(朴廷周) 선생이 열었던9동 80칸 규모의 운강고택(雲岡故宅)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청도문인협회 회장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소재하는 운강고택(雲岡故宅)을 찾았다. 이곳은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의 11대손인 성경당(誠敬堂) 박정주(朴廷周,1789~1850)선생이 1809년(순조 9) 분가하면서 살림집을 건축한 것이 이 고택의 시작이고, 성경당의 아들인 운강(雲岡) 박시묵(朴時黙,1814~1875)이 크게 중건하였는데 그 이후 그의 호를 따서 운강고택이라 불려졌다. 또 1905년 운강의 증손자 박순병이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주손인 박성욱(朴性昱)이 이를 관리하고 있다.
주택 전체의 건물 배열은 평평한 대지에 사랑채를 중심으로 한, 튼 ㅁ자형 건물군이 앞에 나서고 그 왼쪽 뒤편으로 안채를 중심으로 한, 또 하나의 튼 ㅁ자형 건물 군이 이어지며 사당(祠堂)이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형태다. 합하면 집채가 9동에 80칸이나 되는 큰 규모이다. 대지도 1,700여 평이나 되어 두 개의 넓은 마당과 안채와 사랑채의 뒤뜰 등 널찍한 공간을 여유 있게 두었다.
그야말로 짜임새 있는 건축 구조와 세분된 각 건물의 평면배치 및 합리적인 공간구성 등으로 조선 후기 상류주택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 중요민속자료 106호이다.
운강고택을 열게 된 박정주는 큰 재산가이지만 공손하고 검소하며 효도하고 우애가 깊었다. 문중 자제들을 위해 서숙(書塾)을 운영하고 선암서원에 문강계(門講契)를 설립하여 인재를 키우고 학문을 장려하니 향당(鄕黨)에서 그 행의(行誼)를 칭송하였다고 ‘교남지(嶠南誌)’에 실려 있다. 공은 3남 6녀를 두었다.
공의 장남인 운강 박시묵은 퇴계 학맥의 적통을 계승한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과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선대 우당 박융의 ‘우당집’과 소요당 박하담의 ‘소요당 일고’, 그리고 임진왜란 때 청도를 기반으로 창의했던 ‘14의사록’ 등을 간행했다. 부인 경산 이씨와의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그의 저술은 ‘운창일록(雲牕日錄)’ 25책, ‘중용절해(中庸節解)’, ‘대학차기(大學箚記)’ 등과 아들 재형이 간행한 ‘운강집’이 전한다.
운강의 장남 진계(進溪) 박재형(朴在馨, 1838~1900)은 그의 아버지를 따라 유치명과 허전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3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뒤뜰에 석류 100 그루를 심고 ‘백류원(百榴園)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대비정사(大庇精舍)에서 강학활동을 하며 학문에 정진했다.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 ‘해동속고경중마방(海東續古鏡重磨方)’ 등 다수의 저술을 남겼다. 슬하에 7남1녀를 두었으며 위정척사의 사상으로 충만된 통문을 각 문중에 보내어 창의를 호소했던 아버지 뜻에 따라 의병으로 출전하여 1900년 8월 12일 거제군 부안포 해상에서 순국하였다.
진계의 장남 지암(旨巖) 박래현(朴來鉉, 1861~1896)은 김흥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시문에 능하고 글씨를 잘 썼다. 박래현의 아들인 청초(聽蕉) 박순병(朴淳炳, 1893〜1944)은 매전에서 동창금융조합을 설립했으며 경상북도 도평의회 의원을 지냈다.
‘운강고택’이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팔십여 칸 큰 고택에 솟을대문 높지만
만석지기 곳간만큼 인심 또한 넉넉하고
대대로 강학과 저술 경륜 높은 선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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