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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39)윤봉한 선생이 창건했으며 독립군 지원 모금을 했던 거연정(居然亭)

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39)

윤봉한 선생이 창건했으며 독립군 지원 모금을 했던 거연정(居然亭)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향교 홍보장의. 청도문협 회장

 

새로 지은 거연정
2021년 1월 22일 청도신문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에 소재하는 거연정(居然亭)을 찾았다. 원래 이 정자는 윤봉한(尹鳳翰) 선생이 청도 8경 중 하나인 공암풍벽(孔巖楓碧) 빼어난 경치를 즐기던 장구지소(杖久之所)이다. 공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판도판서(版圖判書) 승례(承禮)의 후손으로 자(字)는 기중(岐仲)이며 호(號)는 청수헌(聽水軒)이다

  공은 일찍이 관심도(觀心圖)와〮 경심도(警心圖)를 지어 좌우에 놓고 보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향리 사람들과 함께 향약을 세우고 학교를 설치했는데, 관찰사 이중하(李重夏)가 澹於勢利勤於爲善하니 此非孟所謂一鄕之善士- 권세와 이익에는 담담하고 착한 일에는 힘썼으니 이것이 맹자가 말한 한 고을의 훌륭한 선비라고 서문을 썼다. 저서에는유생들이 실천에 옮겨야 할 습속을 비교한 삼사비류(三事比類) 및 도행장록(桃杏腸錄) 등이 있는데 필독서가 될 만한 귀중한 책이다.

  또한 이 정자는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 군자금을 모집하던 이른바 ‘다물단군자금모집사건(多勿團軍資金募集事件)’과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다. 권대웅이 연구하여 그 내용을 소상히 정리했는데 이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이 다물단(多勿團)은 1925년 4월 14일 북경에서 조직된 항일 비밀 운동 단체이다. 다물단의 ‘다물’은 용감, 전진, 쾌단(快斷) 등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입을 다물고 실행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었다.

  공암동은 민족 운동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1906년에는 사립 유천 학교를 설립 운영하던 윤대섭(尹大燮)이 도동 학교(道東學校)를 설립하였고, 운문면의 최성희(崔聖熙)는 1919년 3월 18일 운문면 공암리에서 이용환(李龍煥), 김문근(金文根), 윤병림(尹炳林) 등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1924년 1월 12일 대구출신 서동일은 거연정에서 예안 군수 출신 윤영섭(尹瑛燮)과 그의 제자 윤병채(尹炳采), 윤병일(尹炳馹) 등을 만나 윤병채의 양가 맏형수인 이심동(李心東)에게서 독립운동 자금 1,000원을 받았는데, 이는 윤병채가 나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재산이 넉넉한 윤병권(尹炳權), 최홍태(崔洪台), 최홍열(崔洪烈), 박순병(朴淳炳), 김일준(金馹俊) 등에게도 군자금협조를 얻어냈다. 그 뒤 서동일은 다시 국내로 파견되어 1925년 1월 8일 윤영섭을 다시 방문하고, 거연정에서 윤병채, 윤병일, 최성희 등과 이심동에게 현금 30원을 제공받았다. 또 3차로 청도를 거쳐 경산에서도 모금운동이 있었는데 이것이 발각되어 서동일을 비롯하여 청도의 윤영섭, 윤병채, 윤병일, 최성희(崔聖熙) 대구의 배천택, 이종호(李鍾昊) 등이 제령(制令) 위반 혐의로 붙들려 1925년 6월 검찰에 넘겨졌다.

  거연정은 퇴락하여 새로 지었는데 구조가 옛모습과 좀 달라 아쉽지만 주변 바위에 새겨진 ‘山高水長’, ‘活水源’은 그대로다. 현판과 안내판도 있었으면 한다.

‘거연정’이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끝 간 데 모르는 공암의 어귀에

무슨 일로 목이 쉰 정자 하나 기다린다

아직도 그의 화두는 산고수장山高水長 활수원活水源

 

*청도신문에 발표될 때 군자금을 제공한 분을 李女心으로 기록하였으나 李心東의 오기입니다.(이심동 여사의 집안 분인 윤련씨가 전화로 알려주었습니다.)

 

 

주변 바위에 새겨진 산고수장
깊이를 끝간 데 모르는 공암
활수원
공암리
청도 팔경의 하나인 공암풍벽 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