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36)
교수(敎授) 겸도훈도(都訓導)이었던 눌연(訥淵) 정민도(丁敏道) 선생이 강학을 했던 눌연정(訥淵亭)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향교 홍보장의. 청도문협 회장


청도군 금천면 방지리(芳旨里) 우측 눌연천(訥淵川) 위에 자리잡고 있는 눌연정(訥淵亭)을 찾았다. 이곳은 교수(敎授) 겸 도훈도(都訓導)이었던 눌연(訥淵) 정민도(丁敏道, 1553 명종8〜1635 인조 13) 선생이 강학을 했던 곳이다. 공의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방지리에서 선무랑(宣務郞) 정복(丁復)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은 열 살이 미처 되기도 전에 이미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학문을 두루 섭렵하여 막히는 곳이 없었을 정도이었으니 그 학문적 경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관직에는 뜻이 없어 과거를 보지 않고 자호(自號)를 ‘눌연’(訥淵)이라 하고 책을 벗 삼아 도(道)를 즐겼다.
그런데 1608년(선조 41), 조정(朝廷)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문란한 세속과 사회 기강을 바로잡기 위하여 고심하던 차, 고결한 인품과 높은 학덕을 겸비한 눌연공의 명성을 듣고 공에게 특별히 전국 동서남북 네 학당 중 하나인 남학교수(南學敎授) 겸 구읍도훈도(九邑都訓導)를 제수했다. 아홉 고을은 청도, 영천, 신령, 양산, 경산, 하양, 자인, 언양, 기장이다.
그 때 공은 사도(師道)로써 소임을 다하며 유생(儒生)들에게 “사람은 하늘의 명(命)을 받은 천성을 지녀서 도(道)와 더불어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을 배우는 것인데 즉 효제충신(孝悌忠信)과 예의염치(禮義廉恥)이다.”란 요지의 흥학문(興學文)을 발표하고 그 이후 28년간 도훈도(都訓導) 직을 맡았다.
눌연 선생은 이 도훈도 직 외에도 유림이나 지역 발전을 위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 하나가 우연서원(愚淵書院) 창건이다. 1620년(광해군12) 매전면 동당(현재 당호리)에 신축하고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 경재(敬齋∙警齋) 곽순(郭珣)을 배향했다. 또 소요당과 삼족당이 매전면 동산리에 주민들을 위해 설치한 동창(東倉)이 임진왜란으로 무너지고 그 터가 어느 공신 집에서 부당하게 점유하는 일이 벌어지자 순찰 중이던 안렴사(垵廉使)에게 진정서를 제출하여 돌려받았다. 그리고 예부운략(禮部韻略)이 1615년(광해군7) 박경전∙박경윤 형제에 의해 만력본(萬曆本)으로 새로 복각(復刻)되었을 때 교정을 한 뒤에 발문(跋文)을 썼다.
공은 사후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예조참의(禮曹參議)로 증직 받았으며 ‘조선명인전’에 수록 되었다. 저서로는 집중예설(集中禮說)과 역경연의(易經演義)가 있다.
눌연정은 1591년(선조 24) 건립했으며 1608년(선조 41) 아홉 고을 향교를 대신하여 강학당으로 지정되었고 1826년 건물이 허물어져 유림들이 재건했다. 1896년 화재로 소실되어 1897년 재건했다. 또 1947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며 1948년 건물을 축소, 현재 정각으로 재건했고 1973년 2016년에 기와 교체, 담장, 도색 등 전면 보수를 했다.
큰 스승을 회고하며 ‘흥학興學’이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눌연 물가 바위 위에 아홉 고을 선비들
그 모습 백학이라 학소대가 무색했네
지금도 크게 들리는 흥학의 가르침

진계 박재형이 쓴 눌연정 중수기

눌연정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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