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41)
성와(城窩)박하청(朴河凊) 선생을 배향하는 월호재(月湖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화연구회 회원. 청도문협 회장


청도군 금천면 신지2리(죽전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성와 박하청(1481〜1541) 선생을 배향하고 있는 월호재를 찾았다.
공은 본관이 밀성이며 송은(松隱) 박익(朴翊)의 현손이다. 이서면 수야리에서 부사직(副司直) 박승원(朴承元)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맏형은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이고 동생은 병재 박하징(朴河澄) 이다. 3형제 이름에 모두 ‘河’자가 들어가는 것은 많은 재산을 물려준 외조부 경절공(敬節公) 하숙부(河淑溥)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공은 열세 살 때 소요당의 화병시(畵屛詩)를 보고 “그림 속 소나무, 대나무가 어리비치고 시냇가 두 마리 백로가 비 내린 산을 날아가네” 라고 차운 시를 지어 주위를 놀라게 했으니 공의 학문적 자질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벼슬은 예조정랑에 올랐으나 1519(중종 14) 신진사류들이 숙청되는 사건인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물러나 경전의 이치만 강론할 뿐 세상과 문을 닫고 지냈다.
눈 오는 밤의 심정을 읊은 시 ‘雪夜述懷’에서 “세상 물정 오히려 말 할 수 있어도 강과 바다 흘러가는 이치 알기 어렵네. 하늘이 마치 내 마음을 아는 듯 눈 온 뒤 뜨는 달빛은 백구보다 희구나” 했다. 이외 몇 편의 시에서도 시대를 상심한 뜻이 깃들어 있다.
이 즈음에 성와공은 형 소요당을 따라 산수가 아름다운 금천면 신지리로 이거하였는데 공은 죽전(竹田)에 소요당은 선암에 자리 잡았다. 그 때 공은 39세였고 소요당은 41세이었으며 수야에 남아 선산을 지키던 병재공은 37세였다.
효심은 물론 우애가 유달리 돈독한 공의 삼형제는 학문의 동반자이기도 하여 일찍이 은행나무를 심어 행단을 쌓아 학업에 정진했다.(수야리 행정 마을이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리고 남명 조식, 삼족당 김대유, 경재 곽순 등과 도의로 교유할 때나 또 멀리 경기도 파주에 있는 청송 성수침을 방문하여 성리학의 갈증을 해소할 때도 같이 동행 했는데 아무튼 이러한 폭넓은 교유를 통해 학문적 기반을 다진 삼형제는 재산까지 겸비하여 청도를 대표하는 사림(士林)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공은 1540년(중종 35)에 통훈대부 사헌부지평으로 증직되었는데 이듬 해 향년 61세로 졸했다. 묘소는 이서면 수야리 관음곡에 있으며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가 ‘성와박공묘갈명병서(城窩朴公墓碣銘幷序)’를 지었다. 월호재는 1900년 경에 창건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중수했고 후손인 박철상 씨가 관리하고 있다.
공의 아들 옹(顒)과 손자 경생은 참봉, 경서는 장사랑, 경찬은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사림의 사표가 되었으며 참봉이다. 증손인 박근은 사마시에 급제한 진사로 임란 때 의병 창의에 참가하여 좌익장 소임을 맡았다. 그는 선무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고 참봉에 제수되었으며 용강서원 충렬사에서 제향하고 있다. 육세손 문주는 통덕랑, 11세손 수간은 통정대부이고 14세손 찬현은 장관, 대사,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월호재月湖齋’라는 시제로 글을 올렸다.
대나무밭 울을 삼고 달그림자 큰 호수
눈 온 달빛 백구보다 희다고 했나요
높도다 거룩한 선비 후세의 큰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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