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매전면 내리
행전 박영환
2017년 3월 22일, 매전면 내리에 있는 황강재, 춘장재, 적암재, 벌산재를 찾았다.


황강재(黃岡齋)
청도군 매전면 내리1리, 내동길 66-10에 소재한다. 산세가 아름다운 황강산 기슭에 우뚝 자리잡고 있으며 북향이다. 1939년에 건축한 3칸 집이 있었으나 노후하여 헐고 1960년 새로 중건했으며 2012년에 다시 기둥을 바꾸고 대문채 기와를 번와하는 등 중수했다.
전면에 세운 3칸 규모(방1, 창고1, 출입문)의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목재와가 팔작지붕의 5칸 황강재가 있다. 특히 이 재사는 좌측으로부터 방 3개를 나란히 두고 우측에 마루를 배치하였다. 벽에 ‘황강재기’ 등이 걸려 있다. 재사 아래 좌측에 4칸(방3, 부엌 1)의 하당이 있다.
이 곳은 의흥인 예신겸(芮愼謙)의 유지(遺址)이다. 선생은 부계군 예낙전의 후예로 조선 영조 때 통덕랑 벼슬을 지내고 문행이 높았다고 한다. 많은 후손들이 전국에 살고 있으며 이 마을에도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춘장재(春莊齋)
청도군 매전면 내리1017번지에 소재한다. 내리1리 마을 뒤편 산기슭에 황강산을 바라보는 남향이다. 1968년에 건축한 3칸 규모의 집이 노후하여 1998년도에 새로 신축하였다.
전면에 세운 3칸의 솟을대문(도장1, 방1, 출입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목재와가 팔작지붕 겹처마의 5칸 규모(방3, 마루2, 중당협실형) 재사가 우뚝 자리 잡고 있다. 대청에 ‘상량문’, ‘춘장재기’ 중수를 기리는 시들이 걸려있다. 우측에 판넬로 지은 10여평 되는 관리동이 있으며 백일홍, 동백나무, 향나무 등으로 조경을 하였으며 ‘헌성록’ 표석이 있다. 마당은 자갈로 마감했으며 토석담장을 둘렀다.
의흥인 예덕기(芮德基) 선생과 통정대부 예서필(芮瑞苾) 선생을 배향하는 묘제이다.





적암재(赤巖齋)
청도군 매전면 내리 947번지에 소재한다. 내리란 구만산과 육화산에서 내려온 등이 장연리와 밀양의 신곡리 가운데 깊은 계곡 안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적암면(赤岩面)에서 중남면(中南面)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나동(羅洞), 회계동을 합하여 내동이 되었다. 1954년에 내 1동과 내 2동으로 분동되었는데 적암재는 내리 1리에 있다. 육화산자락, 마을 중앙을 흐르는 개울 옆에 남향으로 우뚝 자리잡고 있는 이 재사는 안동인 이 재사는 안동인 권기세(權起世)를 배향하는 곳이다. 공은 통훈대부(通訓大夫)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다.
전면에 세운 ‘봉조정(蓬祖亭)’현판이 있는 3칸 솟을대문(방2, 출입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4칸 목재와가 팔작지붕의 적암재(방3, 마루1)가 있다. 좌측에는 관리사가 있으며 마루에는 ‘적암재기’가 걸려있고 마당은 자갈로 마감했는데 재사 주변에는 블록담장을 둘렀다.
1965년에 건축한 3칸 집이 노후하여 헐고 2011년 새로 신축하여 준공했다. 특히 이 재사를 중건하는데는 권광기 후손이 성금을 크게 내었다. 대문 앞에 ‘赤巖內洞 安東權氏 光基 誠金碑’가 세워져 있는데 내용에 의하면 본채 건립비용에 해당하는 6,120만원을 문전옥답 914평을 팔아서 충당했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후손 권정복이 근찬한 ‘적암재 준공기념비’와 권우현이 근찬한 축원문도 돌에 새겨져 있다.
권씨 후손들은 전국에 200여호 살고 있으며 이 마을에도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벌산재(閥山齋)
청도군 매전면 내리 421-1에 소재한다. 육화산 아래 서남향으로 우뚝 서 있으며 내리 중에도 가장 안쪽에 있는 2리에 있다.
전면에 세운 1칸 규모의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4칸(방2, 마루 2, 중당협실형) 목조와가 팔작지붕의 벌산재가 있다. ‘벌산재기’, ‘벌산재 중건기’ 등이 대청에 걸려 있다.
단기 4252년(서기 1919년)에 건축 되었으나 그 동안 비에 씻기고 바람에 깎이어 헐어내고 종원들이 뜻을 모아 2004년 2월에 새로 중건하였다.
마당은 자갈로 마감했으며 재사 아래 관리사가 있으며 재사 좌측에 ‘벌산재 중건 헌성록’이 있어 재사의 변천과정을 알게 한다. 재사 주변에 블록 담장을 둘렀다.
경주인 회헌(晦軒) 최수필(崔守弼) 선생의 묘재이다. 선생은 계림군 최한홍 선생의 후예로 부사를 지냈다. 해마다 후손들이 모여 조상의 유덕을 기리며 묘재를 지내고 있다.



중남교회
청도군 매전면 내동길 53-22 내리 마을 앞에 있으며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 소속이다. 1961년 지전교회에서 분립하였다. 본당은 1988년에 건립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매전면 내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개설] 적암면(赤岩面)에서 중남면(中南面)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나동(羅洞), 회계동을 합하여 내동이 되었다. 1954년에 내 1동과 내 2동으로 분동되었다.
[명칭 유래] 내리란 구만산과 육화산에서 내려온 등이 장연리와 밀양의 신곡리 가운데 깊은 계곡 안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1720년에는 적암면(赤巖面)이었으며, 1896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중남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나동, 회계동을 합하여 내동이 되었다. 1954년에 내 1동과 내 2동으로 분동이 되었다. 1988년 내동에서 내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억산의 지맥인 구만산에서 뻗은 육화산 아래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동창천 동쪽 계곡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현황] 2012년 7월 현재 면적은 6.66㎡이며, 총 87가구에 168명[남자 73명, 여자 9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봉의리, 서쪽은 매전면 지전리·구촌리, 남쪽은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용전리·상동면 신곡리, 북쪽은 매전면 장연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내 1리와 내 2리가 있으며, 안 마을과 바깥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애미 각단, 안 마을을 합한 나동(羅洞)는 1914년 이전에 중남면일 때는 면사무소가 있었던 동네이다. 내 1리인 나동을 바깥 내동이라고도 부른다. 회계동은 마을 앞을 흐르는 내[川]가 산을 감돌아 나가기 때문에, 개천이 돌아나간다는 뜻에서 회계라고 한다. 논은 별로 없고 주로 비탈진 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추 농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마을 서쪽으로 동창천 건너에 국도 58호선이 지나고 있다.
한편 청도군지(1991)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내리(內里)
구만산(九萬山)계의 태령(泰嶺)이 가례(嘉禮)리를 거치면서 더욱 기세를 올리어 깊고 얕은 많은 계곡과 산등을 이어 오면서 피곤함이 없이 육화(六花)산을 융기시켰고 그래도 부족한지 고촉봉(高觸峰), 시루봉을 마을로 내려보내고 있다. 서편은 동창천이 흐르면서 수많은 산봉들의 방출을 굳게 끊고 있으며 육화산 계곡의 곡절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고 있다.
산촌다운 산촌의 풍경이 계곡마다 풍성하다. 임란 전에 장연노씨가 거주하고 있었으나 후손들이 창녕으로 이거 해가고 1600년경에 경주인 최수필공이 경기도 고양에서 이거해 와서 정착하였다.
최 공이 택리한 이유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1里를 애미각단, 안마, 라동(羅洞)으로 부르는데, 애미각단은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 같고, 안마(內里)는 안쪽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붙여졌다.
나동(羅洞)은 최 공의 본관이 경주 즉 신라라서 붙여 진 것이라는 설과 하나는 태산을 등지고 깊은 계곡과 거기에다 큰 내인 동창천이 흘러 풍광이 비단(羅) 같다고 붙여진 것이라는 설인데 후자가 동명 유래로 보아 더 정확한 것 같다.
회계리(回溪里), 양지편(陽地便), 중각단(중리), 큰각단 등이 있는데 회계리를 제외한 마을 이름은 모두 지형이나 위치에 따라 정했다. 회계리는 계천이나 지형을 따라 이리 돌고 저리 감아도는 계곡의 생김새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내리(內里)란 마을의 위치가 안쪽에 있다고 안마을인 내리로 정했다는 설과,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사람이 산다는 뜻으로 경형( 型)에 인자(人字)를 더하면 내자가 되므로 내리로 정했다 한다. 또한 처음 이주한 최수필 공의 고향이 고양군 내리라서 그대로 정했다 하는데 첫째 설이 가장 타당하다.
육화(六花)산은 500고지나 되는 산이다. 이 산은 큰산, 작은산, 청계수(淸溪水), 폭포(瀑布), 적석(赤石), 흑석(黑石)의 6가지가 갖추어져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풍치가 좋은 산으로 인근에 이름이 높다.
약수(藥水)곡은 약수가 나는 곳이라고 붙여진 이름인데 옛날에는 3일 기도 후에 약수를 마시면 효험이 대단했으나 현재는 시대 풍류로 좋은 약이 많아 찾는 이가 없어 지난날과는 격세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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