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 선생의 중산재 등이 있는 칠곡리
행전 박영환




중산재(中山齋)
○소재지: 청도군 이서면 칠곡리 30-2번지
○건축연대: 1930년
○건물구조: 목조와가 정면5칸, 측면1칸의 중산재(온돌방 3칸, 마루 2칸), 하당(3칸), 대문채(3칸), 대청에 ‘중산재기’, ‘중산재 상량문’이 있으며 주변에 시멘트 블록 담장을 둘렀다.
○배향 인물: 밀성인 박란(朴鸞), 박상(朴詳) 선생의 묘재이다. 박란 선생은 호가 농암으로 어릴 때부터 재기가 빼어났고 성장함에 따라 학문과 덕행을 쌓아 퇴계 이황 선생과 교류하여 역경에 밝았다. 향로당기(鄕老堂記)를 저술하고 청도 향헌 10조와 향규 6조를 저작하여 세속을 바로 잡았다. 박상 선생은 박란 선생의 손자로 호조좌랑을 지냈으며 임진왜란을 당하자 부모를 낮에는 업고 산에 피신시키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등 긴 전란을 무사히 넘긴 효자이다.




오수정(吾守亭)
○소재지: 청도군 이서면 칠곡길 190
○건축연대: 1951년
○건물구조: 오수정(목조와가 정면 5칸, 측면1칸), 대문채(5칸), 대청에 ‘오수정 중수기’, ‘오수정 이건기’가 걸려 있고 주변에 토석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밀성인 오수당 박윤(朴潤) 선생이 강학을 하던 곳이다. 수헌 박희장(朴希章) 선생의 현손으로 대산 이상정(李象靖) 선생의 문인이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깨달음이 빠르고 학문을 즐겨 항상 마음으로 성현의 가르침을 받들고 학문에 전념하는 한 편, 부모에게 효도하고 후학들의 계도에 힘써 사림의 칭송이 높았다.
오수정은 오수골에 오수샘이 있는데 그 우물 위에 정자가 세워져 이름을 오수정이라 하게 되었다.



수헌재(守軒齋)
○소재지: 청도군 이서면 칠곡리 50-1번지
○건축연대:1950년
○건물구조: 목조와가 정면 4칸, 측면 1칸 수헌재(방 2칸, 마루 2칸), 대문(2칸), ‘수헌재기’가 마루에 걸려 있으며 블록담장을 둘렀다.
○관리문중: 밀성 박씨
○배향인물: 수헌(守軒) 박희장(朴希章)선생의 묘재이다. 선생은 두촌 박양무 선생의 후예로 농암 박란 선생의 증손이고 인재 박광형의 손자이며 모와 박상의의 아들로 통훈대부 통례원 좌통례를 지내고 향년 69세에 사망했다.
○현황: 재사 울 안에 칠곡리 경로당이 있다.
*디지털 향토문화 대전에는 칠곡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칠곡리와 곽기를 합해서 칠곡리라고 하였다. 칠곡리에 대한 명칭 유래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곽기는 칠곡 골짜기를 벗어나서 밖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테두리 밖이라는 뜻이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이전에는 차북면에 속한 마을이었다. 행정 구역 통폐합 이후 칠곡동이라 하여 이서면에 편입되었다. 칠곡과 곽기를 합해서 칠곡이라 했다는 기록만 보일 뿐, 그 외의 기록은 찾을 수 없다. 1988년 칠곡동에서 칠곡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칠곡리는 대곡리과 인접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나, 대곡리에 비해서 좁고 짧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대곡리와는 윗부분만 다를 뿐 아랫부분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합쳐져 있다. 상원산에서 내려온 골짜기 중앙으로 흐르는 대곡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농경지가 칠곡리의 경작지 전체를 이루고 있다. 큰길과 대곡천 변에 이르는 땅은 대부분 과수원으로 되어 있고 신작로 동쪽으로는 논으로 만들어져 있다. 마을을 중심으로 산자락에 일구어진 비탈 밭에는 복숭아와 감나무가 재배된다.
[현황] 2012년 7월 현재 면적은 3.30㎢이며, 총 111가구에 252명[남자 137명, 여자 11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화양읍 송금리·다로리·삼신리, 서쪽은 이서면 팔조리·양원리, 남쪽은 화양읍 유등리, 북쪽은 이서면 대곡리·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하도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로 칠곡 1리와 칠곡 2리가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칠곡 1리의 칠곡 마을과 칠곡 2리의 곽기 마을이 있다. 칠곡리와 인접하여 좌우로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과 국도 25호선이 지나고 있다. 이 중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을 따라 청도 공용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지나간다. 칠곡 1리에는 박윤이 서당을 짓고 강학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 오수당(吾守堂)이 있다. 청도 향교에는 칠곡리 출신의 밀양 박씨 진사 박란(朴鸞)이 찬(撰)한 향노당(鄕老堂) 기문과 향헌(鄕憲), 향규(鄕規) 18조의 현판이 게시되어 있다. 개그맨 전유성이 옛 칠곡 교회 건물에 ‘니가쏘다쩨’라는 식당을 마련하여 주말이면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2013년 12월 14일 옛 칠곡 초등학교는 청도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한편 청도군지(1991)에는 칠곡리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칠곡리(七谷里)
용각산이 성현(省峴)으로 이어져 나와 멀리서부터 가까이로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동은 밤재산이 양원으로 달려가고 남쪽으로는 밤재산이 구룡산과 연결되어 있으며 북은 동명(動明)산이 솟아 마을을 수호하는 듯 하다. 이곳 역시 산의 서기(瑞氣)와 곡천(谷泉)의 정기가 어린 곳으로 마을을 빛내 준 문인을 많이 배출한 유학의 마을이라 할 수 있다. 1리는 밀성인 박 란 공이 1530년(중종25년 庚寅)에 택리한 곳으로 박 공이 마을에서 후진을 위하여 강학(講學)을 한 곳이기도 하다.
원래는 하대곡동인데 박 윤 공이 숙종시대 골안에 칠곡(풍곡, 대등곡, 아전곡, 안암곡, 정전곡, 신뢰곡, 천곡)이 있음으로 칠곡으로 동명을 개명하였다. 대곡동이란 골 안에 깊고 커서 붙여진 것이며 이 대곡(大谷)의 하단부에 위치하였다고 하여 하다곡이라 한 것 같다. 2리인 곽기(郭基)에는 17세기말 경에 현풍 곽씨가 거주하였으나 후손이 없어지고 곽씨보다 약 200여 년 후에 동래인 정종규 공이 정착하였다.
곽터
곽씨가 터를 잡았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곽기(郭基)로 표기했다.
오수당(吾守堂)
박 윤 공의 호로 박 공이 오수당이란 서당을 짓고 강학하던 곳이라고 흔히들 오수골이라 불렀다. 새암산에 거대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사림들이 시와 풍월을 즐겼던 곳으로 이름이 나있다.
용정(龍井)
용이 승천한 곳으로 가뭄이 오면 각성(各姓) 3씨(氏)가 3일간 목욕 제계하고 기우제를 지내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유교 사상이 뿌리 깊이 박힌 마을로 면내 다른 마을과 같다. 유풍에 따른 예를 기간으로 한 제반 의식으로 선현의 유풍을 답습하고 있다. 특히 상제의식(喪祭儀式)은 옛 그대로의 풍습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중산제(中山薺)에 보존하고 있는 향노당기문(鄕老堂記文) 현판은 3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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