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매전면 호화리/ 행전 박영환
2018년 2월 20일(화) 청도군 매전면 호화리를 찾았다.


미산재(嵋山齋)
◯관리문중: 고성 이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호화리 539-1(호방길 59)
호화리 중앙에 남향으로 좌정했다. 뒤에는 자미산이 둘러싸이고 활같이 굽어 흐르는 동창천이 앞을 가로질러 흐른다.
◯ 건물구조: 일각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면에 강판 기와 맞배지붕 정면 5칸(온돌방 3칸, 마루 2칸, 중당협실형)의 재사가 있다. 홑처마이며 시멘트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쌍여닫이 세살문 창호 등을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대청에 재사의 이름인 ‘嵋山齋’가 현액되어 걸려 있으며 ‘미산재 중건기’가 걸려 있다. 마루 앞에는 창문을 달았으며 건물이 오래되어 보조 철기둥을 받쳐 보호하고 있다.
◯배향인물: 모헌 이육의 9세손인 충의위 이동윤(李東潤), 이동주(李東柱), 이동상(李東尙), 이동연(李東淵)이 건립한 서당이다.
◯연혁: 1827년에 창건했으며 그 이후 2003년 경에 강판기와를 바꾸는 등 중수했다.



<호화1리 앞에 있는 느티나무>
호화리(好花里)
호화리는 자연 마을 호고와 동화가 합쳐 호화리라 불리는 곳이다.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에 소개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호고동(好古洞)과 동화동(東化洞)을 합해서 만들면서 호고동의 ‘호’ 자와 동화동의 ‘화’ 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운문천 서쪽에 있는 동화동은 일제 강점기 때 기록에 호화동(好化洞)이라는 이름이 함께 표기되어 있다. 한편 운문천 동쪽의 자미산 앞에 있는 동은 호고동(好古洞)으로 표기를 하였으며, 1912년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는 상남면에 속한 호화동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호고동과 동화동을 합하여 호화동이라 하고 매전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호화동에서 호화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운문면에서 내려온 운문천[동창천]의 좌우에 걸쳐 있는 호화리는 넓은 면적의 농경지를 차지하고 있다. 호화 1리인 호고동은 자미산을 등지고 앉아 있으며, 운문천이 곁으로 흘러 마을 앞의 농경지를 비옥하게 하고 있다. 강 건너에 서쪽에 있는 동화동(東化洞) 역시 구만산 아랫자락에 자리 잡아 배산임수하고 서향으로 앉아 있다.
동쪽은 매전면 남양리, 서쪽은 매전면 동산리·북지리·온막리, 남쪽은 매전면 장연리, 북쪽은 매전면 당호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호고동에는 청도 미생물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아래에는 청도 태양광 발전소가 있다. 또한 호고동에서 장연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새로 전원주택이 자리 잡아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한편 청도군지(1991)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구만산(九萬山)봉이 동창천과 다투면서 이어져 달리고 자미산(紫嵋山) 구릉이 천변에서 멈추면서 힘차게 융기하여 마치 출림맹호(出林猛虎)의 현상을 할 산등을 뒤로하고 취락된 마을로 온막들을 안고 있다. 동화(東化)는 구만산봉 기슭에 동창천을 끼고 외롭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구만산봉의 웅장한 준봉들이 동찬천과 더불어 호화리 동편을 가로막고 있다. 지금은 동창천을 사이에 두고 분동이 되어 있으나 1914년 이전은 각각 한 마을로 형성되어 있었다. 특히 1리는 산을 등지고 냇가를 끼고 들을 안고 있는 남향 마을로 제방만 튼튼하면 좋은 자리라 볼 수 있다.
취락된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주민이 산 것은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자미산의 사지(寺址)등으로도 고증이 되나 알 길이 없다. 서기 1500년 중엽경에 1리인 호방(好方)에는 인동 장씨가 자미산 기슭에 터전을 잡았다. 뒷산의 형상이 범이 엎드려 앉아 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호자(虎字)와 옆에 동창천이 흐르나 하도 물이 맑아 계자(溪字)를 따서 호계(虎溪)라고 마을 이름을 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기를 호방, 호뱅이로 표기한 것 같다. 그 뒤 1600년 말경에 철성인 이 관 공이 동민들이 잘 되고 잘 살아야 된다는 뜻으로 호화(好化) 또는 호방(好方)이라 했다고 하나 각종 지리지에는 호고(好古)동 호고방동(好古方洞)으로 등재되어 있다.
동화(東化), 동해에는 1리와 같은 무렵인 1500년 중엽경에 풍천인 임동유 공이 입주하여 마을을 일구었다는 것이다. 임씨(任氏)가 아닌 임씨(林氏)란 설도 있으나 본관으로 보아 임씨(任氏)가 맞다고 믿어진다. 큰 바위 동쪽에 마을이 있다고 동화(東化)라는 설이 있으나 여러 가지로 미루어 볼 때에 호방(好方)의 동쪽이고 호방리와 같이 잘 사는 마을이 되라고 동화로 동명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다른 의견은 호화의 동편 마을이라 동화라는 설도 일리가 있다.
성주(城主)바위는 호화 2리 북쪽에 위치하며 길이가 약 8m 폭이 약 10m로 동창천 가운데 있다.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이기도 하다. 그 유래와 연대는 미상이나 어느 해 큰 가뭄으로 농민들이 아사할 우려가 되었을 때 성주가 이 바위에서 기우제를 지내자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성주 바위라 불렀다.

호화1리 경로회관
1

호화1리 전경
*참고자료
-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화원)
-관리 문중 및 주민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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