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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 / 행전 박영환

 

 

  2018년 5월 29일(화) 운문면 지촌리를 찾았다. 날씨도 여름에 접어 들어 상당히 더웠지만 동리의 재실들이 전부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었고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통행하지 않는 숲속에 숨어 있어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마침 이 동리가 고향인 안병갑씨와 연락이 닿아 길의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전화상으로 연락을 받은 곳이라 몇 번 되돌아오곤 했다. 

 

 

 

신추재(愼追齋)

 

관리문중: 동래 정씨

 

소재지: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 825-1

청도경주 간 국도 제20호선을 타고 가다 운문면 지촌리 신기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난 지방 도로로 갈아 탄 뒤 550m가량 가면 지촌리 박곡 마을로 들어가는 마을길이 나온다. 박곡 마을 남서쪽 700여 미터 떨어진 반용산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구조: 팔작지붕 목조와가 정면 5(2, 마루2, 누각1)이다.

벽돌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쌍여닫이 등 세 살문을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특히 우측 끝방 앞으로 누마루를 달아내어 전체적으로 자형(字形)을 취하고 있으며 누마루에는 헌함을 설치했다. 대청 앞에는 재사의 이름인 愼追齋 편액이 걸려 있으며 대청에는 신추재기’, ‘신추재 감음 등이 있다.

주변에 토석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정하룡(鄭河龍)

본관은 동래이며 자는 대건(大騫)이다. 동평군 정종(鄭鍾) 17세 손이며 수직으로 첨지 중추부사직을 지냈다.

 

연혁: 1860(庚申)년에 창건했으며 1997(丁丑)에 종원들이 힘을 합쳐 백년의 풍우에 붕괴 직전에 이르러 기와를 교체하고 내부수리를 했으며 주차장 진입로를 새로 공사했다.

그리고 1985(乙丑)년에는 정석주의 모 유을선(柳乙善) 갓말댁 회갑연비 35십만원을 희사하여 재사 내외를 수리한 적이 있다.

 

 

 

 

 

 

만회정(晩悔亭)

 

관리문중: 광주 안씨

 

소재지: 운문면 지촌리 36-11

청도경주 간 국도 제20호선을 타고 가다 운문면 지촌리 신기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난 지방 도로로 갈아 탄 뒤 550m가량 가면 지촌리 박곡 마을로 들어가는 마을길이 나온다. 박곡 마을 남서쪽 끝 산중턱에 남서쪽으로 좌정했다.

 

건물구조: 재사 오른 쪽에 있는 일주문을 들어서면 팔자지붕 홑처마 정면 5(좌로부터 마루2, 3)의 재사가 있다. 2단으로 조성한 대지 위 석축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평면 구성은 이 지역 재실의 평면에서 보기 드문 겹집 형태를 취하고 있다. 평면은 좌측에 2칸통 대청과 온돌방 2칸과 부엌 1칸을 각기 연접시키고, 2칸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 부엌 앞에는 온돌방 1칸을 배열했다. 온돌방 2칸 뒷벽에는 반침을 두었고, 대청 좌측면의 뒷벽에는 시렁이 부설되어 있고 시렁 밑에는 판문이다. 마루와 방 사이에는 삼분합들문, 온돌방 사이에는 사분합들문을 설치했다.

마루 앞에는 재사의 이름인 晩悔亭 편액이 걸려 있으며 마루에는 만회정기가 있다. 재사 주변에는 토석 담장을 둘렀으며 마당에는 사철나무와 모란 등으로 조경했다.

 

배향인물: 안갑수와 안병윤

본관은 광주이다.

 

연혁: 1770년에 건립된 후 수차례 중수했으나 지금은 문짝이 떨어지는 등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다.

광주 안씨들이 금호에서 지촌 마을로 우거하여 정착한 것은 170 년 정도 된다.

 

 

 

 

 

옥천재(玉川齋)

 

관리문중: 동래 정씨

 

소재지: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 956

마을회관 뒤편 소나무와 대나무 숲을 뒤로 하고 동향으로 좌정함

 

건물구조: 전면에 세운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건너 겹처마 팔작와가 정면 4(2, 마루2, 중당협실형)의 재사가 있다. 시멘트 기단 위에 화강석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대청과 방 사이에 사분합들문을 설치하고 그 뒤에 또 다른 창을 내었다. 이뿐만 아니라 재사 전면에도 유리창을 설치한 위에 또다른 창을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툇마루 양쪽과 대청 뒤편에 판문을 설치하였다. 대청전면에 재상의 이름인 玉川齋 편액을 달았고 대청벽에 주손 정수진의 옥천재기가 있고 그 외에 전 국회의원 이영표가 찬한 옥천재 상량문 그리고 옥천재 원운‘, 근차 등이 걸려있다.

재사 주변에 블록 담장을 둘렀다.

 

연혁: 1984년에 건축했으며 그 뒤에 몇 차례 중수했다. 해마다 두 차례씩 후손들이 모여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있다.

 

 

 

 

 

 

 

 

 

숭덕재(崇德齋)

 

관리문중: 파평윤씨 소정공파(昭靖公派)

 

소재지: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 1075

지촌 국도변 산자락에 동향으로 좌정

 

건물구조: ‘敦誼門 편액이 걸려있는 4주 뱃집 와가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콘크리트 양옥 와가가 있다. 정면에는 재사의 이름인 崇德齋 편액이 있고 내부에는 숭덕재 상량문  낙성운 등이 걸려있다.

마당에는 숭덕재 건립에 대한 표석이 있고 재사 밖에는 파평윤씨 소정공파 숭덕재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재사 뒤에는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며 재사 주변에 블록담장을 둘렀다.

 

연혁: 2007년 전 종원이 힘을 합쳐 건립했다. 지촌마을에는 파평윤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지촌리(芝村里)

 

 지촌리는 자연 부락인 바그리화곡지곡(芝谷), 새터동경(東京)이 합쳐진 마을이며 동쪽은 경주시 산내면 내칠리서쪽은 경산시 용성면 부일리·용전리남쪽은 운문면 공암리·경주시 산내면 신원리북쪽은 운문면 봉하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에 소개된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경상북도 경주시와 청도의 경계에 위치한 지촌리는 오래도록 밀양의 비입지(飛入地)였다. 운문댐 조성과 함께 주요 경제생활은 표고버섯 재배로 바뀌었고, 중심지 역시 지촌에서 신촌으로 이동했다.

  1914년 신촌, 바그리, 화곡, 윗동경, 아랫동경을 병합하여 지촌동이라 하였다. 지촌리의 중심 마을인 바그리는 알골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상박곡과 하박곡으로 구분된다. 화곡은 화전(火田) 또는 화곡(花谷)으로 불렸는데. 마을에 화전을 하던 곳이 있어서 화전골로 불리다가 화곡으로 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지곡은 화곡 마을 앞에 있었으며 마일리 건너 산기슭에 자리하였던 마을이다. 해방 후까지 이 인근에 오래된 고가(古家)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새터는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기 때문에 새터 또는 신기라고 부른다. 청도에서 경주로 가는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버스가 다니면서 새로 형성된 마을이다. 왼쪽으로 가면 봉하리, 마일리로 해서 영천으로 가는 길이 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경주로 가는 갈림길의 중심에 있었다. 동경은 고려 시대에는 경주를 동경이라 부를 때 청도에서 경주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설과 청도의 동쪽 경계 지역이라서 동경(東境)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1906년 지방 행정 구역 조정 이전에는 밀양군(密陽郡) 고미면(古彌面)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고매부곡(古買部曲)이라는 기록이 있다. 1906년에 청도 동이위면(東二位面)에 흡수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신촌, 바그리, 화곡, 윗동경, 아랫동경을 병합하여 지촌동이라 하고 운문면으로 편입되었다. 1988년 지촌동에서 지촌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6년 운문댐 조성으로 인하여 지촌리 중심 마을인 지촌이 대부분 수몰되었으며, 이후 지촌리 중심지는 신촌으로 이동하였다.

 동쪽, 서쪽, 북쪽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경주와 청도, 경상남도 밀양의 경계를 이루던 곳으로 바리박산[발백산]이 마을의 중간까지 내려와 동경과 본동을 갈라놓은 듯하다. 봉하리에서 발원한 봉하천과 마일에서 발원한 마일천이 흘러내려오고, 경주시 산내면에서 내려오는 산내천이 합하여 운문천을 이루는 곳에 위치한다. 계곡을 따라 길이 형성되어 경주와 영천, 경산시 용성면으로 가는 갈림길의 시작이 되는 곳이 된다.

 

한편 청도군지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동서로는 산내천이 흐르고 트여 있다는 말뿐이고, 구룡산, 육장산 등 높직 높직한 태산들로부터 줄기줄기 갈라져 나온 산등들이 앞, , 옆으로 작은 공간도 주지 않고 내리 달리다가는 실낱같은 계천에 막혀 노한 듯 우뚝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하도 수가 많아서 이름조차 붙이기에 지칠 정도로 산봉우리들이 즐비하다.

  지촌(芝村)은 원래 고미면(古彌面)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운문면에 내속했으며 바그리, 박월(璞月), 안골(內谷), 화곡(花谷) 등 여러 개의 마을 이름이 있다.

 

박월(璞月)

마을 뒷산이 해발 700M의 태산을 등지고 앞은 좁은 계곡과 산내천 등으로 약간 열려 있는데 바라보는 야경은 그야말로 구슬()같은 달이 중천에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으로 풍류적이고도 산촌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하여 바그리를 박월(璞月)로 표기한 것이라 한다.

 

화곡(花谷)

산촌의 봄 풍경이 선하게 떠오르고 살구꽃, 복숭아꽃, 진달래가 다투어 피는 봄날의 산촌, 봄날 밤의 풍월을 지촌만 독점한 춘경에 동경을 느낀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동경(東京)

지리지에는 부곡(部曲)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부곡 당시의 상황은 일체 사라지고 1600년 초 임란이 평정되자 경주인 최경원 공이 정착하여 경주와 경계를 이루는 동쪽의 동()자에다 서울이 좋은 곳이라고 동경(東京)이라고 동명을 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경주 동경과 청도 동경으로 분할되어 있었으나 1906년에 지촌으로 되었다.

 

신기(新基)

경주 청도간의 도로가 개통되자 취락이 된 곳이라 하여 새 터라 한다. 박월에서 동래인 정구홍 공이 이사 해왔으며 차차 인가가 늘어나고 초등학교와 시장이 개시되어 지촌의 중심지가 되었다.

 

 

 

 

*참고자료

-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화원)

-도주지(1958, 김석봉 편)

-관리 문중 및 주민 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