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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 행전

 

  2018년 5월 29일(화),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를 찾았다. 이 마을은 경산시와 접하고 있으며 구룡 마을, 비석 마을, 질머리 마을[길머리 마을], 삼당 마을, 심곡 마을, 새말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이곳에도 일신재, 추원정, 구은정 3곳의 재실이 있다. 일신재는 후손인 박치현 씨의 안내를 받았으며 최씨 집성촌에 있는 추원재 및 구은정은 문중의 여러 후손들이 안내를 하고 설명을 해주었다. 

   

  먼저 찾은 곳은 일신재입니다.

 

 

 

 

일신재(日新齋)

 

관리문중: 밀성박씨

 

소재지: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 1112(질머리 마을)

운문댐을 지나 북단인 구룡산 아래 자리잡고 있다.

건물구조: 3(1, 고방1, 출입문)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건너 팔작 와가 3(2, 마루1) 규모의 재사가 있다. 겹처마이며 시멘트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전면에 재사보호를 위해 유리창을 달았다. 마루 정면에 재사의 이름인 日新齋를 현액했으며 나란히 삼체정(三棣亭)’도 현액했다. 마루에 삼체정기, 일신재기 및 중건기, 또 추모하는 시들이 많이 걸려있다.

마당에는 자갈을 깔았고 좌측에 기념식수 표석 및 표성기, 일신재와 삼체정에 대한 설명을 한 표석이 있다. 재사 주변에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중간에 사이문이 하나 더 설치했다. 큰 은행나무가 마당가에 있다.

 

배향인물: 만우(晩愚) 박정형(朴廷瀅)

본관은 밀성이며 호는 만우이다. 송은 박익의 후예이며 향산 이만도, 척암 김도화에 사사(師事)하였다. 상을 당하여 시묘 3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행한 보기드문 효자이다.

 

연혁:1984년에 창건 (처음 지은 것은 1912년 경으로 짐작된다.- 단기 4245년에 쓴 일신재기가 있다. )했으며 1994년에 대문채를 지었고 2016년에 대문채를 뒤로 물리는 등 새로 중수했다.

원래 서당이었으며 그 당시 경주, 경산, 영천 등지에서 80여 명이 이곳에서 수학했다. 그 제자들이 계를 모아 재실을 짓기를 요청하여 짓게 되었다. ‘삼체정은 만우공 삼형제의 돈독한 우애를 기리는 것이다

 

 

 

 

 

 

 

 

 

 

 

 

 

다음은 추원정입니다.

 

 

추원정(追遠亭)

 

관리문중: 경주최씨

 

소재지: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 492번지

정상리 새말 동리 앞에 남향으로 좌정했다.

 

정면에 세운 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건너 팔작 골기와 정면4(2, 마루2, 중당협실형) 재사가 있다. 홑처마이며 시멘트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쌍여닫이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전면에 툇마루가 있고 대청마루 뒤편에는 판문이 설치되어 있다. 대청마루에 재사의 이름인 追遠亭이 걸려있으며 주위에 이중철이 쓴 추원정기’, 최현필이 쓴 추원정 상량문이 걸려있다. 주변에 토석담장을 둘렀다.

 

연혁: 1920년에 건립한 뒤, 여러 차례 중수했고 1998년 경에도 크게 중수했다. 경주 최씨 종사로 후손들이 모여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자녀들이 전통예절을 익히는 교육장으로 활용된다.

경주 최씨는 약 400여 년 전에 이 마을에 입촌했으며 약 30호 정도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다음은 구은정입니다.

 

구은정(九隱亭)

 

관리문중: 경주최씨

 

소재지: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 286

정상리 새말 마을 동편의 개천 넘어 안산 기슭에 서향으로 좌정했다

 

건물구조: 정면 4(2, 마루2, 중당협실형) 우측면 및 후면에는 쪽마루를 만들고, 난간을 설치하였다. 우측에 사주문이 있다.

시멘트 기단 위에 화강석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주변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배향인물: 구은(九隱) 최묵석(崔默錫)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오는 구은이다. 사상 최예(崔汭)의 후손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되었다.

 

연혁: 1870년에 지었는데 현재는 담장이 무너지고 창호가 탈락되는 등 퇴락이 심하다. 현재 정자의 편액 및 구은정기 등은 종손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마을 정상이란 이름도 구은정 위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라니 오래된 재사이다. 그리고 이 정자의 종손가는 한 때 천석꾼이었다.

 

 

 

 

 

 

 

 

 

 

 

 

 

 

 

 

다음은 구룡공소입니다.

 

 

구룡공소 

 

  지금 이곳은 천주교 대구 대교구 용성성당 구룡공소이다. 본 마을인 정상에서 멀리 떨어진 이 구룡 마을은 천주교의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사람들이 정착한 마을로 약 2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구룡공소도 원래는 구룡사가 있었던 곳이며 1921년 성당이 되었을 때 이곳에서 판공성사를 한 사람들이 103명이 되었다고 한다.

  175년전 프랑스인 샤스땅 신부가 이곳을 다녀 갔는데  그 샤스땅 신부의 일기에 대구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목에 구룡성당이 있으며 당시에 구룡성당에는 경주 내남면의 신자들과 대구 무태동에 사는 신자들도 이곳 구룡성당에 와서 판공성사를 봤다고 하였으며 그 때 하양성당에 있는 서씨(徐氏)성을 가진 신부님가 이곳을 관리한다고 했다.

 

다음은 정상교회입니다.

 

정상교회

 

운문면 구룡로 1351-1에 소재하며 1995년에 설립되었고 교인은 50여명 정도이다.

 

 

 

 

 

 

 

이 마을은 용천 약수가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지만 옛날에는 약효가 있다고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약수를 마시기 위해서 찾아와 붐볐다고 한다.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에는 정상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정상리(頂上里, 亭上里)는 경주 최씨 소유의 정자인 구은정(九隱亭) 위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정상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오로동(吾老洞)이라고 하였다는데 이것은 오리(奧里), 즉 후미진 곳이라서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심곡 마을[깊은 골 마을]은 처음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깊은 골에 마을이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 정상 마을은 정상리의 중심 마을로 심곡 마을과 합쳐진 마을이다. 이곳에는 느티나무 숲이 울창하고 정자를 지어서 정자 마을로 불리기도 하지만, 구은정이 있어서 정자 마을로 불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심곡보다는 늦게 마을이 형성되어서 새말이라고 부른다.

 질머리[道三]는 삼거리이다. 경산과 영천, 청도로 갈라지는 길 초입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경작지는 대부분 비탈 밭이고 논은 조금 있는 편이나, 마을 입구에 약수터가 있어서 1980년대까지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고 버스도 이곳이 종점이었다. 약수는 유황 성분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삼당은 새말 서편 계천 건너에 있는 마을이다. 새말보다는 높은 지대이며, 시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 개의 바위에 각각 한 집씩 의지하여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해서 삼당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세 개의 바위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지석묘일 가능성이 높다는 기록이 있다.

 구룡 마을[비석리]은 구룡산 아래에 있지만 청도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우물이 아홉 군데나 있어서 구룡천(九龍泉)이라 부르고, 아홉 마리의 용이 우물마다 살았다고 해서 산 이름도 구룡산이라고 하며, 동네 이름도 구룡 마을이다. 이곳은 옛날에 구룡사라는 절이 있었고 비석이 있었기 때문에 비석리라고도 부른다.

 역사의 기록이 남은 것은 밀양군 고며면(古旀面)이 시초이다. 1906년에 청도군 동이위면(東二位面)으로, 다시 동일위면(東一位面)으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정상동이라 하여 운문면으로 통합되었으며, 1988년 정상동에서 정상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구룡산과 바리박산[발백산], 사룡산 사이에 있다. 경작지가 적으나 골은 비교적 좁은 편이 아니다. 비탈진 곳의 논은 대부분 다랑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밭작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구룡 마을은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았던 곳이며, 지금도 구룡 공소가 있다. 주민이 많지 않은 관계로 천주교 대구 대교구에서 와서 미사를 본다고 한다.

 구은정과 낙호 정사(樂乎精舍)와 추원정(追遠亭) 등의 정사가 있고, 질머리 마을에는 삼체정(三棣亭)이 있으며 용천 약수가 있어 옛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만 지금은 발길이 뜸하다. 그러나 위장병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고 효험도 있다고 한다. 인근에는 약수로 닭과 오리 요리를 해 주는 식당도 있다. 구룡 마을에는 여름이면 휴양 차 찾아오는 사람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청도군지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구룡산의 줄기가 갈라져 동과 서로 향하여 그 힘을 자랑하는 가운데 수많은 능선들이 길고 짧게 높고 낮게 형형으로 형성한 반면에 산골짜기 계곡 또한 깊고 짧게 생겨 마을을 낳게 하였다. 산중이요 골 너머 마일(馬日)과 함께 군내에서는 오지 산간 마을로 유명하다. 그러나 빈집이 많아 마을에 냉기가 감돌고 있다.

 

산촌을 누가, 언제, 어디에서 와서 마을을 열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등너머 마일리는 선사시대부터 주민이 살았다 하니 지척지간인 이 곳도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할 수 있는데 선사시대 유적인 지석묘가 남아있지 않아 고증할 길이 없다.

 

청주 한씨가 먼저 입촌했다고 하나 현재 경주 최씨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1914년 이전은 고미면(古彌面)이었으나 1914년에 운문면에 편입된 마을이다.

 

새마을, 새말, 정상(亭上)

본 마을로 마을 어귀에 괴목나무가 수령 500여년을 자랑하고 있다. 이 숲이 여름에는 정자로 좋은 휴식처가 된다. 이 숲의 위에 위치하였다고 정상(亭上), 또한 늦게 취락된 새마을, 새말 등으로 불린다. 이 마을보다 먼저 인가가 들어선 안쪽 마을은 깊은 골 즉 심곡(深谷)이라 한다.

 

()머리, 도삼(道三)

3(), 즉 영천, 경산, 청도로 가는 길머리에 마을이 있다고 길머리, 도삼으로 표기 한다.

 

구룡(九龍), 비석(碑石)

구룡산 중턱에 있는 마을로 구룡산에 있다고 구룡, 또는 큰 비석이 있었다고 비석리라 부른다. 이 산에는 구룡천(九龍泉)이 있는데 용이 9마리나 살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구룡산은 청도, 경산, 영천, 경주 4군의 경계점이기도 하다.

 

삼당(三堂)

산기슭의 세 집에 집집마다 바위가 하나씩 있어 그 바위를 의지하여 집을 지어 살았다고 삼당(三堂)이라 한다. 그런데 이 바위들은 지석묘의 가능성이 높은데 이 바위에다 동제를 지내는 점 등을 미루어 보아 전문가의 입증이 강구되어야 겠다. 이 마을 역시 밭농사 중에서 담배 경작이 성한 편이다. 삼당 마을에 있는 바위 3개를 삼암(三岩)이라 하여 마을의 수호신으로 음12월 하순부터 출입을 금지시키고, 정월초에 당제(堂祭-洞祭)를 지낸다.

 

 

 

 

 

 

 

 

 

 

 

<특이하게 논 한 가운데 큰 돌이 있었다.> 

 

*참고자료

-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화원)

-도주지(1958, 김석봉 편)

-관리 문중 및 주민 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