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운문면 대천리의 이모정 그리고 옛 모습/ 행전 박영환
2018년 6월 4일(월) 청도군 운문면 대천리를 찾았다.
대천리 옛 마을은 운문댐 건설로 모두 수몰이 되었고 현재의 대천리는 금천면 방지리를 나누어서 이주 단지가 된 곳이다.
운문면의 행정 중심지로서 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 농업 협동조합 운문 지점, 마트, 버스 정류장 등이 있어서 주민들의 생활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 이모정이 있다. 이 재실 역시 수몰되었던 것을 동리 뒤편에 이건 복원한 것이다.


이모정(二慕亭)
◯관리문중: 밀성 박씨
◯소재지: 청도군 운문면 대천리 산 149
대천리 뒤쪽 경주 가는 길 좌측에 푸른 대나무를 배경으로 웅장하게 좌정했다.
◯건물구조 3칸(고방2, 출입문)의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전면에 정면 6칸(방4, 마루2, 중당협실형)의 남향 재사가 있다. 겹처마이며 1.2미터 정도의 대리석 축대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대청 전면 중앙에 재사의 이름인 ‘二慕亭’ 편액을 걸었다. 방과 마루 사이에는 사분합들문을 달아 필요시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게 했고 대청 뒤에 널판문을 설치하였다.
축대 위에는 대리석 석재를 깔고 주변에 헌함 형태로 마감했다. 마당에는 자갈을 깔았고 중앙통로는 시멘트 길이다. 재사 전체 방형 석축 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1)제우당(悌友堂) 박경전(朴慶傳)[1553 명종8-1623 인조1]
본관은 밀성(密城), 자는 효백(孝伯), 호는 제우당(悌友堂)·이모당(二慕堂). 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박이(朴頤), 어머니는 만호(萬戶) 예신충(芮信忠)의 딸 의흥 예씨(義興芮氏)이며 이서면 수야리에서 4형제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배위는 군수 박옥형(朴玉衡)의 딸 순천 박씨로 아들 박정(朴珽)과 박기(朴璣)를 두었다.
박경전(朴慶傳)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1591년 부친상을 당하여 상주의 몸으로 여막을 지키던 중,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 부산에 이어 울산, 김해, 양산 등이 함락되고 마침내 20일에는 청도까지 왜적이 침범했다.
이때 박경전은 통곡하여 가로되 “시운이 불행하여 국가가 위태롭게 기울어진 이때 비록 상주의 몸이지만 어찌 작은 허물을 피하여 대의를 허물게 하겠는가, 마땅히 나라를 위해 지킬 것이다.” 하며 부친 묘전(墓前)에서 아우 경윤, 경선과 함께 삼형제가 기의(起義)를 공서(共誓)한 후 형제·조카 및 동민을 따르게 하여 성현준령(省峴峻嶺)을 거쳐 청도 산동 지역 운문산 일대에 이르러 1592년 5월 1일부터 총 34회 출전하여 수많은 적군을 무찔러 큰 공을 세웠다.
그 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등과 함께 화왕산성을 지켰고, 경주와 울산 전투에도 참전하여 전과를 올렸다.
1598년 창녕현감(昌寧縣監)에 봉해졌고, 1605년 선무원종(宣武原從) 2등공신에 녹훈되었다. 그 뒤 1816년(순조 16) 병조판서 자헌대부 겸 지의금훈련원사에 추증되었으며 청도군 이서면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아우 박경윤과 함께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예부운략(禮部韻略)』의 판본을 복각(復刻)하였으며 『제우당문집(悌友堂文集)』이 있다. 묘소는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에 있으며, 묘재(墓齋)인 오강재(梧岡齋)가 있다.
2)상우재(尙友齋) 박경준(朴慶俊)
제우당 4형제 박경전, 박경윤, 박경선, 박경준 중 막내 동생
호가 상우재이다. 이모정 우측 방에 상우재를 추모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연혁: 원래 이 정자는 운문면 순지리 뒤 산록에 있었는데 ‘제우당’이 만년을 보냈던 강학지소(講學之所)이며 이모정(二慕亭)은 봉향(奉享)하던 곳이었다. 1922년 후손들이 새로 지었으나 운문댐 축조로 수몰이 되어 1993(癸酉), 현재 위치에 옮겨 신축했다. ‘二慕亭’의 ‘二慕’ 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한다는 뜻이다.


십사의사록- 박경전 제우당 문집
임진왜란 당시 청도 밀성박씨 소고공파 일문 14의사의 창의 사적을 기록한 책과 책판. 박성묵, 박시묵 종형제의 주도로 1867년에 간행하였다.

배자예부운략책판(排字禮部韻略冊版)
송나라 정도(丁度)가 편찬한 책으로 당시 예부의 과거시험을 위하여 간행된 운서이다. 1615년에 제우당 박경전과 국헌 박경윤이 배자예부운략을 목판으로 제작하였다.

배자예부운략
송나라 정도가 편찬한 책으로 당시 예부의 과거시험을 위하여 간행된 운서이다.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우리 현실에 맞게 자류의 배열을 일정 부분 수정하여 15세기 이후 활발하게 간행이 이루어졌다.

제우당 문집 책판
제우당 박경전의 문집 책판. 1863년(철종 14) 박성묵(朴星默)이 처음 간행하였고 1897년 후손 정만(廷蔓)이 중간하였다. 문집에 수록된 맹약문(盟約文)의 경우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적과 대치하면서 의사들의 용기를 북돋우고 나라를 위해 함께 죽기를 맹세한 글로 그의 충절이 담겨 있다.

막내 동생 박경준을 추모하는 상우재

재사에서 바라 본 솟을 대문

옆 모습


운문면 사무소

옛 대천리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에서 소개한 옛 대천리 모습을 발췌하면 이러하다.
범산과 개산이 있는 중앙에 자리했던 옛 대천리는 2005년 운문댐 축조로 인해 모두 수몰되었다.
운문산과 가지산, 문복산에서 흘러내려온 무적천과 마일리, 정상리에서 내려온 봉하천, 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 지역에서 내려온 물들이 모두 합해져서 큰 내를 이룬다고 대천이라고 하였다. 곡리(谷里), 평리(平里), 원리(院里), 창마란 자연부락이 있었다.
면사무소와 파출소, 보건소, 농업 협동조합, 우체국, 문명 중학교, 문명 고등학교 등이 있었다. 그러나 1996년 4월 13일 완공한 운문댐 축조로 인해 문명 중학교와 문명 고등학교는 경산시 백천동으로 이전해 가고, 면사무소를 비롯한 관청들은 지금의 대천리로 이주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다음 사진은 운문댐을 바라보는 망향정에 게시된 사진을 카메라에 담아 옮겨보았습니다.










운문댐

운문댐 망향정에서
행전 박영환
그리움을 지울 수 있는 것은 만남이다
고향을 용왕에게 바친 사람들은
그 소망을 이룰 수 없는 영원한 실향민이다
등짝을 때리는 소나기 소리
폭우였다. 계곡을 가득 채운 물 그리고 물
새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농업용수로 식수로 생명의 물이 되어 출렁인다
그저 그뿐
낯설기만 한 평화가 밀려왔고
그 평화 아래 낯익은 평화가 허우적거리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수몰민들은
밤마다 노를 젓는다
좀더 가까이, 그래 여기야 다 왔어
깨어나면 다시 물과 물
하릴없이 소쩍새만 울게 했다
망향정 뜨락에 새겨져 굳어 있는 이름들
우리가 왜 여기 왔소
정자에 사진으로 걸린 마을과 마을
우리는 왜 여기 왔소
아픔을 애써 지우다 말고 낙조도 무너진다.

운문댐 수몰가구 명단
참고
-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청도군지(1991, 청도군)
-참여후원회 위훈 인명 사적 요약본(2017, 사단법인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도주지(1958, 김석봉 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산백과
- 박희상 님을 비롯한 제우당 후손 면담
'청도가 좋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청도군 매전면 호화리 (2) | 2022.12.14 |
|---|---|
| 대한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난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 (3) | 2022.12.14 |
| 2018 청도향교 기로연 (0) | 2022.12.14 |
| 경산과 청도의 경계지역 금천면 소천리 (0) | 2022.12.14 |
| 청도군 금천면 동곡리 간아정 (1) | 2022.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