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금천면 동곡리 간아정/ 행전 박영환
2018년 5월 24일(목), 금천면 면소재지 동곡에 소재하는 간아정을 찾았다.


간아정(澗阿亭)
◯관리문중: 고성이씨
◯소재지: 금천면 동곡리 776
금천면 파출소 뒤, 공용버스주차장 사이 길을 들어가면 뒷산 기슭에 서남향으로 좌정
◯건물구조: 3칸(출입문, 고방2) 규모의 평대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팔작지붕 와가 4칸(방3, 마루1, 중당협실형)의 재사가 있다. 시멘트 기단 위에 둥근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쌍여닫이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대청 전면에 재사의 이름인 ‘澗阿亭’ 현액이 있으며 마루 벽에는 김재화가 쓴 ‘간아정기’가 걸려있고 좌우로 ‘중건유감’, ‘간아정운’ 등이 걸려 있다. ‘愛睡軒’ 편액도 있다. 대문 정면에는 하당 4칸(부엌2, 방2)이 있다.
주변에 블록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애수헌(愛睡軒) 이상구(李商耈)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1662년(현종 3)에 태어났으며 호는 애수헌(愛睡軒)이다. 문장으로 세상을 울렸으며 통덕랑(通德郞)을 지냈고 1690년(숙종 16) 금천면 방지에서 동곡에 이거했다. 고성 이씨 청도 입향조인 모헌(慕軒) 이육(李育)의 6대손이다. 고조인 모재(慕齋) 이반(李礬)은 문장이 전아하였으며 동창에 운수정(雲水亭)을 지었으며 임진란에 어버이를 모시느라 의거하지 못하고 “乾坤板蕩日 忠孝兩全難 - 온 세상이 어지러운 때에 충과 효 두 가지 지키기기 어렵다”는 시를 지었다. 증조 수헌(修軒)이개(李漑)는 부호군(副護軍)을 지냈으며 경사를 박통(博通)했다. 조부 정재(正齋) 이구(李球)는 충의위(忠義衛)이다. 부공(父公)은 관가정(觀稼亭) 이광정(李光鼎)으로 문장 덕행이 있었으며 부모상에 시묘를 했다.
임춘의 서하집
신유한(申維翰)[1681∼?]이 쓴 발문과 원 저자인 임춘의 14대손 임재무(林再茂)가 쓴 「중각서하집발(重刻西河集跋)」에 그 전말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신유한의 발문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언젠가 영남의 청도군에 잠시 있을 때 고을 사람 이생(李生)[이하구(李夏耈)]을 따라 노닐었는데, 그의 책갑 속에 『서하집』이 있는 것을 보았다. 바로 선생의 벗인 고려의 상서(尙書)인 미수(眉叟)이인로가 서문을 써서 전한 것이다. 글자는 고색창연한데 책 주름에 드문드문 좀이 먹어 있었다. 이생이 갑자기 말하기를, “예전 병신년(1656년)에 운문사의 승려 인담이 약야계(若耶溪) 곁 소나무와 바위 사이에서 잠을 자다가 꿈에서 담인이라는 한 도사를 만났는데 가까운 거리의 빈 곳을 가리키며 ‘이곳을 파 보면 세상에 드문 보물을 얻게 될 것일세.’라고 했다.” 잠에서 깨어 그의 말과 같이 하니, 과연 동탑이 있었다. 높이는 4척이고, 중간에 한 개의 동으로 만든 동이가 있는데 높이는 동탑의 반 정도가 되었다. 또 동으로 동이의 입구를 덮어 놓았는데 봉함한 것이 대단히 촘촘하였다. 그것을 분리하여 『서하집』을 얻었다
◯연혁:1930년에 창건했으며 2009년에 크게 중수했다. 고성 이씨 종사이며 수백 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현재 이 마을에는 후손들이 10여 호 살고 있다.







국도 20호선이 동리 한 복판을 지나간다.
동곡리(東谷里)
매전면에서 동곡리로 연결되는 20호선을 타고 동곡재를 넘으면 바로 닿는 마을이다.
금천면의 중심 마을이자 운문면과 금천면, 매전면 등 청도군 산동 지역의 중심 마을이다. 면사무소 및 농협 등 기관과 버스 정류장이 있다. 운문쪽으로 가려면 이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달리 길이 없기 많이 지나다니는 길이다. 이따금 차를 세워두고 내려서 차 한잔을 하며 쉬어가기도 한다.
동곡천과 동창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되었으며 서쪽으로는 토함산[통내산]이 높이 솟아 있다.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에 소개된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동곡은 동창(東倉)의 동쪽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에서 동곡(東谷)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중동면에 속해 있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상동곡과 하동곡을 합해서 동곡동이라 하고 금천면에 편입하였다. 행정 구역 통폐합 이후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 금융 조합, 오일장이 설치되면서 산동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동곡 시장은 갈지리와 신지리[네거리]에 있었던 시장이 옮겨와 형성되었다. 1988년 동곡동에서 동곡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동곡2리 경로당
한편 청도군지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발백산(髮白山)에서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각양의 모습을 뽐내면서 마을 뒷편에서 다시 살아나서 정기를 함뿍 마을에 불어 넣고 있다. 서편은 서편대로 큰 봉우리가 융기하여 방안봉 등 유서를 남기면서 지기를 아낌없이 마을에 쏟고 있다.
이런 양 산령 사이로 소천(小川)에서 원류한 동곡천이 1, 2리를 갈라 놓고 동창천은 동곡리를 감아 돌고 있다. 갈지(葛旨)에서 들판으로 이어져 있는 지석묘는 2리 마을 앞까지 산열해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주민이 살았다는 증거가 된다. 산을 등지고 개천 변에 주거한 취락양식은 이 곳도 마찬가지다.
이 마을은 1500년말에 철성 이씨가 입촌하여 정착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어떤 성씨가 살았는지 분명치 않다. 2리에는 1리 보다 약 20여년뒤인 1590년경에 윤만 공이 입촌했다고 한다.
동곡(東谷-동실)
동곡천 동쪽에 위치하였다고 동곡으로 부른다는 설과 현 동곡천 하류인 동창 언덕으로 통하는 다리목에서 보면 골짜기가 두 곳인데 동쪽 곡내(谷內)라고 동곡(東谷-동실)으로 불렀다는 설인데 지명은 지형에서 붙여진 것이 많기 때문에 후
자가 옳다고 보아진다.
상동곡(上東谷-웃동실)
동곡보다 위쪽에 자리 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곡은 본면은 물론 산동지방(운문,금천,매전)의 중심지로 발전할 잠재력이 풍부한 곳이다. 시장을 중심으로 상업과 교통의 요지로 산중 도방(都房)이다. 대구, 경주, 청도읍으로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방안봉
동곡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 공이 매사냥을 즐기던 산으로 조선족 중종 국상일에 매를 방비(放飛)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 중복에 자리잡은 백련암(白蓮庵)은 선암사(仙岩寺)의 예부운략판목(禮部韻略版木)을 보관하였던 곳이다.
동곡에 있는 몇 그루의 고목은 당시 역로(驛路)의 소거(小拒) 표시로 심어진 것으로 보인다. 즉 매전(梅田)역에서 10리 거리에 해당되며 여기에서 서지(西芝)역까지는 20리 거리로 두 역 사이가 30리 거리다.

동곡 2리
참고
-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청)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도주지(1958, 김석봉 편)
-택리지(1978, 최장영 외)
-주민 및 후손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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