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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학일산 아래 자리잡은 청도군 금천면 사전리

학일산 아래 자리잡은 청도군 금천면 사전리/ 행전 박영환

 

  2018년 5월 24일(목), 학일산 아래 동곡천을 따라 골짜기마다 사전, 남전, 학일, 골자무래, 서촌 등 자연 마을이 자리 잡고 앉은 사전리를 찾았다. 이마을은 동서가 산으로 되어 있고, 남북이 뚫려있는 형국이며 연이재 옆에 학일 온천이 개발되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동쪽은 금천면 방지리, 서쪽은 금천면 김전리, 남쪽은 금천면 동곡리·매전면 금곡리, 북쪽은 금천면 갈지리·소천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먼저 찾은 곳이 학고재이다. 

 

 

 

 

 

학고재(鶴睾齋)

 

관리문중: 달성 서씨

 

소재지: 청도군 금천면 사전리 906번지

사전리 학동 마을 입구 산기슭에 남향으로 좌정했다. 재사 앞에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건물구조: 전면에 세운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철근 콘크리트 양옥 와가(28)의 재사가 있다. 10평 창고가 부설되어 있으며 마당에는 주목, 동백, 철쭉, 모과, 감나무 등을 조경했다. 마루에는 문학박사 서수생이 찬한 학고재기가 걸려있다. 마당 오른 쪽에는 재실을 창건하는데 공이 큰 금봉 서정희의 공덕비가 있다. 재사 주변에 벽돌담장을 둘렀다.

 

연혁: 달성서씨 종사이며 1995년 건축되었다. 이 마을은 달성 서씨 현재 25호 정도가 살고 있다.   

 

 

 

 

 

 

 

 

원경

 

학고재 앞의 경로당

 

 

다음 들린 곳은 연이재이다. 이 재사를 관리하고 있는 한씨댁 할머니가 재사의 내력 및 후손들의 근황을 알려주었다. 

 

 

 

 

연이재()

 

관리문중: 청주 한씨

 

소재지: 청도군 금천면 사전리 1589

사전리 학일산 기슭 학일 온천 옆에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건물구조: 강판기와로 되어 있는 대문(3)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팔작 와가 정면 4(3, 마루1, 중당협실형) 재사가 있다. 시멘트 축대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창호를 달았으며 마루와 방 사이에 사분합들문을 달아 필요시에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전면에 연이재 현판이 걸려있으며, 마루에 永報堂 편액도 있다. 마당 우측에 관리사(4)이 있으며 주변에 토석담장을 둘렀다.

 

연혁: 1945년에 창건했으며 청주한씨의 묘재이다. 재사 뒤에 선대의 묘소가 있어 해마다 후손들이 모여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있다. 부자가 안과 의사인 한덕기(작고)와 한영호(대구 명덕로타리 개업)가 그 후손이다.  

 

 

 

 

 

재사 뒤의 묘소

 

 

다음 들린 곳이 집옥재입니다.

 

 

 

 

집옥재(執玉齋)

 

관리문중: 밀성 박씨

 

소재지: 청도군 금천면 사전리 154

 

건물구조: 팔작 와가지붕 홑처마이며 자연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네모 기둥을 세워 쌍여닫이 세 살문 등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정면 4칸에 방이 네 개인데 특히 우측방(2)은 중간을 튼 하나의 방이며 대신 방 앞 마루는 방의 크기만큼 넓혔다. 전면에 재사의 이름인 執玉齋 현액이 있다. 주변에 토석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박장덕

 

연혁: 1908년에 창건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중수했다.  

 

 

 

사전리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 사전리에 대한 소개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밀양군 고미면에서 상동면으로 이관되었고, 다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청도군으로 이관된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사물동(四勿洞)과 남전동(藍田洞)에서 각각 한 자씩 따와서 사전동이라 하였다. 마을로는 사전, 남전, 학일, 서촌 등이 있다.

  남전은 남밭내라고도 하는데, 산등성이와 산봉우리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 가운데로 계천이 흘러 계천변에 좋은 밭이 있으며, 그 밭의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고 하여 남밭내라 부르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남전이라 한다. 학일은 마을 뒷산에 위치한 학일산의 이름을 그대로 부른 것이다. 서촌은 학일산 서편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청도군 일위면의 지역이었으나, 조선 시대에서 비입지(飛入地)로 밀양군 고미면 자물야(自勿也)가 되었다가 사물야(四勿也)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사전동(四田洞)이 되어 종도면에 편입되었고, 1919년 금천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88년 사전동에서 사전리로 이름을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청도군지에는 소개한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거대한 학일산(鶴日山)이 너무도 높게 남주(南走)하면서 마을 뒤쪽을 차단하여 이 산기슭과 동쪽에는 낮은 산능이 뻗어 있는 사이로 사전천(四田川)과 소천(小川)이 합류하고 있다. 이 사전천을 따라 좁은 골 평야가 펼쳐지고 남북으로 열려 있기는 하나 산들이 앞뒤로 첩첩이 막고 있어 산중이라는 감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사전(四田)

사물(四勿)동과 남전(南田)동을 합하여 나온 동명이다. 그리고 동일위면에서 일위면으로 다시 외종도면에서 종도면, 금천면으로 면명이 수차에 걸쳐서 개명되었다.

 

남전(南田)

  남전(藍田), 남밭내 등 여러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산등성이와 산봉우리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고, 마을 가운데로 개천이 흐르며 개천변이 좋은 밭이 있고, 가장 남쪽에 자리잡은 마을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개천 평지에 절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밭과 내(계천)를 합쳐서 "남밭내"라 부르고 한자 표기로는 남전(南田) 혹은 남전(藍田)이라 하였다. 지리지는 남전(南田)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어찌하여 남전(藍田)이라고 표기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학일(鶴日)

  마을 뒷산 학일산(鶴日山)의 이름을 그대로 마을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학동(鶴東), 내촌(內村), 사물(四勿), 골자무래 등 마을의 이름이 많다. 학동은 학일산 동쪽에 자리한 마을이라고 동명을 정했다는데 이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강점하자 학일산의 영험한 힘을 빌려서라도 마을을 온전하게 지켜야 되겠다는 민족혼에서 마을 이름을 고쳤다는 것이다. 내촌(內村)으로 불렀을 때는 한일합병 전으로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안마을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사물(四勿)이라고 각종 지리지에 기록 되어있는데 무엇인가 네 가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드나 알 수가 없다.

 

골자무래

골짜기 물 즉 곡수(谷水)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서촌(西村)

학일산 서편에 있는 마을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상 두 곳의 내용을 소개했다. 아무튼 온천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마을인데 지금은 중단된 상태라 무척 아쉬웠다. 

 

참고

-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청)

-청도문헌 자료집(2013, 청도문화원)

-주민 및 후손 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