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청도군 금천면 김전리 마을 / 행전 박영환
골짜기마다 총 8개의 저수지가 조성되어 있고 계곡 여기저기에 개머리, 다룻골, 안 마실, 못 안이란 자연부락이 있는 마을이다. 동곡천의 발원지이며, 금천면에서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으로 넘어가는 갈고개 아래 위치한다.
근래에는 벽화로 단장하고 작은 공원까지 조성한 부락도 있어 처음 찾는 마을인데도 정감이 있어 며칠 푹 쉬어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벽화로 '행복한 김전리 마을'이라고 선언했다>
먼저 들린 곳이 정도재입니다.


정도재(淨淘齋)
◯관리문중: 고성 이씨
◯소재지: 청도군 금천면 김전리 234
김전 동리 서북향 큰 길 아래 남향으로 좌정했다.
◯건물구조: 기와로 된 뱃집 출입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팔작지붕 골기와 4칸(방2, 마루2, 중당협실형)의 재사가 있다. 홑처마이며 시멘트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둥근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쌍여닫이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방과 마루 사이에는 사분합들문을 설치하여 필요시에는 넓은 공간으로 활용하게 했다.
대청 전면에 재사 이름인 ‘淨淘齋’ 현액이 있으며 대청에 ‘정도재기’가 걸려 있다. 재사 좌측 뒤쪽 별도의 공간에 관리사 4칸이 있는데 앞에 유리창을 달았다. 마당에는 자갈을 깔았다. 불도화 등 정원수가 있고 토석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성재(省齋) 이광태(李光泰)
본관은 고성이며 자는 태형(泰亨)이고 호는 성재이다. 천성이 효우하고 인선하여 문학이 뛰어나고 향인들과 더불어 조상의 얼을 이어가고 후인들을 이끌어 나가 그 뜻을 평생토록 굽히지 않고 향리에서 일생을 마쳤다.
◯연혁: 1660년에 창건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중수했다.


특이하게 대청에 칠판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문중 총회의 기록이 있었다. 지금도 재사가 잘 활용되고 있는 것이 보기 좋아 한 장면 올려보았다.



다음 찾은 곳은 추모재 입니다.


추모재(追慕齋)
◯관리문중: 고성 이씨
◯소재지: 청도군 금천면 김전리 318-2
지방도에서 100미터 거리에 북향으로 좌정했다.
◯건물구조: 대문을 들어서면 팔작지붕 골기와 5칸(방3, 마루2, 중당협실형)의 재사가 있다. 시멘트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방과 마루 사이에는 사분합들문을 달아 필요시 넓은 공간으로 활용하게 했다.
대청 가운데 재사 이름인 ‘追慕齋’ 현액이 있으며 대청에 7세손 이상수가 찬한 ‘추모재기’가 있고 마루 대청 뒤편 벽에 ‘鶴山亭’ 현액도 있다.
마당에는 자갈을 깔았고 토석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삼우당 이진구(李軫구)
본관은 고성이며 자는 태수, 호는 삼우당이다. 모헌 이육의 6세손이며 덕행이 높고 넓어 세상에 그 이름이 높았으며 향리에서 지냈다.
◯연혁: 1915년에 창건했으며 여러 차례 중수했다. 김전동 학일산하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일명 ‘학산정’이라고도 한다. 학일산 웅자가 지켜보고 앞에 펼쳐진 풍광은 가히 선유하던 정경이다.




다음은 오우재입니다.


오우재(五友齋)
◯관리 문중: 양천 허씨
◯소재지: 금천면 김전리 489
◯건물구조: 팔작지붕 정면 4칸(방2, 마루2, 중당협실형)의 재사이다. 홑처마이며 시멘트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4짝 유리문을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대청 전면에 재사의 이름인 ‘五友齋’를 현액했으며 대청에는 김재화가 찬한 ‘오우재기’와 ‘先祖遺敎’ 편액이 걸려 있다. 방과 마루를 통하는 문도 4짝 유리문으로 마감했다. 주변에 토석담장을 둘렀다.
◯연혁: 1980년에 건축했으며 양천 허씨의 종사이다. 뒤에는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운치를 더해주며 해마다 양천 허씨 후손들이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며 묘사를 지내고 있다.



다음 찾은 곳은 황운재입니다.


황운재(凰雲齋)
◯관리문중: 경주 최씨
◯소재지: 청도군 금천면 김전리 581
김전리 못안 마을 뒤편 산기슭에 대나무를 배경으로 남향으로 좌정했다.
◯건물구조: 와가 뱃집으로 되어 있는 문을 들어서면 4칸(방2, 마루2, 중당협실형)의 재사가 있다. 팔작 골기와에 겹처마이며 시멘트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쌍여닫이 세 살문 등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대청 정면에 재사의 이름인 ‘凰雲齋’ 현액이 있으며 대청 뒷면 벽 위에 최성홍이 근찬한 ‘황운재 상량문’, ‘황운재기’가 걸려 있다. 마루 뒤에 널판문을 설치하여 뒷면과 통하게 했으며 마루를 통하는 문은 사분합들문이 달려 있다.
재사 좌우에 보조받침대가 설치되어 있고 마당은 자연 흙 그대로 이며 주변에 토석담장을 둘렀다. 마당에 단풍나무 등이 조경되어 있다.
◯배향인물: 오헌(梧軒) 최변(崔變)
본관은 경주이며 호는 오헌이다.
◯연혁: 1967년에 창건했으며 1991년 등 여러 차례 중수했다.



마을 전경



김전리(金田里)
자연 부락과 자연부락이 많이 떨어져 있어 재실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으나 한 편 여러 마을을 골고루 볼 수 있어 좋은 기회였다. 지금도 계속해서 동민들이 협심단결하여 마을을 가꾸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에 소개된 내용 중 발췌하여 본다
김전리는 원래 밀양의 비입지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청도군으로 편입된 곳이다.
김전리는 옛날 절터에서 금불상(金佛像)이 발견되어서 금전(金田)으로 불렀다고 한다. 또 밭에서 사금(砂金)이 나와서 금전(金田) 또는 금평(金坪)이라고 했다고 한다.
마을로는 개머리[포두(浦頭)], 다룻골[교동(橋洞)], 안 마실[內村], 못 안[池內]이 있다. 개머리는 냇물이 흐르는 시작점 또는 위쪽이라서 개머리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룻골은 마을 앞에 다리가 놓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안 마실은 김전리의 가장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못 안은 금전지를 두고 있어 못 안 또는 못 밑이라고 부른다.
조선 시대 말까지 밀양군 고미면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전에 잠시 일위면에 속해 있다가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김전동이라 하여 종도면에 편입되었다. 1919년 종도면이 폐지되어 금천면에 편입되고, 금천면 김전동이 되었다. 1988년 김전동에서 김전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김전리에도 고인돌이 있어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전원주택이 들어서면서 가구 수가 늘어나고 있다.
한편 군지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발췌를 하면 다음과 같다.
천주(天柱)산 주영봉이 묵중한 산비탈을 거느리고 거침없이 달려와서 마을 서편을 굴곡도 심하게 달려가고 있다. 마을 앞은 좁다란 김전천(葛旨川)이 흐르고 그 너머로는 경산(慶山)에서 융기한 용산(龍山) 연봉이 마주 하면서 힘 겨루기나 하듯이 달려가고 있으며 양 연봉 사이에 나름대로의 평지가 펼쳐져 있는데 주로 둔치령 골짜기가 주된 마을터며 경작지다.
마을앞 도로 동편 들판에 많은 지석묘가 산열되어 있고, 마을의 지리적 구조상으로 보아 선사시대 주민이 정착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도 1500년대초부터의 기록밖에 없다. 이때 처음 거주한 파평 윤씨에 관한 문헌도 거의가 소멸되고 없다. 그후에 입촌한 철성 이씨가 주종을 형성하게 되었다. 2리에도 같은 무렵에 경주 최씨가 입주하였으나 택리 사유는 확실치 않다. 사전(四田)리와 같이 면명이 몇번이나 변경된 마을로 종도면의 영동(嶺東) 4개리 중의 1리이다.
금전(金田)
옛날에 금이 산출되고 금맥이 있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개머리, 포두(浦頭)
마을의 형태가 배(舟)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고 이 마을의 위치가 골짜기내 전체의 형상으로 보아 지형의 머리 부분이라서 배가 나가는 상태라 포두 또는 개머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과 냇물이 흐르는 위쪽이라 붙여졌다는 설인데 전자가 타당한 것 같다.
다룻골, 다락골, 교동(橋洞)
마을 어귀에 다리가 놓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다룻, 다락을 다리(橋)로 표기한 것이라면 다리골의 변음인 것 같다.
안마실, 안마을(內村)
금전리의 중심부락으로 안쪽에 위치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금평(琴坪), 금평(金坪)이라 부르게 된 것은 내촌에서는 가장 넓은 들이라 금(金)에 비유하여 금들(金坪)이라한 것을 일명 금평(琴坪)으로도 표기하기도 한다.
池內(못안), 池下(못밑)는 금전지를 두고 못안 못밑으로 부른다.
이상 두곳의 소개를 살펴보았다. 이름도 곱고 아름다운 마을 늘 평화와 행복이 깃들기를 빌면서 마을 벗어났다. 정말 하루 내내 열심히 발품을 파느라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참고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도주지(1958, 김석봉 편)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청도포럼
-주민 및 후손 면담
'청도가 좋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경산과 청도의 경계지역 금천면 소천리 (0) | 2022.12.14 |
|---|---|
| 청도군 금천면 동곡리 간아정 (1) | 2022.12.13 |
| 학일산 아래 자리잡은 청도군 금천면 사전리 (1) | 2022.12.13 |
| 황강서원이 있는 청도군 금천면 갈지리 (0) | 2022.12.13 |
| 효자각이 있는 청도군 매전면 북지리 (0) | 2022.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