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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1) 임호서원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1) 임호서원 / 행전 박영환

 

  2018년 5월 21일(월)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를 찾았다.  

 

  임당리(林塘里)는 억산이 거느리고 있는 시루봉, 정기등, 쇠등, 진등 등 수많은 봉우리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 마을이다. 1리와 2리가 있으며 자연부락은 끝골, 안골, 가말 등이 있다.

  이 마을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이를 말해주듯 동리 입구 언덕에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 고인돌 군()이 있는데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 이 마을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삼우정 박경신과 그 두 아들 박지남, 박철남 의사의 유물인 보물 제1237호가 있다. 거기에다가 중요 민속 문화재 제245호인 청도 임당리 김씨 고택(내시 종가)이 있다.

이렇게 많은 자료와 유적들이 있어 2회로 나누어

1)임호서원 및 영모재

2)고인돌, 김씨고택 및 재실로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임호서원(林湖書院)

 

 관리문중 : 밀성(密城) 박씨 삼우정공파(三友亭公派)

 

 소재지: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 산 142-1

마을입구 남서방향에 있다.

 건물구조: 전면에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겹처마 골기와 팔작지붕인 정면 5칸 측면 1칸의 강당(온돌방 3, 대청 2칸 중당협실형)이 북향으로 좌정했다. 자연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형성했으며 방과 대청 사이에는 사분합들문을 설치하여 공간을 넓게 사용하게 했다. 전면에는 林湖書院이 현액되어 있으며 강당 벽에 삼우정 중건기’, ‘삼우정기’, ‘重建感慕韻’, ‘ 등이 걸려 있다. 강당을 중심으로 동재(東齋)[4 -고방1, 2, 마루1]와 서재(西齋)[부엌1, 2, 마루1]가 좌우에 배치되었다.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마당에 자갈을 깔았다.

강당 뒤 별도 공간에 연화와 봉두로 장식한 맞배지붕 3칸 사당(祠堂)인 경의사(景義祠)가 있다. 전면에 景義門이 현액된 3칸 규모의 내삼문을 세워 사당을 출입하게 했다.

서원 앞에는 박경신 삼부자의 유물을 전시해놓은 보물전시각을 비롯하여 우국충절(憂國忠節)을 기록한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배향인물

1)삼우정(三友亭) 박경신(朴慶新)

본관은 밀성(密城)이며, 자는 중선(仲宣)이다. 1539 9 9일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에서 아버지 성효재(誠孝齋) ()과 어머니 창녕장씨(昌寧張氏) 사이에서 삼형제중 둘째로 출생했다.

1565 27세 때 아들 쌍둥이(智男, 哲男)가 태어났고 1569년 무과초시에, 1570년 무과복시에, 1573 35세에 무과전시(武科殿試)에서 장원으로 급제 하였다.

조부 박하담(朴河淡)과 삼족당 김대유(金大有), 경재 곽순(郭珣)으로부터 글을 배웠고, 약포(藥圃) 정탁(鄭琢)을 스승으로 받들었다.

선천안동양근도호부 병마동첨절제사를 역임한 후, 1591 5월 관직에서 휴가를 얻어, 섶마루 자택에서 머물고 있을 때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그는 두 아들과 제종(諸從) 14명을 규합하여, 조부 박하담(朴河淡)의 신위를 모신 선암사 사당에서, 의병창의(義兵倡義)를 고유(告由)하니 그날이 4 23일 이었다. 우리나라 의병의 효시가 되었고, 임진란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의병 봉기(蜂起)의 도화선(導火線)이 되었다. 그날 의병들에게 임무와 진지를 배치한 후, 임금께 왜적의 북상을 알리기 위해 상경하였다. 4 29일 어전(御前)에 나아가 전쟁의 실상을 아뢰었고, 그 자리에서 청도조전장(淸道助戰將)에 임명되었다.

삼우정은 선조왕 피란길에 향도역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5 8 평양을 출발하여, 영주의성예안안동영천을 거쳐 6 29일 자인에 도착, 최문병(崔文炳) 의병장과 청도읍성 탈환을 위해 연합 작전키로 맹약하였다.

7 9일 청도조전장 박경신(朴慶新)은 동면의 의병대장 김일령(金日嶺), 정해(鄭海), 배원우(裵元祐), 이만생(李萬生), 김온종(金溫宗), 정인진(鄭仁進), 박지남(朴智男), 박철남(朴哲男), 박찬(朴璨), 박숙(朴琡), 박선(朴瑄)과 서면의 의병대장 최여준(崔汝峻), 이정욱(李廷郁), 예몽진(芮夢辰), 반효홍(潘孝弘), 이잠(李潛), 김홍한(金弘漢), 박경전(朴慶傳), 박경윤(朴慶胤), 박린(朴璘), 박구(朴球), 박근(朴瑾) 등과 합세하여 청도읍성을 탈환 후, 모든 군사를 배응경 군수 휘하에 관군(官軍)으로 편성하고, 배응경 군수의 명령에 따르도록 하였다.

그는 청도조전장(淸道助戰將)과 밀양도호부사(密陽都護府使)를 겸무하면서 계속되는 전투에서 누적된 전상(戰傷)과 과로로 인해 1594 6 5일 밀양 관아에서 순직 하였다. [2년간 총50여회 전투에서 왜적 234명을 참살한 공적을 기록한, 일자별 실기(實記)인 창의일록(倡義日錄)을 남겼다.]

1605년 어사선무원종 1功臣과 호성원종 2功臣에 녹훈되었고 청도 14의사의 한분이고, 14의사 중에서 공신등급과 연령이 가장 높다.

 

2) 계애(溪崖) 박지남(朴智男)

삼우정의 장남으로 1565년 출생했다. 자는 인경(仁卿) 호는 계애(溪崖)였으며 부친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청도 등 인근의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선무원종공신2등에 올랐다.

 

3) 운애(雲崖) 박철남(朴哲男)

박지남의 쌍둥이 동생으로 호는 운애(雲崖)였다. 아버지 박경신, 형 지남과 함께 의병에 참여하였고 또한 형과 함께 선무원종공신2등에 올랐다.

위의 임진란 삼부자(三父子) 공신은 용강서원의 충열사(忠烈祠)에도 춘추제향(春秋祭享)하고 있다.

 

연혁: 1921(辛酉)에 밀성 박씨 삼우정공파(三友亭公派)의 재실(齋室)로 창건되었다. 그 뒤 청도유림에서 삼우정 박경신과 두 아들의 진충보국(盡忠報國) 충절을 숭모하기 위하여, 1927 3 17일 경의계(景義契)를 창립하였다. 경의계 발족 당시 정안(正案)에 참록(參錄)한 향유(鄕儒) 591명이나 되었다. 경의사(景義祠) 1980년에 창건하게 되었다.

삼우정 및 두 아들이 수령한 절지수(節祗受: 功臣錄功帖) 13매와 어사원종공신록권 1책등 4 17점이 國家寶物(1237)로 지정되어, 대구 국립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三父子가 수령한 총23매의 節祗受 10매는 실물(失物)이 됨)

 

 청도 14義士 義兵倡義 名單 (1592 4 23, 선암사 사당)

 

 

성 명

연 령

(倡義當時)

의병창의시 직책

행 직

증 직

공 신 록

(朴慶新선생을 중심으로

寸數)

박경신(朴慶新)

54

(享年56)

義兵將

助戰將

밀양도호부사

겸 청도조전장

병조참판

宣武原從 1등공신

扈聖原從 2등공신

박경인(朴慶因)

50

(享年50)

義兵將 支援

 

지 평

戰傷으로 殉節

(舍弟)

박경전(朴慶傳)

40

(享年71)

亞翼將

창령현감

병조판서

宣武原從 2등공신

(從弟)

박경윤(朴慶胤)

37

(享年72)

亞翼將

훈련원 주부

병조판서

宣武原從 2등공신

(從弟)

박경선(朴慶宣)

32

(享年32)

義兵將 支援

만 호

좌 승 지

戰場에서 殉節

(從弟)

박지남(朴智男)

28

(享年62)

先鋒將

동지중추부사

 

宣武原從 2등공신

(長男)

박철남(朴哲男)

28

(享年47)

先鋒將

사복부장

 

宣武原從 2등공신

(次男)

박 선(朴 瑄)

21

(享年44)

右翼將

한성부우윤

 

宣武原從 3등공신

(從子)

박 찬(朴 璨)

20

(享年53)

左翼將

판 관

 

宣武原從 3등공신

(從子)

박 린(朴 璘)

19

(享年77)

右翼將

첨 정

 

宣武原從 2등공신

(從姪)

박 우(朴 瑀)

17

(享年62)

 

남포현감

호조참의

振武原從 1등공신

(從子)

박 구(朴 球)

16

(享年89)

義兵將 支援

판 관

 

宣武原從 3등공신

(從姪)

박 숙(朴 琡)

15

(享年62)

義兵將 支援

봉 사

 

宣武原從 3등공신

(從子)

박 근(朴 瑾)

미상

左翼將

참 봉

 

宣武原從 2등공

(再從姪)

 

 

 

 

 

 

 

 

 

 

 

 

 

 

사당 - 경의사 

 

 

경의관 전시실

 

 

 

 

 

십사의사록: 임진왜란 당시 청도지역 밀성 박씨 소고공파 일문 14의사의 창의 사적을 기록한 책 및 14의사록 책판(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어사선무원종 공신녹권: 삼우정 박경신과 그의 두 아들 지남, 철남에게 내려진 공신녹권. 14의사의 인물들로 임진왜란 때 창의한 공적을 인정받아 공신에 책봉되었다.(국립대구박물관 소장)

 

박경신 증직 교지: 삼우정 박경신을 '가선대부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훈련원도정'에 증직하는 교지(국립대구박물관 소장)

 

 

 

 

 

창녕 장씨 별급문기: 삼우정 박경신의 과거 급제를 축하하기 위해 어머니 창녕 장씨가 재산을 별급한 분재기(국립대구박물관 소장)

 

 

절지수: 박경신과 그 두 아들 지남 철남 3부자의 전공에 대한 포상으로 박경신 8매, 지남 2매, 철남 

3매가 전한다.(국립대구박물관 소장)

 

 

삼우정 후손인 박희상 님 - 정부 부처에서 서기관으로 퇴직한 뒤 향리에 내려와 조상의 정신을 선양하고 기리며 지내고 있다. 이날 임당리를 탐방하는 내내 임호서원은 물론 동리 곳곳을 상세하게 안내해주었다. 

 

 

<서원에서 내려다 본 마을> 

 

 다음은 영모재 편입니다.

 

 

영모재(永慕齋)

 

관리문중: 밀성박씨 삼우정파

 

소재지: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 336번지

동리 뒤편 푸른 대나무를 배경으로 좌정했다. 방향은 남서향이다.

 

건물구조: 전면에 세운 3(방앗간1, 출입문, 1) 규모의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건너 정면 3(2, 마루1, 중당협실형)의 재사가 있다. 시멘트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구체부를 형성했다. 전면에 永慕齋  鳳亭古堊이 걸려 있고 마루벽에 박재형이 쓴 봉정고악기가 있다.

좌측에 있는 하당도 3(2, 부엌1)이다. 마당은 시멘트로 되어 있으며 블록담장이다. 재사 뒤편에 대나무를 심었다.

 

배향인물: 박광옥(朴光沃)

본관은 밀성이며 삼우정 박경신의 후예이다.

 

연혁: 1935년 창건했으며 여러 차례 중수했다. 8대조 아래 후손이 200명 정도 되는데 그 중에 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3명이며 공무원은 23명이다. 전 농림부 차관 박해상, 전 구미시장 박순태, 정부 부처에서 서기관을 지낸 박희상, 한국치공구공업주식회사 대표 박영욱 씨가 그 후손이다.     

 

 

 

영모재 하당: 고시 합격자가 3명이나 나온 집이다. 영모재 터가 좋다고 하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이 하당 터가 더 좋은 것 같다.  

 

 

임당리(林塘里)

 

임당(林塘) 또는 임호(林湖)라고 불려지는 마을이다.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에 소개된 내용을 발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마을 앞 넓은 들이 형성되기 전에 운문천이 감돌아들어 마을 앞 똥뫼산까지 휘돌았으며 당시에 숲과 깊은 소가 함께 있어서 임당(林塘)이라 했다고 하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명포동을 병합하여 임당동이라 하였다.

  임당은 대천에서 흘러온 물이 강 건너 방지리의 눌연정 앞에 큰 연을 만들고 있는 곳에서 뒤로 물러앉은 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작은 독뫼산[똥뫼산]이 있고, 큰물을 피해서 양쪽 골짜기를 의지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임당은 용두소(龍頭沼)를 가까이 하고 있어 강변에 나무를 심어 방천을 했다고 하며, 숲으로 제방을 막았다고 해서 임당이라고 한다.

  명포는 명가실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오고 있다. 금천면 동곡리를 나다니려면 나룻배를 타고 드나들었던 곳으로, 포구(浦口)가 있어서 명포라고 했다고 한다. 옛날에는 대천리로 갈 때 지금과 같이 동곡리를 거치지 않고 명포를 거쳤다. 신작로가 나고 현재의 길로 다니면서 명포의 옛길은 기억에도 사라져갔지만, 임당의 내시 고택이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면서 이 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한편 청도군지에는 이렇게 소개했다.

 

  임당(林塘), 임호(林湖), 숲당은 호산(虎山)과 용두소(龍頭沼)와의 사이에 있는 마을로 범을 불러들이고 용을 머물게해야 된다는 풍수설을 따라 마을 앞 냇가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어 마을에 범을 부르고 못을 파서 용을 머물게 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고 보니 마을은 숲에 가리우게 되어 숲()과 지당(池塘)을 표현한 것이 임당(林塘), 임호(林湖)라고 붙여진 것이다.

  명포(明浦)는 양지바르고 냇가에 위치한 탓으로 이곳 지형이 포구 같아서 양지 바른 밝()은 곳이고 포구와 비슷하다 하여 명포라고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일설에는 조선조 중엽부터 범선(帆船)이 조곡(租穀)을 날랐다고 하나 동장천의 지층 구조상으로 과연 배가 운항된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 사료되는 바 심도 있는 규명이 있어야 겠다.

  제궁(齊宮), 새각단은 밀양 박씨의 삼우정(三友亭)과 강림재(講林齊)가 있는 곳이라 제궁(齊宮)실로 불렀고 한때는 300가구에 이르러 큰각단, 새각단이라 부른 것이다.

 

  이상 임당리의 유래를 살펴보았다. 현재 이 마을에는 밀성 박씨 소요당 박하담 후손인 삼우정파 80여호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삼우정파는 360여 년 전에 삼우정 박경신의 손자가 정착하였다. 

  그외에도 밀성 박씨 정국공파, 경주 최씨, 고성 이씨, 김해 김씨, 충주 석씨 등이 살고 있다.       

 

참고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도주지(1958, 김석봉 편)

-수야곡에 흐르는 충절에 마음(2015, 한국국학진흥원)

-청도지역의 임진란사 연구(2017,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 밀성박씨 삼우정파 후손 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