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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3) '자연 속의 사람, 사람 속의 자연'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3) '자연 속의 사람, 사람 속의 자연'

 

                                                          행전 박영환  

 

  신지리에는 여느 마을과 달리 신지리 자연이 만든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만든 자연이 있다.

지금까지 신지리 1)에서는 선암서원과 재실, 2)에서는 고택을 다루었다. 이번 신지리 3)에서는 ‘자연 속의 사람, 사람 속의 자연' 이란 주제로 정리하려한다.

 

우선 고인돌을 소개한다. 

 

    

 

 

  신지리에는 여기저기 고인돌이 많이 산재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무덤은 신석기 시대부터 나타나지만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도 중기 이후가 정형화 되고 집단적으로 조영되었다고 한다이는 이때부터 혈연중심의 묘역을 조성했기 때문에 조상 숭배개념이 형성되었다는 물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조상의 뼈를 묻고 오래오래 그리워하고 기리는 무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돌덩이로 바뀌었다. 그래서 농사를 짓거나 집을 짓는데  한없이 거추장스런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 마음대로 옮겨지기도 하고 마구 변형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곳 신지리 역시 같은 상황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논바닥 속에 있는 고인돌이다

 

 

대추나무 속에 있으니 주인의 입장에서 얼마나 볼썽사나운 존재이겠는가

 

 

 축사 앞에 있는 고인돌이다주인이 농기구를 얹어 놓고 있다.

 

 

  신지리에는 마을을 감싸며 물돌이를 하는 강이 있고 이 강 언덕에 선암서원이며 만화정이 들어섰다그런데 이 선암서원이며 만화정의 명성에 가려 자칫 지나치기 쉬운 곳이 있다그게 바로 洗心臺이다.

 

 

  ‘세심대는 만화정 뒤편의 바위 벼랑이다별 생각 없이 바라보면 평범한 바위군이자만 관심을 가지고 살피면 선인들의 호흡이 담긴 수많은 글귀들이 나타난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 관심을 가지고 답사를 했던 박윤제 청도문화원장이 찾은 글자 및 문구들은 이런 것들이다.

 

山高水長諷詠, 煙霞痼疾泉石膏肓鳶飛魚躍淵澄壁立咏歸桃園

 

 

 

 

 

 

청도문화연구회 회원들이 바위에 새겨진 글자들을 살피고 있다

 

 

 

 

山高水長: 산처럼 높고, 흐르는 물처럼 끊임이 없다는 것으로 인품의 고결함이 매우 높아 오랫동안 추앙되며 은덕·우의가 깊다는 뜻이다.

 

諷詠시가 따위를 낮은 소리로 읊는 풍류를 말한다.

 

(): 마음을 다스린다는 뜻이다나의 마음을 다스려서 자연과의 합일점을 찾는다는 것이다.

 

煙霞痼疾(연하고질): 이는 泉石膏肓(천석고황)과 같은 뜻이다당서에 나오는 말인데 자연에 도취된 병이 너무 깊어서 도저히 고치지 못할 정도로 고질병이 되었다는 은유적인 표현이다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첫장이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로 시작된다. 이 죽림은 자연을 말함이다즉 자연에 도취된 연하고질’, ‘천석고황의 경지로 벼슬을 생각하지 않고 은거하고 있는데 임금님께서 간곡히 명하여 벼슬길에 올랐다는 것을 말한다.

 

鳶飛魚躍(연비어약): 시경에 나오는 말로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것즉 천지 만물은 자연의 바탕에 따라 움직여 저절로 그 즐거움을 얻는다는 뜻이다.

 

淵澄壁立(연징벽립): ‘연비어약의 대구이다세로로 쓰여 있는데 푸른 물가 언덕에 세워진 세심대를 의미하며 벽립이란 우뚝 선 지조와 의연한 기상을 의미하는 것 같다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결의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咏歸(영귀): ‘詠歸와 같은 뜻이다.

  어느 날 공자가 자로’ • 염유’ • 공서화• 증점’ 등과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공자는 제자들을 향해 각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물었다그때 자로와 염유공서화는 망설이지 않고 각자의 개성과 능력대로 현실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자신의 뜻과 능력을 발휘하겠다는 소망을 말했다그러나 증점은 기수(沂水 노나라 도성 남쪽에 있는 강)에서 목욕하고무우(舞雩 하늘에 제사나 기우제를 지내는 언덕)에서 바람 쐬겠다고 했다이때 공자는 증점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이후 선비들은 이를 이상적인 삶으로 여겼다.

  전남 곡성에도 詠歸書院이 있으며 이서면 서원리 자계서원에도 詠歸樓가 있다.

 

桃園(도원): ‘武陵桃源을 이른다이는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桃花源記(도화원기)’라는 글에 나온 것이다()나라 太元(태원연간(376~396)에 어느 어부가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던 중문득 양쪽 언덕이 온통 복숭아 꽃으로 덮여 있는 곳에 이르렀다그곳은 사람이 늙지도 않고 병도 들지 않고 꿈의 세계를 그리며 행복하게 살았다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무릉도원이라 했다고 한다.

 

이 높은 단애에 글귀를 새긴 사람은 누구일까 짐작컨대 만화정을 세운 운강 박시묵이나 그의 아들 진계 박재형이 아닐까.

  당신들은 여기에 洗心亭을  짓고 이곳을 무릉도원으로 삼아 오래오래 평화로운 풍류를 즐기고자 했던 것 같다.

 

  

 

다음 찾은 곳은 금천초등학교이다.

 

 

 

   금천초등학교는 역사가 113년이나 된 학교로 청도에서 오래된 학교 중의 하나이다. 

  1906 12 29일에 선암 서원(仙巖 書院)의 유사(有司)이던 섬암고택의 박병현(朴秉鉉)이 문중 소유의 땅 8 9256.19을 기본 재산으로 사립 신명 학교(新明 學校)를 설립하였다

  1917 3 16일에 사립 선암 학교로 교명을 바꾸었고, 1919 6 2일에 금천 공립 보통 학교로 ,

 1941 4 1일에 금천 국민학교로, 1996 3 1일에는 금천 초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현재 새로운 건물을 헐고 현대식 건물을 신축 중인데 거의 마무리가 되어 완공을 앞두고 있다.

        

다음은 신지 생태공원이다.

 

 

신지생태공원은 2015년 10월 12일 준공을 했으며 이날 공원내 박훈산 시비 제막식도 했다.

 

 

 

신지 생태공원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박훈산 시비

 

 

 

 

여기에서 제1회 박훈산 백일장이 열렸고 아이들이 할아버지 담뱃대 앞에서 열심히 글을 적고 있다

 

 

 

 

 신지리 봉황애 맞은 편에 둥지를 튼 민병도 갤러리인 목언예원 - 민병도는 이곳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그리고 있다. 한편 이곳은 청도문인들의 세미나 장소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錦川(금천)

                                   민병도 


미처 떠나지 못한 길 하나가 물 속에 잠긴
겨울 錦川에 앉아서 물소리로 적막을 씻네
깃 다친 청동새 한 마리 軍裝(군장)을 벗는 저물녘

비정의 겨울을 온몸으로 증언키 위해
갈대는 선 채로 죽어 쓰쓰 싹싹 스크럼을 짜
가늠키 힘든 水深(수심)을 거울처럼 밝혀 놓았네

굽이쳐 온 지난날의 못다 아문 상처를 따라
속으로 울음을 삼킨, 삶은 다면 저 물길 같은가
初刊本(초간본) 옛 지도 위로 反逆(반역)의 뼈도 세우는

후렴뿐인 악보 하나로 강을 지킨 마른풀들 
산빛을 꺾어 덮고 시린 어깨 뉘일 때
끊어진 징검다리를 건너 첫눈이 오고 있었네

 

 

 

강을 중심으로 양쪽 오솔길을 이름하여 '달빛 시작거리' - 국내 유명 문인과 청도 출신 문인들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징검다리는 신지리의 또하나 새로운 명소이다.

 

  여기 신지리에 터를 잡은 이가 또 한 사람 있다. 리강룡 시인이다.

그는 경북 성주 출생이지만 청도가 좋고 신지리가 좋아 이곳 강가를 거닐며 신지리 일기를 적어나가고 있다.

 

신지리 일기 6

- 강가에서  

 

                            

                     리강용

 

처서 무렵 맑은 강을 눈여겨 바라보아라

쉼 없는 몸짓으로 두런거리며 가고 있는

투명한 그들만의 언어를 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뒷물이 앞물을 밀어 흐르게 하는 것이냐

앞물이 스스로 비워 채우게 하는 것이더냐

아니다, 그들은 그들끼리 그저

몸을 섞으며 가는 것이다

 

 

 

참고

-디지털 청도문화

-화악의 맥(2013, 청도문화원)

-청도 문화유산의 가치와 활용방안(2017, 청도문화연구회)

-신지리(리강용,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