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금천면 신지리(4) 운천서원 및 절, 교회/ 행전 박영환
지금까지 3편에 걸쳐 신지리를 소개했으며 마지막 편인 4편에는 운천서원 및 옥련암. 신지 교회를 소개하려 한다.
2018년 2월 26일, 금천면 신지리 길부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운천서원을 찾았다.


운천서원(雲泉書院)
◯ 관리문중 ; 밀성박씨(密城朴氏) 운곡종중(雲谷宗中)
◯ 소재지 ;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1340번지 (길부)
◯ 건물구조 ; 강당 운천재(雲泉齋)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목조기와 팔작집으로 양협실(兩夾室)은 온돌방, 가운데 2칸은 대청이다. 전면 중앙에 운천서원(雲泉書院) 현판, 대청에 중수기문, 시문 등의 편액이 걸려있다. 강당 뒤편에 삼문인 충의문을 들어서면 사당 충효사(忠孝祠)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목조기와 맞배집이다. 주위는 석축으로 쌓았다. 강당 앞 동(東)에는 후손 박상경(朴尙敬)의 무욕재(無辱齋)로, 정면 4칸 측면 1칸 목조기와 맞배집이고, 서(西)에는 관리사로 정면 3칸 측면1칸의 목조 기와집이다.
◯ 배향인물
운곡(雲谷) 박문부(朴文富 ; 1563∼1605)
본관은 밀성(密城), 자는 극달(極達), 호는 운곡(雲谷) 또는 삼우당(三憂堂)이다. 충의(忠毅)공 전객령(典客令) 박천경(朴天卿)의 6대손이며 조(祖)는 현신교위(顯信校尉) 박의번(朴義蕃)으로 진주에서 청도로 시거(始居)하였다. 고(考)는 어모장군(禦侮將軍) 박기석(朴起碩)이며 비(妣)는 달성 서씨로 조선 명종 18년 청도 향제(鄕第)에서 출생하였는데 날 때부터 특이한 자질이 있었다 한다. 다섯 살에 부상(父喪)을 당하여 크게 애통하였으나 교위(校尉)공이 극진히 사랑하였으며, 낮에는 활쏘기와 말 타기를 익히고 밤에는 고인서(古人書)를 읽었는데 경사자집(經史子集)에 섭렵(涉獵)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는 평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버이를 봉양하는데 효도하지 못하고, 임금을 섬기는데 충성하지 못한다면 짐승들에게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하였다. 지극한 효성으로 모친을 섬기는데 극진하였으며, 자라서는 삼종질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와 함께 한강(寒岡) 정(鄭) 선생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선조 15년(1582)에 무과에 올라 선전관, 제포첨사로 부임하여 변방 방위의 중책을 철저히 하여 한나라 국경의 장성(長城), 송나라 관문(關門)의 자물쇠라 하였다. 선조 22년에 사복시 첨정으로 내직에 들어갔으나, 당시에 태백성(太白星)이 낮에 무상(無常)으로 나타나므로 중봉(重峯) 조헌(趙憲)이 병란에 대비하기를 소청하였으나 가납되지 않고 죄를 받는 것을 보고, 한탄하여 분연히 기관(棄官), 향리에 운천재(雲泉齋)를 지어 무사(武事)를 강론하고 불안한 상황의 대비와 극복을 고심 하던 중, 임진년에 왜병이 한성(漢城)을 핍박(逼迫)하므로, 임금이 오리 이원익을 체찰사, 학봉 김성일을 초유사로 명하였을 때 공은 칼을 잡고 따르면서 지휘를 분명하게 하고, 약속과 맹세를 엄하게 하여, 한결같이 정성을 다 하였으므로 오리공(梧里公)이 그의 충심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고, 학봉(鶴峯) 또한 공의 충성과 용맹을 특별히 임금에게 보고하여 말 한필과 비단 일단(一段)을 하사하게 하였다. 선조가 의주로 몽진할 당시 어가를 충심으로 호종하였으므로 선조가 “너의 충성을 아름답게 여기고 너의 노고를 포상하겠다.”하였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삼등에 녹훈되고 선조 38년(1605)에 통훈대부 이성현감(利城縣監)에 제수되었다. 그해 정월 22일에 43세로 졸하니 임곡 밀안 연화봉(蓮花峯)에 안장하였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진계(進溪) 박재형(朴在馨)의 행장, 성균박사 경현수(慶賢秀)의 묘갈명(墓碣銘), 지성균관사 장석룡(張錫龍)의 운곡전(雲谷傳) 등이 있다.
운곡유집과 공신녹권 문집판각 등이 전해오고 있으며, 홍순언, 이호민, 신흠, 김수, 김상용 제공들의 증시(贈詩)가 있고, 선원 김상용, 청음 김상헌, 참의 서성, 영원군 홍가신, 관찰사 김수, 당릉군 홍순언, 연릉군 이호민, 상촌 신흠, 참판 윤형필, 목사 윤양, 병사 이용순, 병사 김응서, 현감 박경전, 첨정 박경윤, 관찰사 박명부, 훈도 정민도, 판사 박영종 등 제공들의 만사가 있다.
◯ 연혁(沿革): 운곡의 오대손 박상경(朴尙敬)이 당시의 지극한 행실이 세상에 드러남에 따라 칠대손인 묵재(黙齋) 박세언(朴世彦 1788∼1841)이 헌종 4년(1838)에 제족(諸族)의 뜻을 모으고, 사림(士林)의 공의를 얻어서 촌후(村後)에 운천서사(雲泉書社 忠孝祠)를 지어 운곡과 무욕재 양현(兩賢)을 제향(祭享)하였다.
고종 5년(1868)에 조령(朝令)으로 훼철(毁撤)되어 운천재와 관리사만 남아 1922년에 제족의 성력(誠力)으로 사정산(射亭山) 기슭 평상(坪上)에 운천서사(운천재)를 이건 중창(重刱)하고 신지리 1190번지에 있던 무욕재(無辱齋)를 경내에 그대로 옮겨와 석채례(釋菜禮)를 행하여오다, 1995년 후손의 성력(誠力)을 모으고, 사림의 공의(公議)를 얻어 충효사 사당을 새로 세워 안동 권오근(權五根)이 찬한 고유문으로 운곡 박선생을 봉안고유하고 제향하였다.
2009년 향론(鄕論)에 의하여 사림의 공의로 운천서원(雲泉書院)으로 승호(陞號)하고, 문학박사 하산(夏山) 장인진(張仁鎭)이 지은 고유문을 음 삼월 22일에 고유하고 이로부터 매년 음 삼월 23일에 제향하고 있다.








사당 충의사
추




서원앞 전경 - 가까이는 마을과 저수지가 있고 멀리 바라보이는 산이 억산이다.
다음은 옥련암이다.


옥련암
◯소속: 조계종
◯소재지: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38- 12
◯연혁: 대지는 202㎡이며 1972년에 창건되었다. 신도수는 140명 정도 된다.
다음은 신지교회이다


신지교회
◯소속: 장로교
◯소재지: 금천면 선암로 419-3
남영동 방향에서 신지리로 오다 동리 입구에 있다.
◯건물구조: 구 건물과 신 건물 각 1동
◯연혁: 1974년에 신축했으며 근래 새 건물을 지었다. 부지는 180㎡이며 신도수는 30명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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