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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 / 행전 박영환

 

2017년 1월 1월 5일(목)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를 찾았습니다. 녹갈마을은 현풍 곽씨의 재사인 녹명재와 첨망재가 있으며 구만마을에는  교리재와 풍암재가 있습니다.

 

 

 

 

 

교리재(校理齋)

 

관리문중: 성주 도씨

 

소재지: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 973번지

녹명길을 따라오다 보면 죽바위 좌측에 있는 구만마을 가운데 있다.

 

건물구조: 블록담장 사이에 있는 철대문을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재사가 있다. 후면으로 온돌방 3칸을 배열하고 방 앞으로 마루를 설치했다. 마루 앞에는 재사 보호를 위해 창문을 달았다. 목조와가 건물의 외벽에는 벽돌로 단장하였고 감나무를 심어 운치를 더해준다.

 

배향인물: 도하(都夏, 1418-1479)

1437(세종17) 사마시 합격, 1458(세조3) 문과 별시에 장원, 좌정언 및 지제교, 1467(세조 13) 자인군수, 1472(성종3) 홍문관 교리, 제주 점마사, 1476(성종7) 통정대부, 정평부사 - 묘는 달성군 다사면 죽곡촌에 있다.

 

연혁: 1998년에 지었으며 몇 차례 중수했다. 이 마을은 성주 도씨들의 집성촌이다.

 

 

 

다음은 풍암재입니다

 

 

 

 

풍암재(豊巖齋)

 

관리문중: 성주 도씨

 

소재지: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 305번지

녹명길을 따라오다 보면 죽바위 좌측에 있는 구만마을 앞에 있다. 재사의 보호를 위해 툇마루 앞에 유리창을 달았으며 마루에 풍암재기가 걸려있다.

 

건물구조: 넓은 마당 가운데 목조와가 정면 3, 측면 2칸의 재사( 2, 마루 1)가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블록담장이며 전, 후로 철대문을 설치했다.

 

배향인물: 풍암(豊巖) 도순호(都順浩)

본관은 성주이고 자는 여욱(汝郁)이며 호는 풍암이다. 취애(翠崖) 도응유(都應兪)의 후예로 부사용, 장사랑, 도사 등을 역임했으나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여 성리학을 연구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또한 재물을 풀어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니 주변에서 군자라 칭송하였다.

 

연혁: 1915년에 지었으며 1966(丙午) 등 몇 차례 중수했다.

 

 

 

 

 

다음은 녹명재입니다.

 

 

녹명재(鹿鳴齋)

 

관리문중: 현풍 곽씨

 

소재지: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 581-6번지

녹명2(녹갈마을) 경로당 뒤편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건물구조: 목조와가 정면 9, 측면 1칸의 자형 재사(5, 마루3, 수납공간1)에 하당(식당과 부엌)이 있다.

녹명재기 등이 대청에 걸려 있으며 재사 보호를 위해 유리 창문을 달았다. 마당에는 잔디를 심었으며 블록담장을 둘렀는데 특이하게 동쪽과 남쪽에 일각대문을 세워 출입하게 하였다. 정원에는 수백 년 된 향나무와 무화과, 벚꽃나무 등이 단장되어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배향인물: 곽내복

충익공 곽재우 장군의 6세손으로 현풍 구례에서 청도 녹명동으로 택리하여 왔다.

 

연혁: 조상의 유덕을 기리며 향사를 올릴 뿐만 아니라 문중의 회의 장소로도 활용하기 위해 1957년도에 창건했으며 1980년에 중건했다.

이 재사는 옆의 첨망재(瞻望齋)와 같은 공간에 있으며 두 재사 모두 충익공의 12세손 대구 곽병원 설립자 운경(雲耕) 곽예순(郭禮淳) 박사의 물심양면 정성이 깃들여 있다. 마당에는 우리들이 태어나서 자란 이곳은 어른들을 정성껏 모시고 일가친척끼리 서로 아끼고 도와 인정이 넘쳐흘렀습니다. 조상께서 남기신 이와 같이 아름다운 풍속을 길이 이어보자는 마음으로 1980 8 15일 녹명재를 세웠습니다. 경신 상달 시향에 즈음하여. 예순 이란 글이 조그마한 표석에 새겨져 있다. 재사 뒤편에는 곽 박사가 향리에 오면 머물었던 아담한 양옥 기와집인 운경서당 이 있다.

 

 

 

 

<녹명재 원경>

 

 

다음은 첨망재입니다.

 

 

첨망재(瞻望齋)

 

관리문중: 현풍 곽씨

 

 

소재지: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 752-1번지

녹명2(녹갈마을) 경로당 뒤편에 있으며 같은 곳에 있는 녹명재를 통해 들어갈 수도 있다.

 

건물구조: 전면에 세운 3칸 규모의 대문(출입문, 수납공간2)를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목조와가 정면 4칸 측면 1칸의 재사(마루2, 2)가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루에 첨망재 상량문 등이 걸려 있다.

잔디 마당에는 우물이 있으며 주변에 측백, 오동, 목련 등이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재사 옆에 관리동이 있는데 중문을 통해 출입하게 했다.

 

 

연혁: 현풍 곽씨의 재사로 조상의 유덕을 기리고 문중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1950년도에 건축했으며 1964년에 이어 80년대에 중수했다.

원래 운경 곽예순 박사의 생가 터인 것을 재사로 꾸몄으며 곳곳에 운경의 글씨를 비롯한 흔적이 남아있다.

 

 

 

 

 

 

 

녹명2리 입구에 세운 표석

 

 

운경 곽예순(대구, 곽병원 설립자)은 조상에 대한 숭모정신으로 재사를 창건하고 도로를 내는 등 마을을 새롭게 발전시키고 운경장학재단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많은 공헌을 하는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에 녹명 2리에서는 그 공덕을 기려 동민들이 마을회관 앞에 공적비를 세웠다.

 

 

<녹명 2리 전경>

 

 

<녹명2리 마을 회관>

 

 

<운경서당>

 

 

 

녹명리(鹿鳴里)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녹명리는 풍각면과 각북면의 경계지점에 있으며 각남면의 북단에 있고 풍각면을 거쳐 창녕으로 가는 국도 20호선인 청려로와 각남면 사리를 지나 청도읍 유천으로 연결하는 길목에 있다.

 

 

[명칭 유래]

녹명리는 구만동(九萬洞)과 녹갈(鹿渴)이 합쳐서 형성된 마을이다. 구만 마을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는 구멍이 있는데 창녕의 화왕산과 통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구멍을 구만으로 바뀌어 부른다고 한다. 또 사리골에서 내려온 하천이 구만동 앞에서 만나서 소를 이루고 크게 돌아가기 때문에 구만(九灣)이라는 뜻도 있고, 일설에는 임진왜란 때 만 명이 이곳에서 피난을 했기 때문에 구만(救萬)이라는 말도 하기도 한다.

 

녹갈(鹿渴) 마을은 노깔이라고도 하였는데 연유는 알 수 없고 일제 강점기에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녹갈(鹿渴)로 표기하였다.

 

 

[형성 및 변천]

1832년 편찬된 대구읍지(大邱邑誌)에는 구만리(九萬里)와 녹갈리(鹿渴里)로 표기되어 있고 그 이전인 1768년에 편찬된 밀주지(密州誌)에는 동명이 나오지 않는다. 각남면은 고려 때 밀양군 풍각현 초동면이었다가 1684년 대구진으로 이관되었고, 1906년에 청도로 다시 이관되면서 각초동면과 내서면이 포함되었다. 이 당시 각초동면에 녹갈과 구만동이 포함되어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각남면이 되었고 구만리와 녹갈이 합해져서 녹명동이라 하였다. 1988년 녹명동이 녹명리로 개칭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 환경]

천왕산 줄기와 화악산 줄기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 천왕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녹갈과 밤갓소에서 멈추고, 화악산 서북쪽에서 내려온 부곡천이 구만동에서 천왕산 동쪽 희남골에서 발원한 물과 만나 청도천으로 흘러든 된다.

 

구만 마을의 서쪽에 죽바위라고 하는 약 8264[2,500여 평]의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중바위라고도 부르는데, 밀주지에는 승암(僧巖)이라고 쓰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인근의 초등학교에서 봄 소풍 장소로 많이 이용하였던 곳이다.

 

경지 정리가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죽바위 앞에서부터 구만동 마을 아래까지 개울 건너편에는 경지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녹갈에는 일찍부터 사과 밭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현황]

2012 7월 현재 면적은 2.82이며,  111가구에 226[남자 106, 여자 120]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각남면 신당리·사리, 서쪽은 풍각면 덕양리, 남쪽은 각남면 옥산리·함박리, 북쪽은 풍각면 송서리·이서면 가금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구만과 녹갈이 있다.

 

구만 마을과 녹갈 마을은 들 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형태이며, 넓은 밭에는 과수를 재배하고 있다. 마을에는 대단위의 돈사가 있다. 동서로 지방도 902호선이 가로지르고 있으며, 이 지방도를 따라 청도 공용 버스 터미널에서 풍각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1번 버스와 풍각 순환 버스가 녹명리를 지나간다.

 

구만 마을에는 진배기 장공장이 있고, 참치 가공 공장이 들어와서 청도의 유휴 인력을 흡수하고 있다.

 

 

한편 청도군지(1991, 청도군청)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화악산의 지봉들이 줄줄이 이어져 양 줄기가 서로 경주나 하듯이 옥산(玉山)천을 끼고 달리다 동쪽 봉우리 아래 등선에는 2리가, 서쪽 줄기 기슭에는 1리가 자리하면서 산골짜기 계천이 분동을 시켜놓고 있다. 이곳 역시 남고북저이나 그리 심한 비탈은 아니고, 2동은 사촌천이 옥산천과 합류하는 지점인 만큼 유독 돌이 많은 전답이나 1리는 나름대로 비옥한 토질의 토지가 마을 앞에 있다.

 

2리인 녹갈리에는 1630년경에 현풍에서 성주인 곽탄 공이 입촌하여 현풍 곽씨촌을 이루게 되었다.

 

녹갈(鹿渴)은 어떤 지리지에는 녹갈(鹿葛)로 표기된 것도 있다. 옛날 사슴이 물을 먹고 간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나 이보다 사슴이 흔할 때 사슴들이 먹는 우물이 있으므로 기인된 동명이라는 것이 타당성 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튼 녹갈(鹿葛)이라 해도 칡이 많아 사슴들이 모여든 데서도 유래를 찾을 수도 있다. 어떻든 사슴으로 인한 동명임은 분명하다.

녹명이라는 동명도 사슴이 많이 모여들므로 우는 사슴도 있었을 것이니 사슴으로 연유된 동명임은 틀림없을 것으로 본다.

 

 

1리인 구만(九萬)리에는 서기 1700년 초에 성주인 도진칠 공이 대구 서촌(西村)에서 입주하여 성주 도씨 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구만(九萬)을 구만(救萬)이라는 설도 있으나 조선시대의 각종 지리지에는 구만(九萬)으로 표기되어 있다. 구전으로는 임란시 부근 동민들이 운정산(雲井山)에 피난차 모여 들어 산성을 축조하여 왜군과 일전을 각오했으나 왜병이 오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고 구만(救萬)으로 동명을 정했다는데 어찌하여 상당의 관안(官案)에 구()자로 기록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또 지방행정구역 개정시 녹갈(鹿渴)과 구만동(九萬洞)을 합동할 때 녹명리(鹿鳴里)라고 동명을 정했는지도 불명이다.

1리 총 70호 중

성주 도씨 56, 김해 김씨 9, 밀성 박씨 3, 기타 2

2리 총 56호 중

현풍 곽씨 11, 밀성 박씨 10, 달성 서씨 7, 기타 28

 

다음은 도주지(1958 김석봉 편)에 소개된 송덕비 내용이다.

 

韓克源頌德碑(在角南面 鹿鳴洞)

奉翊大夫 典法判書 淸州人 韓夢溪(麗末七十二節隱中一人) 十五世孫으로서  克源이요  相卿이며  碧農인데 哲宗己未 하고 癸亥正月八日 하다 壬午中 司馬하였으며 大邱에서 寓居中 相續財産 萬餘石中 八千五百石 鄕中貧民 親戚四十八戶 無償分配하여 賑恤窮民하였음으로 頌德碑 建立한바 있고 甲午動亂에는 豊角面 水月洞 避難하고  角南面 藿堂에서 寓居하며 春秋貧窮期 鄕內貧民 救恤하였으므로 鄕論 하여 壬子四月九日 竪碑하고 癸丑三月 建閣하였다

碑文

瞻彼鳳巖 福星南移 世贊厥德 惠此豐城

監董 徐珍烈 蔡東植 李德宇

撰筆 徐載典 閣額 弟 泰源

 

위의 내용으로 보아 녹명동에는 한극원과 곽예순이란 독지가가 있어 동리를 구휼하고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녹명동에 위치한 죽바위는 크기가 약 8264[2,500여 평]되는 웅대한 바위입니다. 한 때는 학생들의 소풍장소로 활용되는 등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나 지금은 찾는 사람들이 없어 매우 아쉽습니다. 저는 청도가 놓치고 있는 두 가지 자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가 '삼국유사'이고 또 하나가 바로 이 죽바위입니다. 이점이 너무 안타까워 "아까운 청도의 자산 삼국유사와 죽바위"란 글을 청도문학신문 까페 '청도탐방' 첫머리에 탑재를 하고 틈틈이 관계되는 분들께 계속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방치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검토하고 연구하여 꼭 좋은 자원으로 개발하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참고

- 관리문중 후손 면담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화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

-역주 오산지(2003, 청도문화원)

-도주지(1958, 김석봉 편)

- 청도문헌자료집,2013, 청도문화원 향토사학회)

-택리지(1978, 최장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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